익숙함과 설렘 사이에서 느끼는 사랑의 모순
프랑수아즈 사강의『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겉으로 보면 단조롭고 조용한 이야기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사랑의 본질과 인간의 모순된 욕망이 얼마나 깊은 늪인지를 보여준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폴이 왜 끝내 시몽이 아닌 로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사랑의 선택이 아니라 ‘살아 있음’에 대한 감각의 문제였다.
그런 기대가 사실로 확인되면
언제나 떨쳐 낼 수 없는 권태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폴은 평온한 여인이다. 세련된 직업을 가졌고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산다. 그녀에게 시몽은 모든 면에서 이상적인 남자다. 그의 사랑은 다정하고 성숙하며 그녀를 안정으로 이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폴은 그 사랑 속에서 안식을 얻지 못한다. 그 평온함이 오히려 그녀를 지치게 했다. 시몽의 사랑은 너무 예측 가능했고, 너무 완벽했다. 하지만 폴은 그 완벽함 속에서 자신의 감정이 점점 식어감을 느낀다. 그녀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고, 질투하지 않았고 상처받지도 않았다. 그건 행복이 아니라, 무감각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 또한 폴과 같았다. 예측 가능한 사건들이 이어지는 삶 속에서 참을 수 없는 구역감과 권태를 느꼈다. 나는 늘 그 안정감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다. 그 안정감이, 어쩌면 나에게는 속박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국 나는 그것을 스스로 놓아버렸고 비로소 감정적 자유를 만끽했다.
특유의 고집스러운 태도를 지닌
그를 보자마자,
그녀는 그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그녀는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반면 로제는 늘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사랑을 말하면서 다른 여자에게 향하고 붙잡을 듯하다가도 갑자기 멀어진다. 폴은 그에게 상처받으면서도 이상하리만큼 그 관계를 놓지 못한다. 로제의 예측 불가능함 속에서만 그녀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 그는 그녀를 흔들고, 아프게 하지만 동시에 ‘심장이 뛰게 만드는 존재’였다. 그 불안정한 사랑 속에서만 폴은 자신이 여전히 감정을 느끼는 인간임을 깨닫는다. 사람은 누구나 예측 가능한 삶을 원하면서도 그 예측 가능성 속에서 결국 권태를 느낀다. 반대로 불안하고 불완전한 관계 속에서만 우리는 살아 있다는 감각을 얻는다.
폴의 선택은 이성적으로는 어리석지만 인간적으로는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녀는 행복보다 ‘생의 진폭’을 택했다. 그 진폭은 아픔을 동반하지만 동시에 존재의 증거이기도 하다. 인생을 살다 보면 ‘행복’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그 순간의 ‘최선’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 폴에게는 행복보다 삶의 생동감이 더 중요한 가치였고 그 선택은 그녀에게 최선이었을 것이다.
나 또한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순간들과 그런 사람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한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분노, 우울의 감정이 소용돌이처럼 나를 휘감아 정신이 탈진할 만큼 흔들리게 만드는 사람. 나는 그 혼란 속에서 오히려 내가 살아 있음을 느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구절이
그녀를 미소 짓게 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폴이 느끼는 쓸쓸한 고요는 결국 그 모든 감정의 잔향 같다. 사랑의 혼란, 선택의 후회 그리고 살아 있음의 실감. 그녀는 상처 속에서도 고요히 살아 있음을 느낀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감정의 생리를 탐구한 한 편의 고백처럼 다가온다. 사랑은 늘 모순되고 불완전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불완전함 속에서 진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폴이 로제를 택한 이유는 결국 그 불안정함이 그녀에게는 유일한 생명의 징후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