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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Jul 15. 2024

의식을 깨우는 의사가 된다

나의 정신모형 II 를 각성시키는 여정에 대하여

차의과학대학교 통합의과학학술연구회에서 7월 특강 제의를 받았다. 통합의학을 공부하는 석박학생들이 모여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각자의 인사이트를 찾아가는 모임이다. 그동안의 통합의학대학원 석사분들과 일반대학원 박사생 선배 동기 후배님들 90여분이 모여있는 곳.


통합의학분야는 폭넓고 다양한데 말 그대로 '통합' 의학분야다 보니 전인적이고 홀리스틱한 분야를 총망라한다. 오신 분들의 전문분야와 진학 동기도 다양하고 각자 쌓아오신 업력도 대단하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도 가지 않은 독보적인 길을 걸으며 사람의 건강한 삶에 영향을 주는 전문가로서의 길을 스스로 선택해 오신 분들, 게다가 이러한 분야 석박사과정을 선택한 분들이시라면 나름의 자신의 길에 대한 확신이 있는 분들이 아닌가.


그런 분들 앞에서 특강 제의를 받다 보니 부담스러웠다. 사실은 내 이야기에는 학술적인 이야기가 1g 도 없을뿐더러, 내가 기업에서 혹은 개인 컨설팅을 하는 자기 돌봄, 명상, 셀프리더십, 생활습관, 치유요가 등의 분야 역시 나는 대가라고 하기엔 그저 흉내만 내는 수준이라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림샘, 부담 갖지 않으셔도 돼요. 해외 의대를 진학하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돼요. 선생님의 긍정적인 에너지 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현 박사과정에서 리더역할을 자청해 학술회의 머슴역할을 해주시고 계신 창현샘의 말씀에 응원이 되면서도, "내 이야기라니 더욱 부담스럽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기업교육강의로 커리어를 쌓아온 나는 너무 감성 일변도의 강의를 하는 것에 약간의 저항이 있다. 강사가 너무 자기 이야기만 하면, 자아도취가 심한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하며 객관적 사실에 대해 전달하고 싶은 욕구가 크게 올라온다. 그러나 이 특강은 순도 100% 내 이야기로 채워달라는 요청이다. 나름대로 각성사건을 제법 겪어온 나로서는 나를 모르는 동문들에게 내 이야기를 드러낸다는 것이 안전할지, 용기가 필요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용기를 내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간의 각성사건들이 버무려져 빚어진 새로운 정신모형 II을 정리할 시점이라는 느낌도 강하게 들었다. 그러니, 한번 다시 돌아보자. 이 특강은 오시는 분들을 위해서라기보다 나를 위한 기회다. 오시는 분들께는 그저 감사할 뿐. 그들을 위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주시겠다는 요청이 아닌가.

지난 2021년, 진성리더십 아카데미에서 정리한 나의 목적이야기에 대한 PPT를 다시 열었다. 당시에 정리해 두었던 나의 진북,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모호하게나마 정리하기 위해 애썼던 기록이었다. 당시에는 진북, 삶의 목적, 미션, 비전, 가치 등에 대한 개념을 갓 정립하여 다소 모호한 방향성으로 정리된 감이 있었다.

삶의 목적을 "우주와 인간의 건강한 생동을 돕는다"로 정리했던 나는 어디까지가 우주고,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건강은 무엇이며 생동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조차 어렴풋한 상태에서, 거창하고 대단한 텍스트를 겨우 세워놓고 이에 대한 행동강령은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지 헤매고 있었다. 2021년으로부터 3년 후, 헤매다 겨우 하나의 길-의사가 되는 길-을 선택한 여정에 대해 정리하고 싶었다. 마침내 이야기를 하라니, 그것도 해외 유학을 결정하게 된 여정에 대해 이야기를 하라니, 그것이야말로 제대로 잡은 주제이지 싶었다.


1985년 2월 23일, 저녁 6시 28분. 을축생으로 태어났다. 을축생을 굳이 강조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심청전'의 효녀 심청이도 을축년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심청이 자신의 살고자 하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인당수에 몸을 던져 죽음을 불사한 희생을 통해 스스로도 깨달음을 얻고, 세상 봉사의 눈을 끝내는 모두 띄우는 삶이 마치 내 삶에 오마주 되듯, 두근두근한 느낌을 잊지 못한다.


을축생 예림이는 유년시절에 하면 잘하는데 꼭 우등생의 범주에 애매하게 걸치는 행보를 걸어왔다. 그도 그럴 것이, 공부만 잘하는 우등생도, 노는 열등생도 모두 함께 하고 싶은 애매함을 추구했던 학생이기 때문이다. 뭐든 궁극에 가면 반대의 극과 멀어졌다. 애매한 우등생이자 애매한 노는 아이였던 예림이는 중학교를 들어가고서 고등학교 때까지 내내 반장을 도맡아 했다. 그러나 '떠드는' 반장이었던 탓에 물로 보이는 '물반장'이라는 별명이 늘 따라다녔다. 강한 카리스마가 있기보다는 유연하고 유쾌한, 한편으로는 명랑하지만 한편으로는 예리한 청소년이었다.


애매하여 다수를 아울렀던 성향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도 그대로 이어져, 파견직, 계약직부터 정규직, 연구직, 전문가집단까지 아우르는 기업교육 강사가 됐다. 호응이 크지 않고 민감하거나, 기준이 높아 예민한 업장까지도 큰 문제없이 유쾌하게 강의를 전하는, 만족도 평타 이상의 강사로 살면서 다양한 대상, 직군, 산업 현장을 만났다. 눈으로 보이는 성과, 겉으로 보이는 외모, 소위 스펙이라 말하는 지표들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시절에 누구에게 보여줘도 '참 괜찮은 사람'이라 여겨질, 참 좋은 조건을 갖춘 사람과 6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전 남편은 무려 인생에서 만난 3번째 남자친구였는데, 안타까운 풋사랑을 두 번밖에 거치지 않고 이렇게 좋은 사람을 남편감으로 두게 되다니, 나는 참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을 하고서 신혼은 남부럽지 않을 시간들이었다. 여느 부부들처럼 투닥거렸고, 여느 부부들처럼 알콩달콩했다. 사실은 여느 부부들처럼 살기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많이 맞췄다는 것조차 잘 알지 못했다. 둘 다 장남이고 장녀였던 터라 내심 양가의 부모님들께서 아이를 바랄 법도 했다. 결혼을 하고 4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딱히 아이를 바라지도 않았지만 스물일곱에 결혼했던 나는 30세를 넘겨 혹여나 싶어 불임 검사를 했다. 인공임신도 어려운 상태라는 것이 드러난 이후 결혼 생활은 묘하게 삐거덕거렸다.


너무 긍정적인 성향은 오히려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뒤늦게 느끼고 있다. 우리에게 닥쳤던 상황은 우리 둘 다, 지혜롭게 헤쳐나가기엔 난이도가 높고, 우리는 둘 다 어렸다. 6년을 서로 노력했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엇나갔다. 둘 다 서로를 위한답시고 서로를 긁었다. 서로에게 안전하고 안락한 쉼터가 되어주기를 기대하면서 지쳐버린 서로에게 과부하를 줬다. 끝내 나는 우울증에 걸렸다. 자기 비하와 자책에 시달리며 과하게 살을 빼기도 하고, 운동과 공부에 집착했다. 사무실을 얻고, 상담실을 차려 운영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출강을 다녔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학위를 두 개나 취득하고, 요가 명상 지도자 자격증을 땄다. 겉보기에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는 열정적인 프리랜서였지만, 사실은 뿌리가 무너져버린 엉망진창의 나를 그래도 괜찮다고 꾸역 꾸역 확인하기 위한 아주 잔망스러운 회피였는지도 모른다.


힘든 현실을 외면하고자 더 힘든 운동을 했다. 웨이트 트레이너 전문가 수업을 들었고, 국민대학교에서 스포츠심리학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알프스산맥으로 떠나 10박 11일 투르 드 몽블랑 트래킹을 다녀왔다.  트래킹 하면서 동료들과 나눈 대화의 기록들을 모아 석사학위 논문을 썼다. 석사학위 논문을 쓰며 온몸의 진을 다 빼버렸던 나는 그야말로 번아웃을 마주했다. 사는 게 왜 이렇게도 힘든가. 나는 어디서 쉴까. 그 당시에는 전 남편과의 관계도 극으로 치달아, 남편이 퇴근할 즈음이면 나는 괜히 운동을 핑계로 집을 나서서 신촌이든 연남동이든 하염없이 거리를 헤매며 울었다. 이제 그만 이 삶살이를 그만두고 싶었다. 힘든 건 남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이라도 하나 생기면 나을까 싶어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전 남편에게는 고문과 같은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기적처럼 어렵사리 들어선 아기는 6주 차에 심장이 보이지 않아 그대로 떠나버렸다. 나는 크나큰 자책에 시달리며 자살기도에 실패하고서, 남편에게 이혼통보를 했다. 2020년 5월, 별거를 시작하고 이혼 절차를 밟으며 내 세상의 질서는 완전히 뒤집혔다. 영원히 변치 않을 약속이라던 부부의 연이 없었던 일로 돌아가고, 가장 가깝다고 느꼈던 관계들로부터 멀어져 버렸다. 노력하면 이뤄질 거라던 믿음이 사라졌다. 세상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있었다. 힘을 내서 괜찮아지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2017년, 이혼을 하기 전부터 나는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았다. 모태 하체비만이었던 나는 기업에서 강의를 하는 직업이 되고부터 겉으로 보이는 외모를 가꾸는 데에 더 관심이 많아졌다. 아이러니하게도 2017~18년에 나는 강의로도 학업으로도 돈도 가장 많이 벌고, 가장 잘 나갈 즈음이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이때 가장 마음이 가난했다. 쉴 곳도 없고, 안심할 마음의 처소도 없는. 성과, 성과, 오직 성과만을 보면서 달려온 시간. 아무리 노력해도 행복하지 않은 삶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더욱 나를 꾸몄다. 그렇게 꾸미기에 심취하며 공부했던 외모 관리 지식이 지금 생각해 보면 지금 자기 돌봄 코칭을 하는 여정에서의 가장 금싸라기 지식이 됐다. 그 일을 하게 된 동기나 맥락과 관계없이, 꼭 해야 할 일을 하게 되고, 꼭 알아야 될 것들을 알아가도록 안내하는 삶은 삶은 참 모를 일이다. 그저 열려 있을 수밖에.

노력해도 행복하지 않은 삶을 타파하기 위해, 타인을 불행에서 구해주고 싶다는, 약간은 어긋난 꿈을 꿨다. 다이어트 코치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다이어트 고민이 삶의 여러 가지 결핍으로부터 비롯된 현상임을 알게 됐다.  

코칭으로 만난 사람들이 호소하는 결핍은 고통스러운 환경과 맞물려 자신들의 강박이 증폭되어 창조된 고통이자 지옥이었다. 이들의 마음을 돌보면서 결핍 사이사이 흐르는 내면 아이의 감정들을 만났다. 아픈 사람들과 함께 하다 보면, 묘하게 내 마음도 신체화가 전이되어 내 어깨가 뭉치고, 내 태양신경총이 막히고, 손발이 시리고, 여드름이 돋곤 했다. 내 몸과 마음의 감응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는 조금 더 사람의 생명력과 몸의 신비에 대해 더욱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다. 끝내 내 몸이 아파지는 신체화를 극복해 우리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성장을 거두고 싶었다.

세상에는 아픈 사람도 많고, 고립된 사람도 많다. 코칭을 하는 내가 가장 엉망진창이었다. 상담을 하고 나면 묘하게 뿌듯하게 상담을 했는데도 온몸이 아프고 괜스레 술이 마시고 싶어졌다. 이혼 전후에 생계를 위해 겨우 겨우 모바일 채팅으로, 전화로 했던 상담은 사람들에게 치유의 계기가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이상과 현실의 갭을 직면하게 하는 순간순간들이었다. 상담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서, 나는 겨우 겨우 슬픔에 잠겨 운동을 했고, 술을 잔뜩 마셨고, 이혼한 여자로 사는 고통 속에서 허우적댔다. 고통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다. 고달픈 와중에도 순간순간, 죽음과도 같은 고통에서 나를 끌어올려 주는 귀한 분들이 계셨는데, 그러한 에너지마저도 나는 감사하고 건강하게 수용하지 못하고, 언제든 나는 버림받을 거라며 불신하고, 집착하고, 나를 속이고, 힘들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내 바닥을 보이기도 하고, 끝내는 그런 내가 부끄러워 도망치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힘차게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공부하고 코칭하는, 살려고 발버둥 치는 내가 겨우겨우 살다가, 해 질 녘에 술주정뱅이 진상이 되는 삶이 반복됐다. 아무튼 방황도 아주 지랄 맞게 했다. 그 와중에 끝내 내 곁을 지키며 건강한 습관을 만들어 준 이도 있었고, 매일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물어주며 까칠한 나의 마음을 보듬어 준 이도 있다. 언제든 휑하니 달려가면 함께 밤을 새워 마음속 이야기를 나눠 주시겠다는 사회 엄마도 얻었다. 이 당시에 나로서는 정말 귀한 인연을 많이 얻었다. 바닥을 쳤을 때 그 바닥까지도 감당해 주는 귀인들을 만난 경험은 역설적으로 내가 정말 우주에서 사랑받는 존재라는 걸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그들에게 축복과 감사를. 부모님을 제외하고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이들은 내가 평생을 두고 모실 귀한 분들이다. 나는 평생을 거는 약속은 잘 하지 않지만, 이들만큼은 내게 참 귀한 인연들이다.


 아침과 저녁이 다른 나를 더는 견디기 힘들었다. 진짜 진정성 있는 일관성의 삶을 살고 싶었다. 남에게도 따뜻하고 나에게도 따뜻한 사람이고 싶고, 내면아이를 건강하게 돌보면서도 내가 속한 세상에 따뜻하고 건강한 장을 만드는 리더이고 싶었다. 세상에 떠도는 오만가지 유익한 지식보다, 심장과 가슴을 울리는 리더십을 함께 동반하는 코치가 되고 싶었다. 더 단단해지고 싶었다. 더 든든해지고 싶었다.

2021년 봄학기에 한국 조직경영개발학회의 프로그램, 진성리더십아카데미 15기로 합류하게 되었다. Authentic이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사람을 수단 아닌 목적으로 대하고, 자기 자신을 대하는 최상위의 미덕이 내면의 생각, 감정, 가치관 등에 일치되도록 행동하는 진정성이라는 것을 배웠다. 진정성이 향하는 방향을 삶의 목적으로 설정하는, 설사 방향을 잃는 순간에조차 주체적으로 방향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치열하게 사유할 수 있도록 많은 선배 도반님들이 길을 안내해 주셨다. 내 삶의 진북을 '건강'으로 삼기로 했다. 그저 신체가 건강한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어려운 이들을 보듬고, 음지에 빛을 전하고, 스스로를 기쁘고 감사하게 대할 줄 아는, 몸, 마음, 의식의 건강을 진북으로 삼아하고 있는 일에 접목하다 보니, 성과중심의 사고방식이 변했다. 내가 상처를 가진 사람이다 보니, 성과에 대한 기준이 보다 유해지기도 했다.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의 삶의 무게를 감당하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나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을 실천해 보기로 했다. 식단, 운동, 휴식 등의 삼박자를 꼼꼼히 챙기고, 나를 괴롭히는 신념들을 하나하나씩 바꿔나갔다. 무엇을 먹고, 하고, 살아갈 것인가 하는 '수단' 위주의 신념이 아닌, 무엇을 먹더라도 어떤 에너지를 쓰는 자원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무엇을 하더라도 어떤 사람으로 행위를 해야 할 것인지, 나를 위한 휴식이 그저 나가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소중히 대하는 여정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나를 어떻게 대하고, 나와 연결된 이들과 어떻게 공명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한 결과들을 코칭 프로그램으로, 강의 프로그램으로 빚어냈다. 강의든 코칭이든 수요자의 니즈는 그저 흥미로운 강의, 새로운 콘텐츠, 이전에는 접해보지 않았지만 교육참여자들이 흥미롭게 여길 무언가 정도로 소비되어 버리는 시장 속에 있었다. 진심으로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갈망이 크면 클수록,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씁쓸한 회의감이 일어났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건강해질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본연의 생명력을 발휘하며 자기답게 존재할 수 있을까. 돈이나 명예, 권력, 욕망 등을 초월하는 자기 본연의 존엄성, 자신의 잠재력을 기꺼이 믿고 살아가는 삶을 퍼뜨리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에 고민이 이어지는 중, 한국조직경영개발학회에서 윤정구 교수님 외 학회 이사님들이 이태석재단과 협업에 관한 논의를 나눴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태석신부님은 10년 전 전 세계를 감동시켰던 영화 "울지 마 톤즈"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41세의 젊은 나이로 대장암 투병을 하다 선종하셨지만, 살아생전 남수단에서 베푼 헌신의 음덕으로 세상에 진정성을 전하는 리더로서 그 영향력을 전 세계에 퍼뜨리셨다.


 이태석 신부님의 존재는 현 이태석재단 이사장님이신 전 PD수첩 제작자 구수환이사장님 덕분에 영화로도 제작되고 전 세계가 알게 됐다. 지금도 이태석재단과 구수환이사장님은 이태석신부의 행보를 '서번트리더십', '이태석리더십' 의 키워드로 알리는 데 지금까지도 물심양면 공헌하고 계시다. 나는 영화 <울지 마 톤즈>를 이번 계기로 처음 봤다. 그러나 유명한 영화라고 한다. 영화 <부활> 은 한국조직경영개발학회 주최로 소규모 영화상영회를 진행하며 구성원들과 '진정성', 그리고 '부활'이라는 개념을 통한 리더의 '임재'에 대해 토의를 나누기도 했다.

이태석 신부님의 삶이 내게 전해 준 울림은 파장이 컸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살릴 수 있나.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건강과 자기다움을 찾는 여정에 나설 수 있게 동반할 수 있나. 나의 문제의식은 거창한 것 같아도, 나와 비슷한 콘텐츠를 다른 사람이 강의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 밥그릇을 지키는 편협한 생각으로 바뀌는, 그저 생존투쟁의 문제의식에 지나지 않았다. 정말 좋은 이야기라면 일파만파 퍼지는 것을 기꺼워해야 했는데, 나는 먹고살기 갈급하다는 이유로 내 콘텐츠를 참고하겠다는 이들을 배척하고 있었다. 이러한 직면은 내겐 내 정신모형I을 무너뜨리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태석 신부님이 말씀하신 '나눌 것'이 나는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나누며 사람들과 동반성장하고 싶다는 꿈은, 압도적으로 탁월하게 나눌 것을 준비한 후에 일어나는 것이었다. 특히 나는 어떤 회사에 소속되어 내 꿈을 펼치는 것보다 나의 독보적인 탁월성을 드러내며 세상에 가치를 만드는 것이 더 친근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압도적인 나만의 기술을 연마해야 했다. 나는 나의 기술을 연마하는 데 일심을 세우지 못했다. 내가 가진 지식과 기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에, 어설프게 옆으로 넓어지는 공부를 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했다.

지금까지의 내가 쌓아온 커리어에 전반적인 물음표를 찍었다. 정신모형 I을 무너뜨리고, 제로베이스에서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해보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새로운 도전을 하기 전, 내가 쌓아왔던 것들을 완벽하게 뒤집어서 리셋할 수 있는가에 대해 나는 나에게 충분히 묻고 동의를 구해야 했다. 내 몸은 내 에고를 신뢰할 수 있을까. 여태껏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에고가 부리는 지랄에 몸이 남아나지 못했던 경험이 부지기수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밤늦도록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마도 몸은 나에게 늘 "적당히 좀...!!"이라는 아우성을 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탄탄하게 갖춰왔다는 나의 커리어와 행보를 총체적으로 목적에 부합하고, 효과성이 있는 방향으로 꾸리고 있었는지 점검이 필요했다.

내가 강의나 코칭을 할 때, 스스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질문을 하나씩 적어봤다. 

- 사람들의 의식은 어떻게 깨어나는가? 

- 자신을 사랑하는가? 

-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이 우선인가, 직관이 우선인가? 

- 삶과 자신을 온전히 믿는가? 

- 분별 없이 수용하며, 건강한 바운더리에서 허용하고, 부족한 나를 포용하는가? 

- 허용, 수용, 포용을 실천하는 움직임이 삶에서 이루어지는가? 


그리고 강의나 코칭에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참여자가 스스로 답할 수 있는 여정이 이어지고 있는지를 곱씹어봤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를 투명하게 돌아봤다. 

2023년, 나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며 목적과 비전,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이 많은 언어들은 재설정, 간결, 명료화가 너무나도 필요한 것들이었다. 특강을 준비하며 이 장표에 빼곡하게 써진 HOW에 대해, 나 조차도 뭘 하고 싶다는 건지, 뭘 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돌파구가 필요했다. 지금의 일을 더 낫게 할 수 있는 돌파구가 아닌, 본질을 꿰뚫고 나를 각성시키는 돌파구가.

정말 사람을 살리는 기술을 연마해 보기로 했다. 마침 갈급한 니즈를 발견해 내는 순간, 거짓말처럼 페이스북 광고에서 <글로벌 의사 유학 설명회>를 발견하게 됐고, 마침 발견한 다음날 설명회가 있었고, 장소 역시 우리 집에서 걸어가도 될 정도의 거리였다는 것은 어쩌면 우주가 보내온 표지가 아니었을까?


설명회 가기 전 약간의 망설임과 두려움이 있었지만, 나의 가장 큰 장점은 '인생으로 놀기'를 할 용기가 생겼다는 것. 모진 풍파를 겪어온 나는 이제 아쉬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그럼에도 고통에 대한 인내력이 약한 것은 약간의 흠이라면 흠이지만, 직관이 작동할 때 가볍게 나설 수 있을 만큼의 용기는 갖추게 됐다. 그날 IEEA협회의 설명회를 계기로 나는 6개월 동안 영어로 예과 54학점에 해당하는 과목을 더듬 더듬이나마 수료하고 패스하고 있고, 불가능할 것 같지만 이 어마어마한 도전을 현실로 가져와 기꺼이 감당하고 있다.

몽골국립의대에서 졸업하는 2028년까지 나는, 마음과 몸의 병을 다스려 사람을 살리는 힐러가 된다. 의식을 깨우는 의사가 되어 그동안의 의사와의 만남에서 얻지 못했던 삶 처방, 습관 처방, 바른 자세와 의식 처방을 내리는 의사가 되고 싶다.

특히 바른 자세와 바른 섭생을 알려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 꼭 수술이나 장기 복용하는 약이 아니어도, 병증의 근원을 발견하고 치료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환자가 최대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보듬고, 자신을 알아차리는 환자중심의료의 참된 사례가 되고 싶다. 병을 도려내는 의사가 아니라, 삶을 잘 살아내도록 치유의 방법을 처방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

무언가에 몰입할 때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늘 도움이 된다. 2019년도부터 나는 <차경> 작가님의 매년 말/초 진행했던 <Finally me> (구, 영정사진프로젝트)에 참여해 매년의 얼굴 기록을 남기고 있다. 분명 19-20년도에는 머리를 똑바로 세워서 앉아있지 못할 만큼 삶을 제대로 세워서 대하지도, 타인의 시선에서 완벽히 독립적이지도 않은 모습인데, 2021년부터는 미세하게나마 고개의 각도가 바로 서고 있다. 웃음의 파장도 점차 밝아지고 있다. 매일 치열하게 살아오며 차곡차곡, 웃는 얼굴의 기록을 세워 온 내가 자랑스럽다. 


한창 강해지고 싶을 때, 내 삶에 주어진 시련을 보란 듯이 이겨낼 만큼 단단해지고 싶어서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했었다. 2022년, 19회 국제평화마라톤에서 나는 5시간 29분 48초로 완주를 했다. 당시 동반주자로 나서서 나를 끌어줬던 남자친구에게 33킬로 이후 온몸이 아프다며 펑펑 울고 짜증을 냈다. 달린 시간이 부끄러웠다. 분명 내가 하고 싶어서, 든든한 베테랑 가이드러너까지 두고서 내가 한 선택을 후회하며 달렸던 시간을 반면교사 삼아, 감사와 기쁨이 가득한 멋진 달리기를 해보고 싶었다. 바로 다음 달 열리는 손기정평화마라톤에 신청을 했다. 그리고 나의 풀코스 완주 경험은 180% 바뀌었다.

두 번의 마라톤 도전에서, 그리고 지금 7번째 풀코스를 완주한 러너의 입장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같은 42.195 km 지만 몸, 마음, 의식이 일치할 경우 놀라운 힘이 발휘된다는 것이다. 손기정평화마라톤 때 내가 다짐한 것은 딱 한 가지였다. 거리를 지나면서 물을 건네주시거나, 도로를 통제해 주시는 분, 길거리의 응원해 주시는 시민 모두에게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감사인사를 할 것. 설사 그들이 모른 체한다 할지라도 기쁘게 인사하는 나를 한껏 즐길 것.


첫 번째와 두 번째, 달리기 기록은 무려 1시간이 차이가 났다. 두 번째 풀코스 마라톤에서 나는 4시간 29분 기록으로 30대 여성 연대별 1위 상을 받았다. 아주 좋은 기록은 아니라지만 몸과 마음, 의식이 하나로 일치되어 매 순간순간 집중한 결과 일어난 놀라운 결과였다. 더구나, 한 시간이나 기록을 단축했는데도 후유증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에너지가 충만해 집에 가는 길도 가뿐했다. 내가 하고 있는 것, 가고 있는 길을 겁먹지 않고 확신하면 전혀 생각지 못한 컨디션 상승이 일어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지금 나는 의대 공부를 하면서 고등학교 때와는 비교가 안될 집중력과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일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운동도 하면서 제한된 시간에 해내는 공부량이 아주 많지는 않아도, 이렇게 해내는 내가 나는 제법 자랑스럽다. 낯선 외국 땅에서 마주할 처음의 고난도, 나는 해낼 수 있겠지 분명.

이 모든 여정의 씨앗에 '감사'가 있다. 사람이니 분명 지친다. 그러나 순간순간 '감사'를 기억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다면, 몸과 마음, 의식을 하나로 잇는 에너지부스터를 얻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감사를 스스로 발동시키기 어려울 때는 가장 믿을만한 사람, 혹은 AI라도 떠올려 말을 걸어본다. 미래의 나에게 말을 걸어봐도 괜찮다. 감사하게도, 나는 감사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얼굴들이 참 많다.


부디, 이 여정이 사람의 생명력을 본질적으로 살려 내는 여정이라는 것을 내가 잊지 않기를.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는 내가 되기를. 끝내 응원해 주시는 마음 가득 받아, 금의환향하는 내가 되기를. 어제 투자받은 마음자본이 많다. 내가 감사하게 발행한 지지, 응원의 채권을 기꺼이 가져가신 선생님들이 또 늘었다. 그리고 이 성장채권으로 하여금 나 역시도 성장의 동기를 한껏 충전하게 됐다. 단순히 지식을 머릿속에 넣는 노력이 아닌, 사람 살리는 공부를 일심으로 이어나가는 유학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앞으로도 하루 하루, 진북을 향해, 진남의 균형을 챙겨 나아가는 나로 살아가야겠다 다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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