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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Oct 10. 2021

매일 쉼 없이 운동한다는 것

규칙적인 운동습관은 변치 않는 휴식처

 대부분의 사람은 자유로운 삶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자유롭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세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퍽 자유에 대한 갈구가 많은 것을 보면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자유란 뭘까. 물결처럼, 바람처럼 너울너울 살아가는 이미지가 그려진다. 그러나 물결조차, 바람조차 생성과 소멸의 자연법칙 하에 있고, 규칙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우리로서는 물결과 바람이 한계 없이 흘러가는 것 같아도, 그들의 흐름에는 명확한 룰이 있다.


자기 자신을 대하고 사람을 대함에 있어 '자유'는 '존중'과 '인정'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어떤 나여도 괜찮을 자유를 가지고 싶으면, 상대도 어떤 상태든 괜찮아야 한다. '어떤' 상태라도 괜찮으려면 공존이 지켜질 수 있는 기본적인 룰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 룰을 합의하는 과정이 인간관계이기도 하다. 사람과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관의 결은 서로 다르기에, 결을 확정해 "앞으로 이렇게 지킵시다!" 하는 틀을 만들기보다는 '서로'라는 환경 하에 자신의 쾌적함을 찾는 시간과 노력이 또 관계의 깊이를 깊게 하기도 한다.


궁극적으로 사람과 사람이 자유로우려면, 혼자서도 자유하고, 함께도 자유할 수 있는 독립성이 있어야 한다. 홀로 자유롭고, 홀로 쾌적할 수 있는 자립도 높은 사람들이 만나면 상대의 영향 하에서도 자유롭고 쾌적할 수 있다. 함께 방향을 '맞춰가는' 것이라기보다는 '함께'라는 환경 속에서 각자가 쾌적하고 행복할 수 있는 톤&매너를 찾을 자유를 서로 허용해 주는 것.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관계' 경험하기 때문에,  여럿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법을 먼저 배웠다. 관계 속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범주 안에서 개인의 내면에는 많은 갈등이 일어난다. 관계 하에서 내면에 일어나는 괴로움을 어떻게든 다스리려면 두가지의 선택지가 있을것이다. 관계 속에서도 내가 쾌적할  있는 바운더리를 정하거나, 괴로움을 일으킬 여지를 많이 주는 환경에서 벗어나거나. 이걸 심리학에서는 투쟁-도주반응이라고 한다든가.


관계 안에서 자유로우려면 관계 속에서 내가 쾌적할 수 있는 바운더리가 넓은, 커다란 마음밭을 가진 사람이어야 할 것 같다. 상대가 개입하더라도 취할 것만 취하고 나머지는 "저런 개입을 하고 싶어 하는구나."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사랑스러운 눈으로 거리두기 할 수 있는. 그러면서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도 나를 지킬 수 있는. 자기 자신을 지킬 줄 알면 누구와도 관계할 수 있다. 그 관계가 자신을 해하지 않도록 지킬 수 있다는 자신이 있을 테니까.


그렇게 자신을 지키려면, 일종의 절제와 루틴이 필요한 것 같다. 감정, 환경, 상황은 끊임없이 변하니까, 변화에 대응하는 내가 지치지 않을 수 있도록, 변하지 않는 안정을 몸과 마음에 지켜주는 것이다. 수면시간, 적절한 음식, 꾸준한 운동, 나를 쾌적하게 해주는 규칙적인 습관. 내 살처럼 몸에 편한 실내복, 집 안이더라도 휴식처와 일하고 운동하는 공간의 분리. 근방의 꼭 고급지고 럭셔리한 곳이 아니더라도 휴식과 충전을 줄 수 있는 힐링 플레이스, 나를 위한 쉼터와 휴식, 혹은 나를 꾸준히 지켜주는 충전소와 활력소는 꼭 필요하다. 또 충전이 되고 활력이 되어야 하니 매일 반복되면 더 나를 쾌적하고 건강하게 해 주는 것들이어야 한다. 술보다는 차(물론 난 술도 참 좋아한다)를, 튀기고 자극적인 배달 음식보다는 직접 정성 들여 만든 요리를 삶에 담는 이유는 그래서다.


누군가를 삶에 담으려면 자신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사랑할 자유는 변치 않는 꾸준함에서 나온다. 홀로 기쁠 수 있는 사람이 함께도 기쁠 수 있다고, 그게 안전한 사람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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