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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Nov 19. 2022

삶이란 사막을 건너는 법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별이 되어 빛나고 있음을. 

Lonely Star. 



두물머리에 별을 보러 갔다. 어두컴컴한 하늘 사이 헤아릴 수도 없는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폰카로는 내 눈에 담긴 별의 반의 반도 담기지 않았던. 말 그대로 별빛이 쏟아지는 밤하늘. 



삶에 있어 의미 없는 시간은 없다지만, 어떤 시간들은 내 삶에서 완전히 들어나듯, 도려낸 듯 잊혀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어디에 갔고 누구와 무엇을 했던 기억은 있는데, 그 기억에 내가 어땠는지, 살아있었는지, 내 영혼이 어떠했는지의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20대 그리고 30대의 시기가 그러했다 보니, 일종의 염세주의 같은 것이 생겨버려서- 오로지 현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순간이 중요해서, 이 순간을 함께 하고 있는 이들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쌓아 올리는 것보다 휘발되듯 살고 있었다. 순간을 사진에 담는 것조차 참 허무했다. 지나면 없어질 것들인 것만 같아서. 모두 없어질 것들이라 생각하면 살아가는 시간 한편엔 기쁘지만 씁쓸하고, 행복하지만 무척 슬픈 감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씁쓸하고 슬픈 감정이 삶을 보는 관점을 보다 깊어지게, 넓어지게, 또 입체적이게 하기도 했다. 



슬퍼서 소중히 담지 못하고, 물 흐르듯 흘려보낸 시간들, 인연들, 사건들, 그리고 흘러가버렸는 줄 알았던 영혼이 하늘의 별이 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흘렸던 눈물방울이 저렇게도 아름다운 빛이 되어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어둔 삶의 심연에 잠겨 꾸역꾸역 발버둥을 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깊은 밤하늘 속에서 빛나는 한 점, 한 점의 빛줄기가 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한줄기, 뺨에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오래전에 봤던 영화, '편지'의 대사가 떠올랐다. 



<언젠가 남편이 그랬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건너야 될 사막을 가지고 있는 거라고. 사막을 건너는 길에 난 짧은 오아시스를 만났었다. 푸르고 넘치는 물, 풍요로움으로 가득한 오아시스를 지나 나는 이제 그 사막을 건너는 법을 안다. 한때 절망으로 울며 건너던 그 사막을 난 이제 사랑으로 건너려 한다. 어린 새의 깃털보다 더 보드랍고 더 강한 사랑으로...> 



누군가를 소유하고, 간절함으로, 절절함으로 나누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집착임을 알아버렸다. 영화 속 주인공 환유가 말한 사랑이 한때 울고 웃었던 자신을 따뜻하게 보듬어 안고, 세상 속에서 한걸음 한걸음을 딛는 자신을 독려하며 한 걸음 더 내딛는 것임을 나는 안다. 어떤 조건 속의 내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삶을 따뜻하고 다정하게 수용하고, 한걸음 나아가보는 것이 사랑임을 안다. 한 때 사랑이 전부라 말했던 나는 이제 사랑보다는 존재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나에게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누구나 건너야 될 사막이라면, 사막을 걷고 있다면, 사막을 건너는 법을 하나씩 배우는 것이 삶이라면. 삶에서 만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빛나는 별이 되어 있음을 느끼고 감사하며 한 걸음을 떼는 것이 사막을 건너는 법이라는 걸. 나는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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