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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Jan 16. 2023

첫 도전, 선물 같은 두려움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하는 첫 마음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했던 건,  <한계를 만나기>를 경험하고 싶어서였다. 언제나 내가 가장 힘들다고 느꼈을 때는 "한계"에 부딪쳤기 때문인데, 한계를 자주 만나면 그것조차 의연하게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계를 만난다는 생각을 하고 풀코스에 도전했을 땐, 많이 망설였다. 아마 자의로 도전하라고 하면 더 한참이 걸렸을 텐데, 가까운 지인이 동기를 촉진해 줬다. 


"인스타그램에 자랑하기 위한 한 장을 위해서 도전하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준비하고 연습해서 해야 하는 도전이에요. 가볍게 하려거든 하지 마세요. 아마 못할 거예요." 


#아마 못할 거예요 라는 말에 서운하고, 오기도 생기고. 도전하고 싶어졌다. 해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막무가내로 연습도  충분치 않았는데 대회를 신청했다. 그리고 신청하고서 마음이 어지러웠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적갈등의 연속. 


- 괜히 도전했나 

- 정말 할 수 없을까 

- (연습을 하고서도) 이만큼의 연습으로는 부족할 게 뻔한데 

- 뭘 준비해야 하고, 어떻게 연습해야 하나 

- (연습을 못할 때는) 불안하다. 이럴 거면서 도전하겠다고 했어? 게으른 존재 같으니. 


- 그래도 다섯 시간이면 대충 끝나는 도전이야! 어렵게 느껴지던 강의도 다섯 시간짜리에 도전해 봤고, 여러 번 잘 해냈잖아? 비슷하게 해낼 수 있어! 

- 만 명이나 도전하고 이뤄내는 일인데, 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내가 왜 못해! 하고도 남지! 

- 꼭 잘하려고 하지 말고, 출전하는 데 의의를 두자!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도전이야! 

- 이왕이면 나에게 부끄럽지 않게, 준비할 수 있을 때 최대한 집중해서 연습하자! 


이 두 마음을 다 가지고서 대회날은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신기하게 내 마음은 주변의 자극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더라. 마음속에는 두 마음이 다 있는데. 



<예림님, 평소에도 잘 달렸으니까 분명 진짜 잘할 건데요 뭐! 의외로 기록 잘 나오는 거 아니야?> 

=> (열심훈련모드) 아니에요~ 그저 열심히 달려보려고요! 목표는 없지만 훈련은 열심히 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풀코스 도전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연습량이 좀 있어야 하는데. 스피드트레이닝, LSD 등 훈련을 좀 더 해야 해요. 지금만으로는 부상이 생길 수도 있어요. 기록이 나쁘면 좀 마음 쓰이기도 할 거고.> 

=> (참가에 의의모드) 저는 그만큼 훈련할 시간이 없어요... 첫 도전이고 잘 해내려는 욕심을 부리는 건 저에게 무리예요. 참가에 의의를 둘 거예요. 그것만도 제겐 대단한 도전이에요. 


내가 말하는 언어가 어떤 내용이든, 나는 할 수 있는 훈련은 꾸준히 하려고 했고, 그러면서 무리한 훈련이나 계획의 압박이 오면 왠지 부담스러워 밀어냈다.


열심훈련 모드든 참가의의 모드든 그때그때의 마음이고 기분에 따라 나오는 말들이었고(아무 말 대잔치), 아무튼 대회는 나갈 거였고, 대회에 나가서 최선을 다할 예정이었다. 


자신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계획적인 훈련을 제안해 주는 분들은 첫 도전의 압박감과 설렘의 경험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 보낸, 베테랑 러너분들이셨다. 그러나 나는 도전 자체가 한계에 부딪치는 첫 시도였기에 차근차근 계속 한계를 넘는 훈련을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그렇지만 어찌어찌 불안해 참여하고 따라 하고는 있었다). 결국 내가 쓰는 언어는 "부담의 표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  이 외에도 "못할 것 같은데..."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수많은 것들을 나는, 저항하면서, 부담을 느끼면서, 저항과 부담이 무색할 만큼 잘 해내왔다. 


최근, 첫 풀코스에 도전하는 크루 지인의 비슷한 마음을 만났다. 나는 그가 이 "처음의 혼란"을 오롯하고 즐겁게 마주했으면 좋겠다. 이 혼란은 첫 도전 이후에는 만날 수가 없다. 혼란을 넘어 새로운 목표가 생기고 도전할 수 있는 나만의 루틴이 생긴다. 나만의 한 걸음 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생긴다. 


최근 마라톤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궁금해하며 힘들고 어렵지 않았냐고 묻는 이들이 주변에 많았다. 두 번 완주하고 3월에 또 마라톤 풀코스를 신청한 나로서는 "막연한 힘듦"이 "아는 힘듦"이 되었노라고. 극한의 한계인줄 알았는데 이겨내고 보니, 한계를 만날 때 느끼는 쾌감을 또 만나러 가게 되었다고 얘기하고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도전하지 않는 일이 세상에는 많다. 


#지난 주말눈캠핑하며 나눈 이야기 #처음이라는_선물 같은_저항과 혼란 #달리기 이야기 #달리기 바보들 #풀코스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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