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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May 13. 2021

나의 토르에게

어벤저스 엔드게임 “스포일러 있는” 사심 리뷰.

나의 토르에게.


어벤저스 엔드게임을 두 번 봤다.


전체적인 스토리와 메시지를 생각하면,

마블 시리즈는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캐릭터 면면을 보면, 공감도, 애잔함도, 찡함, 사랑스러움이 고루 묻어나는 인문학적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최애 캐릭터는 토르.


금발에 장신, 건장한 몸에 반전 매력인 귀여운 이목구비의 비주얼은 물론이고, 커다란 망치의 반응에 따라 자신의 의미를 확인하며 일희일비하는 모습, 동생 록키를 미워하면서도 끝내 챙기는 형으로서의 듬직함.

군더더기 없이 직선적이고 솔직하게 소통하는 명료함.


어벤저스의 캐릭터들이 자신의 장기에 따라 비교적 정체성이 명확한 데 비해 토르는 ‘왕’의 자격에 대해, 자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성찰.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자기는 인간과 다른 신이라며 허세를 부리는 그의 모습이 왠지 나의 어떤 모습들과 오버랩되어 다가왔을 것이다.


엔드게임에서 라그나로크에 이어 인류의 절반을 잃고 5년간 술독에 빠져 만신창이가 된 토르는, 과거 속 어머니를 찾아가 눈물을 보인다.

(기억나는 대로 쓴 것이라 영화 속 대사와 정확히 똑같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어머니, 저는 실패했어요”


[토르, 넌 실패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실패자가 아니라 패배자인 셈이지]


“잔인하시네요”


[어찌 보면, 남들과 같은 경험을 한 거란다]


“저는 남들과 같으면 안 되는 존재잖아요”


[토르, 남들의 기대를 모두 맞추며 살 수는 없단다. 남들의 기대는 너의 존재와는 별개의 것이야.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너의 기대에 따라 살아가야 한단다.


남의 기대에 맞추는 너는 본연의 네가 아니야. 참다운 너로서 살렴]


!!!


이 대사가 왜 그리도 마음을 울렸는지.


살면서 내가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를 생각하며 그대로 살려고 애쓰고 또 애썼는데, 그건 본연의 내 이미지라기보단 내 희망대로 편집된 것이었다.


내가 보이고 싶은 이미지를 받은 타인들은, 그 이미지에 맞춰 내 모습을 기대하고- 혹은 내가 타인들의 기대를 그에 맞춰 상상하고-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고, 미워하며 사느라 힘겨웠다.


내가 만든 내 이미지의 구덩이에 빠졌을 뿐인데, 왜 사람들은 본연의 내 모습을 봐주지 않느냐며 외로워하고, 두려워하고, 슬퍼했었다.


사실, 참다운 나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건, 나인데.

토르의 외모가 어떻건 간에, 나는 어벤저스에서 토르를 가장 사랑한다. 자신의 한계에 스스로 직면하며 참다운 나를 찾아 성찰하는 토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 제 잘난 맛(?)에 사는 슈퍼히어로들 사이에서,

토르는 가장 쭈구리가 되기도, 가장 빛나 보이 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적인 매력으로 따지자면 역시 토르가 제일이다. 신인데 인간적인 매력까지 갖추다니, 반칙도 이런 반칙이 없다.


울림이 있었던 대사, 매력적인 캐릭터만으로도,  수퍼히어로물 특유의 유치함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 함께 봤던 사람들과의 소중한 시간도 물론, 3시간을 기꺼이 감수할  있는 이유:)


그래서 잊기 전에, 후기로 남기는 토르 예찬. 

매거진의 이전글 이상과 현실 사이, 처절하게 슬프고 기묘하게 유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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