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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Jul 09. 2020

내 이름 나르시즘

불리워지고 부르는 삶

예림이라는 이름을 좋아한다.

예 할때 입술을 적당히 벌리고 혀끝을 예리하게 발음해야 정확한 이중모음을 발음할 수 있다. 이중모음이 많지만, ‘예’ 라는 발음에 예쁜 단어들이 많다.


예쁘다 예리하다 예술적이다 예체능 예절 예의 예화 등등.


내 이름의 ‘예’ 자는 예술 할 때의 예자를 쓴다. 그래서 이것저것 재주가 많은가. 이것 저것, 하고픈 것도 많다.
이름처럼 예술적이지는 않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산다.


‘예’ 라는 글자보다 ‘림’ 이라는 글자는 더 좋다.

발음의 마무리에 입을 다문다. 맺고 끊음이 명확해보여 좋다. 친구들이 ‘리미야’ 하고 불러줄 때도 좋다. 받침이 없어지는 애칭은 퍽 친근감이 든다. 예리미 라고 불릴 때의 ‘미’ 는 ‘아름다울 미’ 자 같은 느낌이 든다.
왠지 예리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그닥 내가 예리하진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림으로 끝나는 단어는 많기도 하다.


기다림, 쓰라림, 몸부림, 차림, 버림, 올림, 내림, 알림, 열림, 울림...

림으로 끝나는 단어들은 몸으로 느끼거나 행동에 옮길 수 있는 단어들이 많다.


한때 다이어트 코칭을 할 때의 닉네임은 “울림” 이었다. 인스타 아이디도 ooll.im 이다. 좋은 에너지가 울려퍼지다는 뜻의 울림이었는데, 한편으로는 “우리 예림이”의 줄임말이기도 하다. 누구에게서건 ‘우리’ 예림이가 되고 싶었던걸까. 모두에게 사랑받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그렇게나 잘 하고 싶다. 착한아이 컴플렉스같은 오만을 부릴 처지가 아닐텐데.


그래도 누군가에게서 “예림이” 로 불리는 일은 퍽 기분좋다. 예림이, 예림아, 예림님, 예림씨(음... 아직까지 ‘씨’ 가 붙으면 조금 느끼한 것 같다), 예림양... 다 좋다.

누군가가 불러주는 이름만큼의 사람이 맞는걸까.
병원에서의 호명처럼, 별 의미없이 불릴지라도, 나는 그 이름값을 하고 싶다.

이름값을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값’이라는 글자에 힘을 빼본다.


무겁지 않게, 편하게 자연스럽게 서로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되는게 이름값이 아닐까.

이름값을 하겠다며, 대할 때마다 잔뜩 힘을 주게 되면, 마주보며 웃기가 어려워진다. 오히려 부담이 무거워져 버린다. 이름만큼의 나로 살자.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자. 있는 그대로의 나를 환대해 줄 수 있는 사람들과 살아도 진심을 나눌 수 있을까 말까인데. 자꾸 내가 뭔 눈치를 보겠다고 힘을 줘서. 오히려 투머치한 성의가 사이를 가른다.


할 수 있는 거 하자.
예림이는 예림이만큼밖에 어차피 못하니까.
그리고 그 예림이 만큼도, 조금씩이지만 성장중이다.
성장에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인위적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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