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워크의 비밀
“딩동!”
“누구세요?”
만수의 응답에 초인종 너머로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현철이예요! 아저씨! 승훈이도 왔어요!”
지방에서 올라와 마땅히 비빌 언덕도 없었던 현철과 승훈에게 만수는 서울 유학생활의 든든한 의지처였다.
“어서들 들어와.”
모처럼 만이라 서로가 반가웠다.
“안녕하세요.”
현철과 승훈을 뒤따라 들어오는 한 숙녀의 가녀린 음성이었다. 처음 본 사람이었고, 예상치 못했던 손님인지라 놀랐다.
“제 여자친굽니다. 입사동기고요.”
승훈이 뽐내듯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박수희라고 합니다.”
“네. 어서 와요. 더운데 오느라 힘들었겠네.”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는 사이 어디선가 ‘쨍그렁 쨍그렁’ 병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맥주병 소리였다.
“대낮부터 무슨 술이야 이 녀석들아!”
“그냥 입가심으로...”
현철의 장난기 넘치는 말투였다.
“오늘은 상담실이 대폿집이 되는구먼.”
네 사람은 상담실 책상 위에 있는 물건들을 치우고 의자에 앉았다. 쥐포, 오징어, 육포 안주도 올려졌다.
“정말 반갑다. 그리고 승훈이 커플의 만남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건배 한번 하자.”
“위하여!”
네 사람은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 많은지 얘기는 끊임이 없었다. 반가움과 즐거움에 술도 취하지 않았다.
“직장생활은 어때?”
두 녀석의 지난 세월이 궁금했던 만수가 입을 열었다.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아요. 근데 별의별 사람이 다 있더라고요.”
현철의 말에 승훈도 수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는 현철의 말과 그 말에 적극 동의하는 두 사람. 세 사람에게 해줄 말이 만수의 머리에 스쳤다.
“너희들 회사에서 빨리 적응하고 싶지?”
“그야 당연하죠.”
“너희 같은 사회초년생들이 가장 먼저 알아둬야 할게 다양성이야.”
“다양성이요?”
현철과 승훈이 합창했다.
“그래. 다양성. 회사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성말이야.”
세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기 혈액형이 뭔지 각자 말해 봐.”
현철은 O형, 승훈은 B형, 수희는 AB형이라고 했다.
“아저씨는요?”
수희가 귀엽게 물었다.
“난... 미남형, 하하하.”
“에이∼ 언제 적 유머를 쓰고 계세요. 썰렁하게.”
진지하던 세 사람은 일제히 딴청을 부리기 시작했다.
“농담이고. 난 A형이야. 공교롭게도 우리 네 사람의 혈액형이 다 다르구나.”
“그러네요.”
승훈이 대답했다.
“직장이란 그런 곳이야. 직장은 세대, 혈액형, 출신지역, 자라난 환경, 학교, 전공, 성적, 성격, 성별, 종교... 많은 것들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지.”
“그런 생각해 본 적 없었어요.”
“아까 말한 대로 별의별 사람이 다 모인 곳이군요.”
“말씀하신 거 말고도 다른 게 더 많이 있을 것 같아요.”
현철과 승훈 그리고 수희가 번갈아 가며 한 마디씩 했다.
“직장의 구성원들에 비하면 너희들 가족들끼리는 비슷한 게 많겠지?”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집에서 말이야... 피서를 간다거나, TV 채널을 선택하거나, 식당에서 메뉴를 고르거나... 또 다른 뭔가에 대해 가족끼리 의견수렴이 필요할 때 의견일치가 잘 되는 편인가?”
“어렸을 때는 부모님 의견대로 주로 결정했던 것 같고요. 커서는 각자 의견들이 있다 보니 의견일치를 끌어내기가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가족구성원이 외할머니와 부모님 그리고 7남매로 열 명의 대가족 가정에서 살고 있는 수희의 말이었다.
“그렇구나. 그럼 각자 의견이 다를 때는 어떤 방법으로 합의를 이루지?”
“조금씩 양보를 하죠.”
“주로 누가 양보를 하지?”
“딱히 정해진 사람이 맨 날 양보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상황에 따라 적은 지지를 받는 의견이 양보의 대상이 되는 것 같아요.”
“다수의견을 받아들이기 위해 소수의 의견을 희생시킨다는 말이지?”
“그렇죠. 근데 어쨌든 쉬운 과정은 아닌 것 같아요.”
“물론 쉬운 일이 아니겠지.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면 반대하던 사람도 기꺼이 동참하나?”
“네. 때로 합의를 끌어내기가 무척 힘들 때도 있지만 의견이 결정되면 다른 의견을 제시했던 사람도 기분 좋게 동참하죠. 의견을 양보한 사람한테 모두 고마워해요. 그런 과정에서 가족사랑도 커지는 것 같아요.”
현철과 승훈은 만수와 수희의 대화를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가족 구성원은 직장구성원에 비해 비슷한 거리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 그런데도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잖아. 수희말로는.”
수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직장에서, 정말로 다양한 인자들의 집합소인 직장에서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얼마나 어렵겠어?”
“아! 그 말씀을 하시려던 거였군요? 합의를 위한 양보.”
“그러니까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직장에서는 양보나 희생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할 거라는 말씀이시죠?”
승훈과 현철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렇지. 또 수희 가정의 경우에서처럼 직장에서도 희생한 사람은 사랑을 받게 될 거야. 회사발전에도 기여해서 인정받는 사람도 될 테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은 양보나 희생정신이 없이 자기주장만을 내세운 결과이겠군요.”
수희의 적절한 비유였다.
“사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더 잘 가야 정상 아니겠니?”
“아무래도 한 사람보다는 사공이 여럿이면 힘도 덜 들고 빨리 가겠죠.”
승훈이 대답했다.
“직장인들은 각자가 모두 사공이야. 아무리 훌륭한 사공들이라도 가려는 방향이 서로 다르면 배는 어디로도 갈 수 없어. 하지만 내 주장을 조금씩 양보해서 한 방향으로 간다면 협력한 많은 사공들 때문에 배는 더 쉽게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게 되겠지.”
만수는 세 사람을 한 번 훑어봤다.
“나 혼자 잘났다고 설치고 다니고, 남을 배려할 줄도, 자신을 희생할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직장은 성장하기가 쉽지 않을 거야. 반대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지만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고, 조금씩 양보해서 한 방향으로 노를 저어간다면 회사는 성장해 가겠지. 자신의 발전은 물론이고.”
세 사람은 만수의 얘기에 푹 빠져있었다.
“세계 반도체기술의 핵심기지인 미국 실리콘 밸리는 초창기에 세계 각국의 천재들로 인적자원을 구성했지만 최고의 실력을 가진 조직순서대로 망했다고 해.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실력은 뛰어났지만 각자의 개성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래. 희생정신이 결여된 이기적인 개성만 강조되는 조직은 살아남을 수 없어. 그래서 최첨단 기술을 요하는 실리콘 밸리에서조차도 요즘은 남을 배려하는 인격과 성격을 인재 발탁의 중요요소로 꼽고 있다는 거야.”
“맞아요. 저도 언젠가 뉴스에서 보니까 우리나라 고시에서도 면접 볼 때 인성테스트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는 걸 알면서도 양보하고 희생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맘 속에 두고 살기는 하는데...”
“기분이 좋을 때는 잘 되다가도 내 기분이 엉망이면 양보, 희생, 배려는커녕 더 이기적이 되기도 하고요.”
현철과 승훈이 번갈아 말을 했다.
“말처럼 쉽지 않지. 하지만 뭣이든 쉽지 않은 일을 해내는 사람이 앞서 가지. 그리고 어렵다고만 생각해서 그렇지 그렇게 어렵지만도 않아. 연습하는 방법도 있고.”
“연습하는 방법이 있다고요?”
현철이 물었다. 승훈도 수희도 궁금했다.
“그럼. 연습하는 방법이 있고말고.”
뭔가 대단한 비법이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 세 사람이 눈을 크게 뜨고 만수를 바라보았다.
“직장에 가서만 양보하고, 희생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실천하려고 하지 말고 평소에 일상생활에서 늘 연습하면 돼.”
“네?...”
“그러니까 그 방법이라는 게 평소에 희생하는 연습을 하라는 건가요?”
“너무 시시한 방법 같은데요?”
수희, 승훈, 현철이 바통을 이어가며 한 마디씩 했다.
“시시한 것처럼 들리지만 분명한 건 어떤 방법보다도 효과가 크다는 거지.”
세 사람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옆집에 초등학교 2학년 짜리 철수라는 아이가 있어. 상담실에 자주 놀러 오는데 특히 자랑거리가 생기면 제일 먼저 나한테 오곤 하지. 근데 올 어린이날 다음날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니?”
무슨 얘기일까 세 사람은 궁금했다.
“어린이날 다음날이면 자랑거리가 많을 거 아냐? 평소보다도. 근데 와서는 막 불평을 하더라고.”
세 사람은 더 궁금해졌다.
“철수네 아빠는 대기업에 다니는데 늘 바빠. 그래서인지 어린이날을 맞아 모처럼 외식을 하자고 했데.”
“그래서요?”
수희가 재촉했다.
“철수 아빠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말해’라고 했고, 철수하고 4학년 짜리 누나는 피자 아니면 치킨을 먹고 싶다고 했데. 아빠는 피자는 이래서 안 되고 치킨은 저래서 안 된다고 하시면서 결국은 자기가 즐겨 다니던 식당으로 갔다는 거야. 근데 메뉴판에 있는 메뉴가 철수도 철수누나도 황당하게 만들었데.
“메뉴가 뭐였길래요?”
승훈이 물었다.
“보신탕, 보신전골, 수육, 옻닭... 이런 게 쓰여 있더라는 거지.”
세 사람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같이 간 철수 엄마가 ‘다른 날도 아니고 오늘 같은 날 애들 좋아하는 음식점에 가야지 이런 데 데려오면 어떡해요’라고 했더니 ‘이런 것도 먹을 줄 알아야 한다’면서 옻닭을 시켰다는 거야.”
“어른이 되고 때가 되면 다 먹게 될 텐데요.”
수희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러니까요. 저도 어릴 적엔 홍어 삭힌 거라든가 취나물 같은 거 못 먹었지만 지금은 잘 먹거든요.
승훈이 수희의 말에 덧붙였다.
“집에서 이기적인 사람이 회사에서 이타적인 확률은 적어지겠지?
“아∼ 그래서 평소에 연습하라고 하셨군요.”
수희의 말에 승훈과 현철도 고개를 끄덕였다.
양보, 희생, 배려의 마음은
허울 좋은 이론에서 쥐어짜 내는 것이 아니야
아름다운 생활의 습관에서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것이지
“집에서 TV 채널 가지고도 많이 싸우잖아. 서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보겠다고 말이야.”
현철이 씩 웃어본다.
“엄마가 드라마라도 볼라치면 아빠는 ‘맨날 질질 짜고, 허구한 날 사랑싸움만 하는... 인생에 아무 보탬이 안 되는 그런 걸 왜 그렇게 보나!’라고 말씀하시지. 그렇다고 엄마는 가만히 계시나? 아빠가 스포츠 중계에 푹 빠져있으면 ‘그 팀이 우승하면 우리한테 밥을 준답니까? 돈을 준답니까? 피곤하다면서 잠도 안 자고 새벽같이 일어나서 왜 그러시는지 정말 알 수가 없네...’라고 이해할 수 없다며 불평을 하시지.”
승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맞아요. 저도 누나랑 TV 채널로 싸울 때가 있어요.”
“TV 채널이나 음식 선택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고 희생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직장에서의 희생정신은 자연스럽게 몸에 베이게 될 거야. 연습은 그렇게 평소에 하는 거야.”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생각은
아름다운 행동을 낳고,
아름다운 행동은
존경받아 마땅한 훌륭한 습관을 낳고,
훌륭한 습관은
사람들의 가슴마다 감동을 심어주어,
우리네 살아가는 온 세상이
기쁨과 행복으로 넘쳐나겠지
“대학에서도 협력하고 희생하는 연습을 시키잖아. 그래서 MT 같은 행사를 계획하는 거고.”
“MT가 협력하고 희생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요?”
현철이 물었다.
“그래, MT의 이니셜이 뭐냐? ‘Membership Training’이잖아. 직역하자면 단체화 훈련, 조직화 훈련이고 이것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자면, ‘하나가 되는 훈련’으로 풀이할 수 있지 않겠어?”
세 사람은 집중하고 있었다.
“MT를 학년 초나, 학기 초에 가는 이유는 대학생활하면서 선배는 후배를 챙겨주고, 후배는 선배를 따르고 예를 지키며, 동기들 간에는 우애하면서 한 학년을 잘 보내라고 하나 되는 훈련을 시키는 거잖아.”
“아∼ 그런 뜻이 있었군요. 저희들은 ‘MT’하면 술 마신 기억밖에 없어서....”
현철이 쑥스럽게 한 마디 했다.
“맞아. M: 마시고, T: 토하고...”
만수의 기막힌 해석에 수희가 웃음을 터뜨렸고 현철도 승훈도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물론 토할 정도까지 마셔서는 안 되겠지. 하지만 상대방 술잔도 받아서 기분도 맞춰주고, 터놓고 이야기도 해 보고, 새 친구도 사귀고, 선후배가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 MT에서 술도 일정 부분 역할을 하긴 하지.”
얼굴이 벌게지도록 웃는 세 사람을 보며 만수도 함께 웃었다. 네 사람의 우렁찬 건배소리는 초록색 대문을 열고 골목을 신나게 달음박질치고 있었다.
“그리고 이왕 희생하고 베풀려고 맘먹었으면 화끈하게 베푸는 습관도 들여야 돼.”
세 사람의 눈이 다시 커졌다.
“‘양보’, ‘희생’, ‘배려’를 베풀면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
“네? 그럴 리가요... ”
수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화끈하게 못 해주면 그런 결과를 가져오지.”
세 사람은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예를 들어보자.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 우산 없이 걷고 있는 친구를 차에 태워줬다면 그 친구는 무척이나 고마워하겠지?”
“당연하죠.”
“근데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기름값이 엄청나게 올랐다느니, 어디 갈 데가 있었는데 바래다주느라고 늦겠다느니, 가는 길이 왜 이렇게 험하냐느니...... 이렇게 불퉁거린다면 차를 얻어 타고 가는 친구의 기분이 어떨까?”
“어쩔 수 없이 차를 얻어 타긴 했지만 괜히 탔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두 번을 수희가 대답했다.
“바로 그런 거야! 이왕에 베풀려면 투덜거리지 말고 화끈하게 베풀어야 상대방도 진심으로 고마워하지. 그것이 진정으로 베푸는 거구.”
“저도 과거에 태워다 준답시고 알게 모르게 생색을 냈던 적이 있어요. 내 입장만 생각하고....”
“저도 그런 적 있어요. 희생한다는 게 정말 말처럼 쉽지 않은 것 같아요. 현실에서는요.”
현철과 승훈이 한 마디씩 했다. 수희도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두 사람의 말과 수희의 긍정하는 표정에 만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자꾸만 ‘어렵네’ ‘힘드네’라는 말을 하면 안 된다니까. 어려워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지. 하찮은 동물들도 하는데 맨날 뭐가 그렇게 어려워.”
만수는 화가 났는지 목소리가 거칠었다.
“기러기가 어떤 모습으로 날아가는지 알지?”
“V자요.”
승훈이 오른손으로 V자를 만들어 보였다.
“그렇지. 그러면 기러기가 왜 V자 대형으로 날아가는지도 알겠네?”
“그러니까......”
승훈이는 좀 전의 의기양양한 모습은 온 데 간데 없이 머리만 긁적이고 있었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