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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Aug 24. 2021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내가 경험한 세 번의 죽음

 죽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임사 체험’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때 늘 생명의 신비를 느낀다. 우리는 삶만큼이나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얼마큼을 모르고 알고 와 관계없이, 삶과 죽음은 한 사람의 생에 많은 영향을 준다.


 누구에게나 죽음을 경험할 기회는 많지 않겠지만, 내겐 삶에 결정적 영향을 준 죽음의 경험이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나를 깊이 사랑해주셨던, 내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우리 할머니가 처음으로 떠오른다. 나는 할머니와 외모가 제법 닮았다. 자라면서 성격도 닮은 덕에 부모님은 나를 보며 할머니를 자주 떠올리시곤 한다. 할머니는 일찍 할아버지를 여의고 집이 파산한 상태에서 아빠와 작은 아빠를 데리고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셨다. 아빠는 고시원으로, 할머니는 작은 방이 딸린 다방을 얻어서, 작은 아빠는 친척집으로. 그 시절에 어려운 와중에 사업을 선택하신 당찬 분. 다방은 갈빗집으로, 고급 한정식당으로, 미국의 유학생들을 위한 작은 분식점으로, 제주도의 해장국집으로 변했고, 할머니는 늘 결단력과 사업수완, 아름다운 자기 관리력으로 업종이 바뀔지언정 삶을 꾸준히 지키고 계셨다.


 어린 마음에도 늘 예쁘고 우아한 할머니가 좋았다. 큰 식당을 운영하실 때는 힘들 법도 한데, 종업원 이모들과 소일거리로 고스톱을 칠 때조차 험한 욕지거리 한번 하시는 일이 없었다. 제주도에서 해장국집을 운영하실 때도 옷차림은 소박하게 바뀌었지만 정갈하고 단아하셨다. 할머니는 무거운 해장국 뚝배기를 들고 옮기시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2년을 식물인간 상태로 투병하다 생을 마감하셨다. 아버지는 연명치료를 하던 때의 할머니를 기억하지 않기로 하셨다.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면, 할머니는 존엄을 지킬 수 없는 상태의 생을 인정하지 않으셨을 분이시라며. 아름답고 강하고, 자주적이셨던 분이 할머니셨다. 할머니는 새벽마다 맑은 물을 떠놓고 가족을 위해 치성을 드렸다. 돌아가실 적엔 남겨두신 재산이 거의 없었다. 삶을 갈며 베풀고 또 베풀고, 당신을 위한 재산에 대한 욕심은 가져보신 적이 없는 분이었다.


 두 번째 내가 경험한 죽음은, ‘나’의 죽음이다. 나는 2019년 1월 2일, 죽음을 경험했다. 분명 삶에 큰 구멍이 났는데, 아무리 해도 구멍을 메우긴커녕 구멍이 나를 끌고 내려가는 것 같았다. 자꾸만 빨려 들어갔다. 그때 나는 보이는 모습으로는 괜찮은 척을 했고, 그렇지만 괜찮지 않았다. 참을 수 없이 슬펐고, 외로웠다. 무엇을 위해 공부해야 하는지, 살아야 하는지, 찾을 수도 알 수도 없었다. 가난하지도, 고달프지도 않았지만 메말라가고 있었다. 삶에 돈이 전부가 아닌데 나는 미래를 걱정했고 돈을 걱정했다. 자꾸 불완전한 나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불완전을 메꿀 길이 없었고, 주변은 내가 불완전한 모습을 보이면 공격하거나 나보다 더 불안해했다. 혹은 너무 무서워 말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와 크게 다투고서(그때는 그와의 다툼이 잦았다), 삶의 함정이 거대한 늪처럼 느껴졌다. 절망에 휩싸여 내 손으로 천정에 목을 매달았다. 기껏해야  3-4분이면 삶이 끝난 다는 걸 알고 있었다. 눈에서는 눈물 방울이 계속 흘렀다.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나를 이 절망에서 구출해 줄 통로로 나아가듯, 내 목을 옷걸이 철사에 맡겼다. 눈물과 함께 의식이 흐릿해질 무렵, 이 모든 게 끝나면 나를 발견할 엄마가 떠올랐다. 나는 평화로웠지만, 그 후로 지옥이 될 가족들을 떠올리고서 나는 정신을 차렸다. 있는 힘껏, 손바닥이 찢어지도록 온 몸의 힘을 다해 바닥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내 삶에서 놓쳤던 중요한 걸, 내 목숨을 다시 찾아오듯 다시 챙겨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족 비스끄무레한 불완전하고 엉성한 관계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위해서가 아닌, 내 자신으로 충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삶을 단단하게 지켜낼 최소한의 힘을 얻게 된 계기였다.


  번째 죽음은  안에서 일어났다. 작은 생명이 잠깐, 생겼다 사라졌다. 간절히 기다리던 생명이었는데도, 나는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충만하게 길러낼 준비를 미처 하지 못했다. 그리고 준비가 안됐다는  알기라도 하듯, 짧은 인연이었지만 그는 나와 이별할 수밖에 없었다.  생명 빚에 나는 오랫동안 마음 아파했다. 나를 끊임없이 자책하기도 하고, 내게 주어진 인연과 운명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갔고, 나는 여기, 오롯이 존재하고 있다. 왔던 생명을 기쁨으로 맞이하고 사랑으로 키울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짧은 인연은 내가 사랑을 주고받을  있는 사람이라는  알려줬다. 삶에  생명 빚은 나와 만나는 모든 곳에 사랑으로 갚고 싶다. 지나간 모든 시간은 내가 됐고, 다가올 모든 시간도 나에게 많은  가르쳐줄 것이다. 할머니의 죽음도, 나의 죽음도, 그리고 2세의 죽음도  안에 있다. 그리고 나는 죽음의 슬픔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세 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나는 어떤 무언가를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하는 소진이 생을 얼마나 허무하게 하는가를 생각한다. 그 무언가를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하지 않아도, 나는 아무 조건이 없이도 귀하고 소중하다. 존재는 모두 그 자체로 온전하다. 쉬어도 된다고, 놀아도 된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이 자리에, 이 삶에 주어진 것들을 누리고 행하는 것만으로도 생은 온전한 의미를 갖는다. 감사하게 타고 태어난 재능과 마음이 이끄는 방향으로 충분하다. 내면의 소리에 충실하면 삶은 그만큼의 충만함을 준다. 치열한 생존을 위해, 실체가 없는 두려움을 만들고 그를 위해 소진되지 않아도, 나는 사랑받고 있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는 주인공이 암 말기 투병 중에 경험한 임사체험으로 달라진 삶의 궤적과 의미를 쓴 수기 형식의 책이다. 그가 겪는 경험을 온전히 똑같이 체험하진 못했어도, 죽음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한 나는 이후 삶의 많은 부분을 사랑으로 채울 수 있게 됐다. 감사하게도.


“중심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우주 그물의 중심에 있는 나를 느낀다는 뜻이다. 바로 내 위치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 중심이 곧 우리 모두가 존재하고 있는 유일한 장소이며, 그러니만큼 이 중심 자리를 가슴으로부터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p.191.


 우리는 결국 모두 죽는다. 삶은 끝을 향해 달려가는 여정이기에 어떻게 삶을 살아갈 것인가,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어떤 존재로 생을 채우고 또 비울 것인가를 이따금씩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온전하게 살다가 아무 흔적 없이 가고 싶다. 미련도, 아쉬움도 없이. 그래서 이 생 순간순간 느껴지는 사랑과 감사, 충만함을 오롯이 느끼고 주고받으려고, 깨어 있으려 노력한다. 사람들과 만나는 것만큼이나 나와 만나는 것을 즐긴다. 성실하게 일상을 꾸려나간다. 그게 불완전한 생을 감사하게 받아 사랑하며 사는, 충만한 길이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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