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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Jul 30. 2021

삶의 의미를 찾아서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모처럼 중학교 때의 한때처럼, 밑줄을 그어야겠다는 압박 없이 책을 읽었다. 두껍지 않은 책이었는데도 읽는데 며칠이나 걸렸다. 중학교 때는 3-4시간이면 다 읽었을 분량인데 성인이 된 나는 20분에 한 번씩 스마트폰을 보고, 고양이한테 안부인사도 하고, 전화도 받고 제법 산만했다. 어른의 책 읽기는

험난하구나.


 하지만 끝내 다 읽었다. 읽고 나선 내가 수레바퀴 위에 있는지, 아래에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끊임없이 돌아가는 수레바퀴는 내가 그 위에 있든, 아래에 잠시 내려와 있든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다. 가끔은 나도 모르게 올라가기도 하고, 때로는 수레바퀴 아래에서 바쁘게 수레바퀴를 쫒느라 지쳐가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하며 바라보기도 하고.


 적어도 수레바퀴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 참 감사한 일이다. 학창 시절에 수레바퀴 위에 있을 땐, 특히 시험기간엔 일탈이 너무 하고 싶어 만화책을 잔뜩 빌려와서 다 읽지도 못하고 연체일까지 깔고 앉아있곤 했다. 시험에 정신이 팔리기 싫어서. 다들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어딘지 불편해 밤을 새울지언정 친구들 앞에선 공부를 그다지 열심히 안 하는 척하기도 했다. 늘 무리 말고 적당히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게 왠지 멋져 보이기도 했다. (물론 한밤중엔 눈물을 머금고 밤샘 공부를 하는 날도 제법 있었다. 지금은 여간해선 밤을 새우고 싶지 않기도, 그럴 수도 없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수레바퀴에 반항하고 싶으면서도 수레바퀴에서 떨어지는 것이 불안하기도 했었다. 수레바퀴 위에서 남들보다 조금 앞서 달려가는 것이 안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조금 앞서 달리기 위해 얼마큼 생명력을 소진시켜야 하고, 삶의 주체를 다른 무언가에 내어주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었다. '열심히력'을 맹목적으로 쓰면서 살면 결국은 번아웃에 소진되어 버리게 된다. 다른 사람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일수록, 열심히의 지향점이 타인이나 사회적 기준에 붙들려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주인공 한스는 여러 번 자기 삶의 주인이 될 기회가 있었다. 우등생으로 칭찬받던 시절, 한스는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기보다 기꺼이 좋아서, 기뻐서 공부를 했다. 그러나 한스를 둘러싼 사람들이 공부의 목적을 신학교 입학시험 합격으로 규정지어버렸다. 신학교 진학과 그의 삶은 그저 하나의 이벤트에 불과한데, 어릴 적부터 타협 없이 어진 관점에 한스는 진학뿐 아니라 삶의 다른 영역, 가령 우정이나 사랑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주체적으로 결정해야 할 것들도 아버지와 교장선생님, 동네 사람들의 시선에 막연한 압박감을 느끼며 기쁘면서도 슬프고, 해방감을 느끼면서도 타락한 기분에 사로잡혀 괴로워했다. 그 어떠한 사건, 사람, 자극조차도 한스에게는 안전하지 못했기에 어디서건 편히 쉴 수 없었다.


 아무리 물리적으로 편안한 곳이라 해도, 아무리 나를 아껴주는 이들이 많다 해도, 삶이 살 만한지, 혹은 죽을 만 한지 결정짓게 하는 것은 결국 내 삶의 주체가 어디에 있느냐일 것이다. 누구를 친구로 사귈 것인가, 어떤 것을 공부할 것인가, 하다 못해 오늘 오후 술 한잔을 마실 것인가에 대한 결정조차도 스스로 주인이 되어 능동적으로 하지 못하면, 어떤 상황에라도 내 삶은 무엇이 답인지 모르는 미로가 되어버린다. 단순하게 하자/말자로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을 복잡하게 생각하다 보면 에너지가 수이 소진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소진된 에너지는 삶의 주체를 빼앗긴 상태에서는 좀처럼 충전될 수 없다.


 헤세는 소설의 말미에서 왜 한스의 죽음을 자살인지 타살인지 분명치 않다고 기술했을까. 한스의 삶에서 일어난 선택과 결정이 그의 내면 속에서 자의적인지 타의적인지 알 수 없었던 것을 마지막 씬에 극명하게 드러낸 것 아닐까. 마지막조차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 결정하지 못한 채 술의 힘을 빌어, 혹은 괴로워서, 어지러워서, 술에 취해서 혹은 그 모든 이유로 죽어버린 한스에게, 애도를.


p.18 시험이란 단지 형적이고 우연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스에게 환기시켜 주려는 것이었다. 시험에 떨어진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었다. 그것은 가장 탁월한 학생에게도 생길  있는 일이라고 말해 주었다. 설혹 한스가 그런 일을 당한다 하더라도, 신이 모든 영혼들을 위하여 특별한 섭리를 가지고 있으며, 예정된 길로 그들을 이끈다는 사실을 생각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p.117. 이건 날품팔이에 지나지 않아. 넌 네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잖니. 그저 선생님과 부모님이 두려운 거겠지. 아니, 1등을 하든, 2등을 하든, 그게 도대체 너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니? 그래, 난 겨우 20등이야. 그렇다고 너희 공붓벌레들보다 어리석진 않다고.


p.146. 그럼, 그래야지. 아무튼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p.199.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이웃과 어울릴 수 있었지만 그는 전혀 내키지도 않았고 몸도 무척이나 피곤했기 때문에 일부러 교제를 피했다. 의사는 그의 건강을 위해 물약, 간유, 달걀과 냉수욕을 권했다. 하지만 무엇 하나 한스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건강한 삶에는 나름대로의 내용과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젊은 기벤라트의 삶에서는 이미 그 목적과 내용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p.205.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가장 행복한 사람은 그의 어린 수습공이었다. 두메산골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수습공은 다시 야외로 나와 힘이 닿는 대로 열심히 일하고, 또 과즙을 마음껏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p.243. 평일에 손이 시꺼메지고, 팔다리가 피곤해지도록 일을 하고 난 뒤라야 일요일의 거리는 축제 분위기로 들뜨고, 태양은 더욱 밝게 빛나고, 모든 것이 보다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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