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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Sep 02. 2021

가을맞이 집 정리

공간에, 마음을 담는다

살짝 잠이 부족한 상태의 나는.


자꾸만 멍한 상태에 빠진다.

눈에 보이면 까먹지 않을 것 같아서 잔뜩 이거 저거 다 꺼내놓고 다른 곳을 정리하는데 빠져들었다.


그래서 부엌장 정리, 사무실 방 캐비닛 정리...

멍한 정신을 부여잡고 매일의 할 일을,

아니 미뤄두었던 정리까지도 하나씩 차곡차곡한다.


정신이 말짱할 때는 머릿속 정리를,

정신이 멍할 때는 실물 공간 정리를.

하나씩 하다 보니 버릴 것이 꾸역꾸역.


작년에서 올해에 이르기까지 이사를 두 번 했다.

첫 이사는 황급히 급한 것만 가지고 나와서 되는 대로 하면서

혼자만의 삶과 새로운 보금자리에 적응하기에 급급했었다.

대충 겉으로 그럴듯하게 만들어 놓고, 생활을 부여잡아야만 했다.

꽤 고급스러웠던 오피스텔로 이사해 집기류가 다 구비되어있어서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여 망정이지, 그 안의 살림들은 뭐가 어디에 있었던지도 모르게 흩어지고 쑤셔 박히고, 너저분하게 나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도 살림과 다를 바가 없었다. 추억으로 갖고 가고 싶은 기억과 도무지 직면하기 두려운 기억, 깡그리 잊고 싶었던 기억, 뭐가 뭔지 모르겠는 이것저것들이 머릿속 가득 혼재되어 있었다. 엉망진창이다 보니 두렵고 어두웠다. 한줄기 빛이 간절히 필요했었다. 그리고 그 빛을 찾아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오늘까지 왔다.


집 정리를 사부작사부작 하다, 문득 내가 계절이 바뀌는 것에 대비해 이렇게 정리를 했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이사 오면서 꽤 많은 것들을 버렸다 싶었는데, 아직도 버릴 것이 많다. 아니, 버릴 것이라기보단, 이제 온전한데 나에게 쓰임이 다해 다른 곳으로 보내주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


새로 공간을 마련했다는 이에게 챙겨줄 것들 하나하나, 동네와 공유하며 나눔 할 것들 하나하나, 뽁뽁이 포장지에 정성껏 쌌다. 이전에 이사를 할 때 뭔지도 모르고 대충 쓰레기봉투에 때려 넣었던 정리와는 조금 다른 기분이다.


소유는 나를 설명하지 못하지만, 물건을 대하는 태도는 온전히 나다. 물건의 제 자리를 만들어주며, 혹은 유용하게 쓸 누군가를 위해 물건들을 하나씩 깨끗하게 닦아 곱게 사진을 찍으면서, 내게 기운을 줬던 물건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아직 정리할 것들이 많지만 그럭저럭 깨끗한 우리 집을 둘러보며, 나에게도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분주하게, 하지만 평온하게 하루가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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