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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Jan 24. 2024

함께 하는 것과 의존의 한 끗 차이.

‘네가 참 좋아’라는 말에 담겨야 할 것들.

주미언니와 대화하다 보면, 삶의 정수를 길어 올리는 인사이트를 얻을 때가 많다. 물론 모든 대화가 다 그렇듯, 신변 잡기적인 대화 사이사이 보석처럼 반짝이는 인사이트를 건져 내는 것이다. 보통은 대화하는 시점엔 잘 모르다가, 하루가 지나고 나면 "아...!" 하고 깨달아지는 아하모먼트가 있다. 내성적임에도, 나는 길어 올릴 아하모먼트를 많이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작년에, 그다지 친한 사람이 없었어"라고 말하는 내 이야기에 언니는 '그럼 나는 뭐였냐' 하고 물었다. 곧장 빵 터졌다.


언니, 내가 '친하다'라고 생각하는 사이는 "겉으로" 친밀감이 진하게 드러나는 사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나는 그런 친밀감이 부담스럽거든. 사실 친하지 못하는 건, 나 스스로인거지. 그렇게 생각해 보니 연결감이 드러나지 않아도, 가까운 사람이 많았네. 언니도 나에겐 참 친한 사람이었다.


우리 둘이 합의한, "편안한 사람"은 함께 하되, 서로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사람이다. 물리적 공간을 공유하더라도, 서로의 내면작업을 침해하지 않을 만큼의 틈을 두는 사이 말이다. "함께 하면 어쩔 수 없이 한쪽이 맞추거나 한쪽이 양보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전제가 거의 성립하지 않는다(물론, 부득이 성립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때 아주 자유롭게 합의한다.). 맞추거나, 양보하거나, 서로의 상태를 감안하고 배려를 하는 상황이 있더라도 그 배려가 실제로 적절한지를 물어보는 사이. 남들이 보기엔 조금 냉랭해 보일 수 있어도, 내겐 참 안전하고 편하다. 특히 내면작업이 매 순간 참 중요한 나에게는.


"네가 참 좋아"


이 말은 상대의 이러저러한 면이, 상대가 이렇게 저렇게 해서 나에게 맞춰주는 모습이 좋아서가 아닌, 그 사람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조건화되지 않은 모습 그대로를 지칭하는 말이어야 한다.


많은 조건들에 맞추는 것이 익숙한 사람은 조건에 맞춰 자신을 평가받고, 나름의 긍정적 피드백을 따라 말과 행동, 사고와 삶을 조율하다 자신을 잃어버린다.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은 함께 하는 시간 동안에 상대를 계속 살피고, 상황과 상대에 적절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에 자신의 정체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살피고 움직이는 데 자신의 생명력을 허비한다. 함께 하는 타인들이 편안해하고, 만족해할지 모르지만, 모두에게 적합한 상태와 조건들을 실현해 내느라 헌신하게 될지 모르지만, 자신을 잃어버렸기에 자신이 한 행위와 결과에만 매몰되기 쉽다. 그 시간에 자신이 추구했던 가치나 모두가 함께 바라보고 공명했던 본질에 대한 소회를 길어 올리지 못하기에, 헌신한 후 허탈한 일상의 시간들이 반복된다.


함께가 좋은 만큼, 함께하는 시간에도 홀로 오롯이 자신을 마주할 수 있어야, 관계는 건강하다. 함께하는 시간에 오롯이 자신을 마주하고 있더라도, 관계 안에서 유연함과 부드러움을 함께 드러낼 수 있다. 함께인 와중에 자기다움을 견지할 수 있는 사람은 외골수가 아니라, 안전한 사람이다. 까칠해 보이거나, 어려워 보여서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느라, 서로의 안전거리를 존중하느라 유지하는 호기심과 관찰. 상대에게 그가 맞출 수밖에 없도록 하는 조건을 들이밀기보다, 상황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나누고, 그에 따른 결정과 행동까지도 상대에게 맡기는 존중감. 내가 그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보다, 공명하는 사람이 되어주는 것.


함께 하는 것과 의존은 분명 겉보기에는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물리적, 정서적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의 함께하는 공간 사이 존중의 작은 틈을 허용하는 것에, 매 순간 그 틈 사이에서 일어나는 케미와 존재의 기류를 궁금해하는 사랑의 호기심이 있다는 것에서 한 끗이지만 다차원을 넘나드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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