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도 있지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

by 보물상자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용서의 그 말에

걱정은 고마움 되고

눈물은 미소로 흐르네요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용기의 그 말에

실망은 희망되고

실패는 도전을 부르네요


그럴 수도 있지 라는

포용의 그 말에

그 사람도 나도

평온의 오솔길을 함께 걷네요



살다 보면 개똥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성질은 괴팍하고, 매너도 없고, 이기적이고, 매사에 부정적이고... 정말이지 한 시도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사람 말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 사람을 내치지 말아야 합니다.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는 속담처럼 그 개똥 같은 사람이 어느 때엔가는 분명히 나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며, 의지가 되기도 하며, 필요한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 동의보감에는 백구시(白狗屎) 즉, ‘흰 개똥’ 말려서 불에 태운 후, 술에 타 마시면 어혈 등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개똥 같은 사람을 내치면 안 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나로 인하여, 내가 내치지 않고 감싸준 이유로 인하여, 좋은 사람으로 변해갈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로 인하여 말입니다.


그 기쁨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감동입니다. 게다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을 어찌 개똥에 비교하겠습니까? 아무리 부족한 인간이라도,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존재를, 어찌 개똥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가 나를 화나고 힘들게 할 때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한 번 해보세요. 용서가 좋은 것은 그 사람을 위함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을 용서함으로 나에 맘에 평화가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용서가 좋은 것은 그 사람을 위함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을 용서함으로 작은 내가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용서가 좋은 것은 그 사람을 위함만이 아닙니다. 부족한 나에게도 언젠가 용서받을 자격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용서가 위로가 되는 것은 신이 아닌 나에게도 실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 18:21~22)


일흔 번씩 일곱 번, 즉 490번까지라도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용서의 무한성을 의미합니다. 끝까지 용서하라는 의미입니다. 끝까지 용서하면 상대방도 나도 마음의 평화를 서로 얻습니다.





다음 편에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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