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
삶은 종종 영화에 비유되곤 합니다. 온갖 우여곡절과 난관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세상인데요. 그와는 정반대의 삶처럼 보이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도쿄에서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며 살아가는 노년에 접어드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독일 영화감독 빔 벤더스가 <완벽한 날들>이라는 제목을 달고 넷플릭스에서 제 눈앞에 띈 바로 그 순간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빔 벤더스는 독일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으로 <파리, 텍사스>, <베를린 천사의 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등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그리고 사진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그의 작품들은 인간의 내면과 사회적 풍경을 깊이 있게 탐구하며 독특한 미학을 선보인 작품들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 일본 송강호라고 불리는 야쿠쇼 코지라는 걸출한 배우와 함께한 작품이라고 하니 영화를 봐야 할 이유가 더 필요할까 싶기도 합니다. 문화적 그리고 영화적 브랜드 파워는 창작자의 누적된 필모그래피로 정의된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는 1.37 : 1의 화면비를 가지고 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감독은 왜 이런 답답해 보일 수 있는 화면비로 작업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 고민에 대한 제 나름의 결론은 좁은 공간에서 살고 있는 인물의 특성을 잘 담아내기 위한 장치로써 사용한 게 첫 번째 이유. 그리고 자연과 인물과의 관계를 더 대비시키기 위해 가로폭이 좁은 화면비로 작업을 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문을 나서는 순간 바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히라야마의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들지 않으면 하늘을 볼 수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인물이 처한 환경적인 요인들을 부각하기 위해서 영화 <사울의 아들>역시 1.37 : 1의 비율로 촬영된 영화 중의 하나입니다.
모두가 인생에서 완벽한 하루와 완벽한 날들이 이어지길 바라지만 이것은 꽤 많은 일들이 문제없이 돌아가야만 가능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어떠한 기대나 인정도 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남들이 우러러보는 직업이 아닐지라도 그 일을 통해 세상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은 한 인간을 온전히 존재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리고 그 일로 삶을 영위하면서 삶에 활력과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면서 재미도 주는 다양한 활동을 하며 대부분은 사람들은 살아갑니다. 출근 전 차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음악을 고르거나 퇴근 후 목욕을 하고 집 근처 단골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것은 평점해 보이지만 모든 것이 어긋남 없이 착착 돌아가야 가능한 말 그대로 완벽한 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이런 완벽한 날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날도 우리들의 삶에는 꼭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염치없는 동료의 급작스런 퇴사에 혼자 모든 일을 도맡아야 할 때도, 느닷없이 가출한 조카도 잠시나마 돌봐야 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는 것이죠.
또한 주인공 히라야마는 자신이 통제하는 못하는 일들에 과도하게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데요. 다카시 같은 무책임하고 무례한 사람에게도 직접적으로 화를 내기보다 약간 거리를 두고 그 관계에 대해 크게 애쓰지 않습니다. 그 대신 매일 눈뜨기가 무섭게 식물들을 돌보고 점심을 먹다가 모종을 발견할 때는 아기 고양이를 만지듯 소중하게 대합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할 때 비로소 삶이 더 풍성해지는 걸까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어 보이는 히라야마는 불행해 보이기는커녕 안온하고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타인의 욕망이 전혀 투사되지 않은 삶이란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0년대 후반부터 미니멀리즘 열풍이 불어 이제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맥락과는 거리가 먼 영화인데요. 간결한 삶을 살지만 그것은 소유한 물건의 총량 하고는 크게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본인의 일을 정말 충실히(변기의 아랫부분을 거울로 비춰가면서 청소를 하는) 해나가면서 햇살 좋은 점심시간을 만끽하며 보잘것없어 보일 수도 있는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는 모습은 이상적인 삶의 형태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것은 히라야마가 장기간 쌓아온 삶의 철학이 녹아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겠지요. 이런 철학을 습득하고 깨닫는 과정 같은 건 영화 속에 잘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런 걸 직접적으로 보여주거나 설명하는 건 정말 영화적이지 않기 때문인데요. 이 영화의 외형적 요소만 가져와서 따라 하는 모습들을 온/오프라인에서 볼 때면 뭔가 맥락이 거세된 느낌이 듭니다. 구형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는다고 갑자기 자신의 삶에 변화가 생기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오히려 불편한 기다림으로 인해 짜증 나는 상황만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문화상품(영화/공연/책 등)을 소비한다는 것은 물성이 있는 물건을 사는 것과는 성격이 다른 경험재를 사는 것입니다. 콘텐츠를 통해서 타인의 삶을 간접경험해 보고 자신의 삶에 대입해 보고 그 과정에서 어떤 심경의 변화라던가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는 것이죠. 이런 경험의 누적이 많아야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데 왜냐하면 세상은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때문에 다양한 주제의식과 인물이 등장하는 문화상품을 찾아보는 건 즐거운 일이기도 하고 삶을 완벽하게 만들어 갈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