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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Apr 22. 2020

레그프레스의 맛

웨이트트레이닝 운동심리학

엉덩이를 약간만 빼서, 등받이에 등을 온전히 대고 앉는다.

발을 골반 너비로, 발가락과 무릎의 방향이 같도록,
몸에서부터 밖으로 퍼지는 부채꼴 모양을 상상하며 발의 위치를 고정시킨다.  


지금부터 발과 정강이, 무릎은 한몸이다.
엉덩이와 허벅지의 힘으로, 발뒤꿈치에 힘을 실어 발판을 민다.

무릎이 완전히 펴질 때까지 밀면 소중한 연골이 다칠지 모른다. 안될 일이다. 빠른 속도로 무릎이 펴지기 직전까지 밀다가, 천천히 버티며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이 늘어나는 것을 느끼면서 무릎을 구부린다. 뒤꿈치에 힘을 실어야, 엉덩이근육에까지 고루 힘을 줄 수 있다. 엉덩이와 허벅지에 골고루 뻐근한 느낌이 느껴진다. 


내려올 때는 집중해 버티면서 내려오지 않으면 매달린 추가 쿵 떨어져 버릴 수 있다. 그러면 꿀벅지여 안녕, 아무도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는데 혼자서 외로운 부상 투혼 시작이다.




동작이 제대로 들어가면, 엉덩이가 점점 뾰족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비욘세, 킴 카다시안의 세계와 가까워진다. 두 다리로 80kg의 추를 밀어올린다. 나는 80kg 정도의 별볼일 없는 남자가 찝쩍대도 거뜬히 밀어버릴 수 있다. 매일 나를 지고다니는 내 두 다리는 내 몸 + 20kg 정도 추가로 무게를 걸더라도 거뜬히 땅을 밀어낼 수 있다. 캬! 가공할만한 체력이다. 이정도라면, 전쟁이 나더라도 충분한 양의 식량과 짐을 챙겨 달아날 수 있다.


누군가를 돌보고 싶은 나에게, 아직 발달되지 못해 한 시간 반의 운동으로 이내 지쳐버리고 마는 하체 근력은 조금 아쉽다. 캡틴 마블처럼, 우주 이곳저곳 오지랍을 부리며, 필요한 곳에 필요한 도움을 주고 싶다. 조금 더 무거운 무게를 지고, 이만큼은 살아낼 수 있다며 힘겹지만 개운하게, 발뒤꿈치에 힘을 주고, 후들거리지만 힘껏 밀어올리고 싶다.




밀어올린 후 쉬지 않고 다시 버티며 무릎을 구부린다. 진짜 근육의 자극은 버티며 내려오는 이 시점에서 온다. 무엇이든지, 출구전략을 짜고, 예쁘게 마무리를 할 때 해냈던 일이든, 결과든 내 것이 된다. [초역 니체의 말I] 에서 말하듯, 체험을 했을지라도 이후에 그것을 곰곰이 고찰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 될 뿐이다. 어떤 체험을 하든 깊이 사고하지 않으면, 꼭꼭 씹어먹지 않으면 설사를 거듭하게 된다( 2010, 프리드리히 니체, 시라토리 하루히코 편집, 삼호미디어). 아무리 무거운 추를 걸어 발판을 밀어올렸든, 뿌듯해하기는 이르다. 이제 온전히 내 힘으로 버티며 천천히 근육의 힘으로 버티며 내려온다. 그래야 밀어올렸던 만큼, 근육은 나만의 속도와 완급으로 벌린 일을 마무리할 수 있다. 제대로 내려와야 밀어냈던 추 만큼의 무게를 버티며 더 강한 힘을 담아낼 수 있도록 머슬메모리에 담을 수 있다.


결국 인간은 두 다리를 단단히 발판에 디디고, 자신의 힘으로 주어진 무게를 밀어내야 하고, 또 자신의 힘으로 추를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하는 존재다. 한편, 다리와 허벅지가 아무리 강해도, 발이 제대로 제 위치에서 디뎌주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밀어내야 할 과제를 앞두고, 발바닥의 위치를 단단히 고정시키며 마음을 다진다. 힘껏 밀어내고, 다시 천천히 버티며 허벅지와 엉덩이를 단련시킨다. 처음엔 내 몸무게만큼, 조금 더 무게를 실어서, 점차 책임질 수 있는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뿌듯하게 강해진다.


두 다리를 디디며, 삶의 무게를 허벅지와 발뒤꿈치로 밀면서, 조금 더 단단해졌던 날. 
레그프레스의 맛을 담뿍 느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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