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다른 사람을 통해 성장하기
편안한 장소에서 어깨, 골반, 다리에 힘을 빼고, 온전히 이완된 자세로 앉습니다.
어깨를 으쓱하며 마시는 숨에 끌어올렸다가, 편안하게 굴려 이완합니다.
바닥에 앉아있다면, 다리를 겹치지 않게 책상다리로 앉아
양팔을 무릎 앞에 짚고 살짝 엉덩이를 뒤로 밀었다가 척추를 한 단 한단 곧게 세워봅니다.
꼬리뼈를 말며 아랫배에 힘을 약간 주어 자연스럽게 바르게 앉습니다.
의자에 앉아있다면 어깨와 골반을 등받이에 깊게 기대어 앉습니다.
양팔을 자연스레 떨어뜨려 허벅지 위에, 손바닥이 하늘을 볼 수 있게 올려둡니다.
편안하게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해봅니다.
온몸으로 마시고, 가늘고 길게 내쉬어봅니다.
호흡에 잠시간 주의를 집중합니다.
온몸에 공기를 가득 채우며 마시고,
손끝과 발끝으로 에너지의 순환을 느끼며 내쉽니다.
당신은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사람입니까? 사회가 통합되면서 다름을 다양성으로 인정하자는 시도나 생각들을 접했을 때 사람들은 대체로 그를 수긍합니다. 보편적으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존중과 공존에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다름' 이 이해관계와 얽혀있거나, 나를 불쾌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다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눈을 감은 상태로 내 의견과 다르다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떠올려봅니다. 그는 내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기도 하고, 내가 기대한 반응을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내 결심이나 결정을 번복하도록 자신의 의견을 더하기도 하고, 내 의견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나와 다른 사람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 우리는 논리적인 판단을 하기 이전에 기분이 상합니다. 그리고 상한 기분이 그의 탓이라고 여기며 자신의 의견과 결정을, 그리고 나와 다른 반응을 보이는 상대의 논리를 오래도록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한 덕분에 우리는 더 현명해질 수 있습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라 할지라도, 나와 다른 의견, 생각, 혹은 가치관은 우리의 생각을 더 넓고 깊게 확장시킵니다. 단지 내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상대와 멀어지기 전에, 나쁜 기분을 걷어내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한층 현명한 생각과 마주하게 됩니다.
적당히 나를 불편하게 하는 다름은, 오히려 나를 깨어있게 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더욱 커지고, 이해해주지 않는 상대를 이해시키기 위해, 상대를 보듬어 안는 시도를 해 볼 수 있습니다. 기분에 동일시되어 다름을 배척하고, 숙고의 기회를 내치지만 않는다면, 적당한 다름은 서로를 성장시킵니다. 선의의 경쟁, 라이벌, 호적수 등은 다 여기에서 온 조상님의 지혜가 담긴 말입니다.
가까운 이가 나에게 전하는 다름을 떠올려봅니다. 그의 의견이나 파장은 분명 나에게 영향을 주고, 그 영향은 우리의 기분을 변화시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영향을 감안하여 숙고 끝에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당신이어야 합니다. 타인에게 나와 다를 수 있는 다양성의 권리를 주는 유연함은, 내 결정은 나 스스로 내린다는 자유로움이 전제되어야만 가질 수 있는 덕목입니다. 내 결정에 자유를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타인의 반응이나 결정에 대한 자유도 존중할 수 있습니다.
기분에 따라 다름을 배척하기보다, 다름 자체를 바라보며 나를 더욱 성장시켜나가는 당신을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영상으로 들으며 명상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