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의 두려움을 만나다

집착의 표상 밑바닥에 근원적 콤플렉스.

by 김예림

다시 결혼하고 싶지는 않지만, 가끔 부부싸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공감능력 없게도, 분명 당사자들끼리 끝장나게 힘들게 싸웠는데-

”와. 되게 행복해 보인다 “

하고 부러워하고 있다.


어제 뵈었던 멘토님은 내게

”감각과 빛을 넘어선 명상을 해 보세요. 습과 착의 표상에 내면 속 어떤 근원이 있는지 발견해 보세요. “

라는 주문을 하셨다.


세상에.

오늘 인시에 한 명상에서 나는.

내 두려움의 끝을 봤다.


어떤 파티장에서 갑자기 납치되어 추행과 노출 사진, 영상을 찍히고 굴욕적으로 희롱을 당하다, 극적으로 카메라맨의 카메라를 탈취해 미친 듯 찍혀있는 사진을 지웠다. 사진기 속에는 약에 취한 여자, 살해당한 여자, 묶여있는 여자 등등 처참한 사진이 한가득이었다. 도망쳐야 한다 느끼면서 필사적으로 덜덜 떨며 사진을 모조리 지우는데 순간, 잠에서 깼다.


현모양처라는 이번 생의 지향 밑바닥에,

보호받고 싶고 안전하고 싶은, 근원적 공포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딱히 반려나 화목한 가족이 있다고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고, 사람은 누구나 어떤 방식으로든 죽는데, 그렇게나 짝을 찾았던 나의 표상 속에는, 죽음에 대한 근원적 공포를 가족의 안락함으로 회피하고픈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더 이상 죽음을 ‘당하고’ 싶지 않다. 어찌 보면 누구나 매일매일 죽음을 향해 가까이 간다. 내가 본 장면들은 원치 않지만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한 존재의 공포였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지만 어떤 태도로 죽음을 맞이할지는 정하고 행할 수 있다


아직 “누군가”와 함께하고픈 자아 밑에, 누군가와 함께하면 공포를 회피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영악한 에고가 있다. “누군가”는 근원적으로 이 공포를 소거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러한 해피엔딩의 스토리가 허상인 것을 안다.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안전하고 안락한 상태를 위해서가 아닌, 그저 존재로 바라보고 때로는 같이, 때로는 각자 뚜벅뚜벅 삶의 길을 걸어가는 존재로서의 관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성숙한 관계 속에는 ‘따로 또 같이’의 건강한 거리가 공존하고 있다. 따로 또 같이 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홀로 있음이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아주 험한 꿈을 꾸고서 심장이 벌렁대어 정신을 잘 차릴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아침에 한소율러너님과 8킬로를 달리고, 집에 돌아와 밥을 해 먹고, 빨래를 돌리고, 널어둔 팔래를 개고, 청소기를 돌렸다. 깨달음은 또 필요할 때는 아주 적절하게 하루를 살게 해주는 실용성을 지니고 있다.


#집착밑바닥에 근원 #내면공부 #마음빨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