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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Jun 24. 2022

<리뷰> 버즈 라이트이어

'나 혼자' 삶에서 연결과 확장으로 나아가는 하이퍼포머의 성장기 

픽사 애니는 꼭 본다. 나는 애니 덕후다. 

특히 디즈니와 픽사는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세계관을 넓혀주고 관념을 깨 주는 고맙고 발전적인 스토리라인이 늘 감탄을 자아 나오게 한다. 이번 버즈 라이트이어는 시간과 세대를 초월한 우정, 나 자신과의 직면, 극복, 그리고 성장을 담아냈다. 만화임에도 몰입감이 엄청났던 그래픽 효과와 로봇 고양이 삭스의 실제 고양이 싱크로율도...!! 


이번 영화의 깨달음 포인트를 몇 가지 정리해 나눴다. 

늘 이야기하지만 스포일러가 있다. 스포가 싫은 사람은 조용히 이 창을 닫고 영화를 보고 오시면 된다. 

다 읽고서 "스포일러 너무 많잖아" 하기 없기:) 


#올챙이 적 기억 못 하는 하이퍼포머 


영화의 주인공인 버즈는 자타 공인 우주 특공대다. 우주에 파견된 동료들이 직면한 문제들을 뛰어난 능력으로 해결해 낸다. 그의 파트너는  버즈가 인정하는 특공대원 알리샤 호손. 자신에 대한 기준이 높은 만큼, 타인에 대한 기준도 높은 버즈는 알리샤를 제외한 신출내기 요원은 인정하지 않는다. 어쩌면 맡은 과업이 중요하기에 초보는 위험하거나 임무에서 일어나는 시행착오를 감당할만한 시간이나 에너지 자원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서는 신출내기를 인정하지 않는 그에게 묻게 된다. 


"정말, 혼자서 다 해낼 수 있다고?" 

"정말 이 일이 그렇게나 중요한 일이 맞냐고?" 


버즈가 발견한 행성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중요한 일이었지만 몇십 년에 걸쳐 버즈의 동료들은 해당 행성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시스템과 체계를 구축했고, 심지어 알리샤는 가정을 이루고 후손을 만들기도 했다. 모두의 시간은 각각의 환경과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흘러간다. 모든 현상은 이유가 있고, 그들은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단지 버즈만이 현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해 미션을 수행하며 현실 속 세계를 빠져나가기 위한 그의 현실과 싸우고 있을 뿐이다. 


#완벽주의자가 무장해제되는 순간들 


그의 반려로봇 고양이 삭스는 알리샤가 버즈에게 마련해 준 일종의 '선물'이다. 소속된 우주국이 파견한 신참을 인정하지 못하는 버즈는 역시 고양이 삭스도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떤 동료나 새로운 환경조차도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한 패턴을 반복하는 버즈 라이트이어를 보면 하이퍼포머나 슈퍼히어로는 어쩌면 자신이 가진 재능과 막중한 임무에 대한 사명으로 스스로 외로움을 선택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처음에 무시한 반려 고양이 치고 삭스는 버즈가 해내지 못하는 일들을 해내는데, 불완전한 연료 크리스털 조합을 발견하거나, 작전의 생존율이나 성공률을 계산하거나, 치명적으로 귀엽거나(?) 등등 버즈가 해낼 수 없는 일들을 해결해낸다. 누구도 인정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버즈는 인간 동료들 대신 삭스를 애지중지 챙길 정도로 그에게 마음을 허락한다. 그리고 삭스에게 마음을 허락하는 순간, 점차 다른 환경들과 동료들에게도 마음을 허락할 수 있는 기반이 생겨나고, 동료 알리샤 호손의 손녀이지 호손 역시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변화를 보이게 된다. 


#말로는 오합지졸, 그런데 어찌어찌하고 있는 그들 


 알리샤 호손의 손녀 이지 호손은 우주 특공대를 꿈꾸는 수습생이다. 그러나 우주 공포증이 있다. 그녀의 팀원 중 하나인 다비는 폭탄 제조범 혐의로 집행유예기간을 보내고 있기에 도구 3개만 있으면 어떤 폭탄이라도 제조할 수 있지만 폭탄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핸디캡이 있다. 모는 친절하지만 중요한 시기마다 포기하거나 망설인다. 그들의 언어만 들어보면 늘 못한다, 안된다, 포기하겠다는 말들인데 스토리를 보면 어찌어찌 흘러가고 있다. 이것이 키 포인트! 오합지졸같이 보이지만, 실수했지만, 이지는 우주를 건너 저그에게 빼앗긴 우주선의 진입로에 접근하고, 저그는 폭탄을 만들면 안 되지만 멋들어지게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고, 모는 슈트의 중도포기 버튼을 몇 번이고 눌러 슈트를 공처럼 부풀려 위기를 모면한다. 버즈가 보기엔 오합지졸 일지 모르지만, 문제 해결의 의지가 있는 오합지졸들은 어떻게든 그들이 처한 상황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느리지만, 서툴지만, 사람의 의지는 힘이 세다. 거듭 좌절되는 상황은 그들의 마음을 이리저리 흔들리게 하고, 팀워크를 꺾어 놓기도 하고, 함께임에도 홀로 있는 것과 같이 막막하고 외롭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의식은 그런 와중에도 그들을 일으키고, 협동보다는 협업하게 한다. 똘똘 뭉치지는 않아도 각자의 역할과 능력을 존중하며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고,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우는 것이 협업이다. 부족하지만 제 역할을 해내 보겠다는 자기 신뢰, 함께 하는 팀원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 타자에 대한 신뢰, 그리고 문제의 해결보다는 함께라는 존중. 스스로를 믿기 어려우면 우주 특공대라는 역할에, 누구보다 탁월했다는 할머니의 유전자라는 혈통에, 왕년에 폭탄 좀 터트려봤다는 경험에, 혹은 그저 잘 될 것이라는 믿음에 그들은 자신의 의식을 두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의지하는 무언가가 마음에 흔들릴 때에는 "해야 할 일"에 집중하며 할 일을 한다. 


# (과거의) 너는 (미래의) 나와 다를 수 없어 


 만일 미래의 나를 지금의 내가 만나게 된다면 어떨까. 사실 미래의 '어떤 모습' 일지를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매일매일의 지나가는 시간과 경험이 쌓인 현재다. 하루하루의 과정 없이는 미래의 모습을 결코 예측할 수 없다. 지금 모습 그대로 반복하며 육체의 나이만 먹은 미래의 나를 상상한다면, 전혀 궁금할 수 없다. 주름살만 늘어난 나일 테니까. 


 사람은 그러나 매일매일 '시간'이라는 선물을 부여받는다. 미래를 향해 살아가는 데 있어 방향은 같을지 몰라도 매일매일의 경험이 가치관을 성장시키고, 의식의 시야를 확장시킨다. 어제의 나는 오늘과 다른 나다. 육체의 나도 매일매일 세포의 생과 멸을 겪고, 경험 역시 그렇다. 같은 경험을 매일 거듭하더라도 다른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버즈가 만난 저그는 버즈의 미래가 될 수도 있을 하나의 가능성이지만, 버즈는 눈으로 생생히 저그를 만나고서도 그것이 자신의 미래 모습일 거라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이지 호손을 만나고, 다비와 모를 만나고, 삭스를 만나면서 실력 있는 동료들만 동료로 인정해 왔던 그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이래서 친구를 잘 만나는 것이 중요하... 응?)


 성장하고 싶다면 만나는 사람을 다르게, 읽는 책을 다르게, 매일 가는 곳을 다르게 하라는 말은 영화 <버즈 라이트이어>에서도 통하는 진리다. 비슷한 시간여행 스토리의 클리셰로 영화 <어바웃 타임> 이 있다.이지를 만난 버즈가 시간을 거슬러 자신의 실수를 없애면 이지 또한 만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알고, 주어진 환경 안에서 시간을 거슬러 실수를 무효화하기보다 실수를 수습하기로 결정하는 모습은, 아기를 낳기 전 일어난 여동생의 연애사를 시간을 거슬러 무효화시키면, 자신의 아이 역시 세상에 태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여동생의 연애사를 무효화시키기보다 여동생이 힘들 때 곁에 있어주기로 결심하는 주인공 팀의 모습과 닮았다. 문제를 없애거나 해결하기보다 곁에 있으며 함께 성장하는 것이 진정성임을, 그것이 관계와 인연의 본질이지 않을까. 


# 삭스는 언제나 든든한 동료 


 우주 특공대 팀장이었던 버즈의 전 상사 알리샤가 버즈를 위해 마련해 준 로봇 고양이 삭스는 너무나 귀엽다. 고양이를 기르는 집사의 입장에서 보면 더 귀엽다. 로봇인데 고양이의 습성을 어색하게 재현하는 모습이란... 삭스는 중요한 시점에 어김없이 "너무 귀여워!!!"를 연발하게 하는 씬스틸러이면서도 어려운 문제의 힌트를 제시하며 스토리를 전개시켜주는 키맨의 역할을 한다. 로봇이기에 관계로 섭섭해하지 않고, 로봇이기에 감정보다는 해야 할 일에 집중한다. 마음을 쓰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귀여움을 마음껏 보이며 해야 할 일을 하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동료다. 사람은 누구나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마음을  쓴다. 그러나 감정이나 마음씀이 배제된 삭스의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성숙한 관계의 이상향을 보여주는 것 같다. '삭스 같은 동료가 있다면, 혹은 삭스같이 일할 수 있다면'에 대한 호감과 든든함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느낄 것이다. 


 감정을 가진 인간이 어떻게 마음씀이나 감정을 배제하고 삭스처럼 팀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 오락가락하는 사람의 언어, 감정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관계의 본질만 믿고 가는 것이 어떨까. 버즈가 삭스에게 퉁명스럽게 대하든, 친절하게 대하든, 그의 역할은 버즈를 돕는 것이며, 버즈를 돕는 자신을 스스로 믿는 것. (물론 버즈를 도울 때 돕더라도 배터리 충전은 스스로 알아서) 


영화의 말미에 버즈는 자신의 미래 모습인 저그를 뛰어넘었고, 이지는 할머니의 혈통임을 증명했으며, 모와 다비도 오합지졸 수습 부대에서 우주 특공대로 승격하는 성장의 모습을 보인다. 말 그대로 주인공과 친한 사람들은 다 잘 된다. 영화를 보며 '성장' 이 무엇인지, '협업' 이 무엇인지,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라고 부르는 것들이 사실은 현재의 집합이며 어떤 면에서는 지금 외에 모든 것이 허상임을, 결국 매일 하루하루,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것만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루하루의 과정이 쌓여 우리가 아는 토이스토리의  '버즈 라이트이어' 요원을 만들었고, 그가 겪은 과정에 대한 이해 없이 대상을 이해하는 것이란 쉽지 않지만, 과정 역시 현재에 녹아있음을 알아차린다면 과거에 그가 겪었던 과정을 속속들이 알든 알지 못하든 그의 현재를 선입견 없이 순수하게 바라보는 것 만으로 충만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버즈의 오늘을, 그리고 영화를 함께 보았던 사람들의 오늘을, 이 글을 보고 있는 그대의 오늘이 충만하기를. 오늘이 충만할 수 있다면 과거에 미련이 있더라도 과거가 현재에 담겨있음을, 미래가 불안하더라도 미래 역시 현재를 쌓아 만들어내는 것임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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