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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Dec 29. 2023

직관이 연주하는 음악의 흐름

반바퀴묵상 16 (55번, 8번) 23.12.20

#반바퀴묵상 #주디 #55번 #8번

55번

우리는 삶의 음악과 하나가 되어 두려움과 수치심 없이 빛에서 어둠까지 모든 감정의 스펙트럼을 경험할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종류의 음악입니다. 우리가 따라야만 하는 길은 없고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야 할 시스템이나 구조는 필요가 없습니다


8번

1) 8번째 그림자는 우리 자신이 충분히 그런 삶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믿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우리 사회의 기반 전체에 걸친 고질적인 현상입니다. 그리고 두려움의 경계를 뛰어넘는 사람들은 주류 문화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로 이용합니다.


2) 절묘함은 신성의 본질이 개인을 통해 빛나기 시작할 패 경험됩니다. 이 최상의 한 회 상태에서, 당신은 당신 자신의 원래 모습을 사랑하게 됩니다


__________


중학교 때, 가수 박기영의 팬클럽을 알게 됐다. 좀 지난 이야기이긴 하지만, 당시의 인터넷 연결망은 전화선을 매개로 연결되는 모뎀을 기반의 PC통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 집은 천리안을 사용하였는데, 인터넷을 사용할 때마다 집전화가 먹통이 됐다. 부모님의 잔소리를 피해 인터넷을 쓰기 위해서는 모두가 잠든 새벽, 인터넷에 접속하며 모뎀이 연결되기까지의 소음을 이불로 눌러가며 숨을 죽여야 했다.


당시 인터넷으로는 고화질 사진이나 영상을 보기는 어려웠고, 텍스트 기반의 동호회 글을 읽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라디오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주최한 청취자 대상의 노래대회에서 고등학생이던 박기영이 놀라운 실력으로 우승했고, 그녀가 내가 살던 인천의 인성여고 출신이라는 소식을 듣고 그녀에게 흥미가 일었다. 나는 중학생이긴 했지만, 라디오 콘테스트에서 입상하는 것으로 연예계에 진출한 그녀의 스토리는 마치 개천에서 용이 된 성공신화인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바로 옆동네의 고등학교라니.


아무래도 연예인 팬클럽이다 보니, 공개방송이나 홍대의 소극장 규모의 클럽에서 동호회 모임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천에서 방송국이 있는 여의도까지, 혹은 클럽이 있는 홍대 입구까지는 꽤 긴 여정을 전철을 타고 이동해야 했다. 게다가 인천의 중학생으로서는 가슴 설레는 서울 기행이다. 교복을 최대한 지방 티(?) 나지 않게 갖춰 맵시를 내고, 방과 후 부모님 몰래 친구들과 놀고 온다는 명목 하에 서울행 상행선에 올랐다. 음악방송이나 공연 스케줄은 꼭 느지막이 저녁 10시가 넘어 끝나곤 했다. 당시엔 팬클럽이 흔치 않아 가수가 뒤풀이 자리에 동석하기도 했다. 그렇게 동경하던 여가수 박기영과 대면하고 나면, 묘하게 그녀가 친근하게 느껴지고, 스타 박기영이 아닌 아는 언니 박기영처럼 느껴져 팬으로서의 만족감이 높았다. 팬클럽에는 기타, 드럼, 베이스 등 악기를 연주하는 언니 오빠들도 많았는데, 착실하게(?) 학교생활에 매진했던 나에게는 악기를 메고(지금 생각해 보면 허세였던 것 같기도 하다) 다니며 공연장 밖에서도 뮤지션임을 강조하고, 음악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논하던 그들이 멋지게 느껴졌다.


어느 순간에 중학생인 나는 귀가시간이 너무 늦다며 부모님께 야단을 맞기 시작했다. 그저 친구들과 놀다 들어온다고 하기에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 귀가하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어디서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니 괜찮지 않을까 했던 나의 겁 없는 당당함은 부모님께 당신의 딸이 비행청소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로 이어지는 트리거가 됐다.


“서울에서 음악공연을 보는 건, 절대로 안된다”


“아빠 왜요? 저는 나쁜 환경에 가는 게 아니에요. 박기영은 인성여고 출신의 여가수예요. 함께 음악을 즐기는 팬클럽 동호인들도 번듯하게 직업도 있고, 퇴근 후 악기 연주를 즐기는 건전한 사회인들이고요.”


“아빠가 안된다면 무조건 안돼”


“아빠, 저를 존중하신다면 왜 안되는지를 설명해 주세요. 무조건이라는 말씀은 제가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부모님의 교육적 의도를 알아야, 저도 기쁜 마음으로 따를 수 있잖아요.”


“아무튼 안돼. 너는 왜 아빠가 안된다는데 버르장머리 없이 꼬박꼬박 말대꾸냐.”


끝내 부모님의 반대에도 몰래 감행한 서울행은 자정을 넘어 집에 들어가던 어느 날, 아파트 정문에 서서 기다리던 아버지의 맨손몽둥이로 막을 내리게 됐다. 아버지는 노여움에 활활 타오르는 치우천황과 같은 모습이었다. 무서워서 바로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자 하는 내 욕망이 두려움에 꺾여버렸다.

마치 8번 유전자키의 그림자 모드가 됐달까. 한때 마음을 나누던 음악동호회 사람들은 나를 비행청소년으로 이끄는 물색없는 불량배들이 됐다. 지금 생각해 봐도 선량하기 그지없는, 그저 순수하고 조금 특이한 동호인들이었는데 말이다.


“8번째 그림자는 우리 자신이 충분히 그런 삶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믿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우리 사회의 기반 전체에 걸친 고질적인 현상입니다. 그리고 두려움의 경계를 뛰어넘는 사람들은 주류 문화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로 이용합니다.”


동호회 활동은 부모님의 반대로 단념해야 했지만, 이내 나는 라디오에 심취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별밤, 음악캠프, 음악도시, 라디오천국, 고스트스테이션을 번갈아가며 들었다. 동시간대라 놓치는 방송은 친구들끼리 공테이프에 녹음본을 교환해 가며 들었다. 이때 들었던 음악들이 삶에서는 노동요가 되기도, 애환과 설움을 달래주는 힐링이 되기도, 마음을 대신 전해주는 사랑의 메신저가 되기도 했다.


음악을 잘 알지는 못해도 무척 좋아했던 나는, 어린 시절의 그림자로 기행을 일삼는 내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었지만, 음악을 듣는 순간만큼은 참 행복했다. 어쩜 있는 그대로의 내 취향과 취미를 나아가 직관이 이끄는 진동과 파장을 그대로 느끼고 즐기는 내가 나는 참 자유로웠다.


”절묘함은 신성의 본질이 개인을 통해 빛나기 시작할 패 경험됩니다. 이 최상의 한 회 상태에서, 당신은 당신 자신의 원래 모습을 사랑하게 됩니다. “


지금의 나는, 어딘지 평범하기도 하지만 더 이상 주류의 스트림에 침잠하지는 않는, 매 달이 가난하지만 매 달 나만의 창조적 가치를 세상에 한 마디라도 드러낼 수 있는 프리랜서다. 어쩌면 어릴 때의 억압됐던 기억이 성인이 되어 자유롭게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기폭제가 된 게 아닐까. 음악인들과 나눴던 시간은 부모님의 엄격한 훈육 사이의 틈에 박혀 반짝반짝 빛난다.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시간과 열정, 에너지를 담아내던 그들의 모습은 마치 55번이 말하는 자유의 선물처럼 내 몸과 마음에 하나의 음악으로 흐른다.


“우리는 삶의 음악과 하나가 되어 두려움과 수치심 없이 빛에서 어둠까지 모든 감정의 스펙트럼을 경험할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종류의 음악입니다. 우리가 따라야만 하는 길은 없고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야 할 시스템이나 구조는 필요가 없습니다”


마침, 오늘은 집 근처 LP 바에서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 님과 조우하기도 한 날이다. (밀린 반바퀴묵상을 작성하는 오늘은, 12월 27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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