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동기 Jun 15. 2022

초연결의 시대


이 시대의 모든 것이 연결이 되었습니다. 연결이 되지 않으면 가치가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기차역의 플랫폼에서 기차를 타고 사람을 만나듯이 스마트폰과 네트워크로 연결된 플랫폼에서 사람과 상품을 만납니다. 주위에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초연결을 이용한 플랫폼 기반의 사업을 합니다. 플랫폼 기업인 네이버 카카오 에어비앤비 등은 공장도 없고 택시도 없습니다. 데이터들과 제품을 서로 연결시켜서 이익을 만들어냅니다. 연결이 되지 않으면 가치가 없고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초연결이 되다 보니 바빠지는 단점도 많습니다. 택배는 좀 천천히 도착해도 되는데 자고 일어나면 문 앞에 택배가 와 있습니다. 밤새 누군가 분류 작업을 하고 새벽 배달을 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초연결 시스템으로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큰 흐름이 되어버렸습니다. 속도는 갈수록 빨라질 것이고 연결은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과속화가 되고 있습니다.


초연결로 ‘언컨택트'가 실행되면서 순식간에 위계가 걷혔습니다. 원격 근무하면서 얼굴이 안 보이면 오로지 ‘일'만 보입니다. 만나면 직함, 나이 때문에 주눅 들지만, 줌 화면에선 20명 얼굴이 균등 분할이 됩니다. 초연결로 비로소 수평화가 실현이 되었습니다.


초연결의 최종 목적지는 인간의 편리함과 사랑의 실천입니다. 연결을 점유하는 자가 지식을 빨리 얻는 것이고 좀 더 우위에 올라가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인간이 물질에 지능을 입히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스마트폰, AR 안경 등 디바이스들이 사람의 생각과 같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에 지능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물질에 지능이 들어가면서 지능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지능이 사람한테, 나한테 갇혀 있지 않게 됐습니다. 물질, 디바이스로 옮겨갔습니다.


이게 흔히 말하는 초연결입니다. 또 내 기억 속에 있는 거랑 디바이스랑 똑같아지는 것, 이게 싱귤래러티(특이점) 입니다. 물질에서 진화한 우리가 아이러니하게 다시 물질에 지능을 입히고 있습니다. 사람이, 내가 외부의 물질에 지능을 입히는 것, 이게 혁명입니다. 아무 생각이 없는 물질(디바이스)에 지능을 입힌다는 점에서 SW 산업계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위대한 혁명가입니다.


아무리 초연결 시대에 속도가 빨라져도 계절이 바뀌는 것을 느끼며 살고 싶습니다. 새싹이 나고 녹색으로 채색이 되어가는 봄을 느끼고 싶습니다. 단풍이 들고 눈이 쌓인 나무를 바라보는 여유는 반드시 갖고 싶습니다. 초연결의 시대의 요구 사항에 맞춰나가기 위해서는 사회의 요구사항을 잘 파악해서 그것에 빨리 대응하는 사람들이 남아서 승리하는 세상입니다.


그래도 여름에는 뻐꾸기 소리를 듣고 물 댄 논에서 들리는 정겨운 개구리울음소리는 듣는 여유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마음의 속도도 빨라집니다. 조카의 연애하는 것을 보니 만난 지 한 달이 되었는데 벌써 1박 2일 강릉으로 여행을 갑니다. 만남의 속도도 빨라져가고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초연결로 연결되면 좋을 텐데 마음 연결의 속도는 느슨해져 갑니다. 마음이 연결되지 않고 홀로 있어도 재미있는 것들이 많은 세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마음의 공허를 달래줄 수 있는 것은 사람과의 만남이고 사랑입니다.


이 시대의 초연결의 궁극적인 목적은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은 마음이 연결이 되지 않으면 그리움이 쌓이고 외롭고 고독하며 공허함이 찾아옵니다. 진정한 초연결은 이 마음의 공허함을 없애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초연결을 통해서 사랑의 통로가 되어 인간 사랑의 소중한 가치를 탄생시키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인간이라는 종의 존재 방식 자체가 ‘소셜’입니다. 고독하고 이성적인 행위자’라는 개념은 계몽주의 시대에 만들어진 가설일 뿐이다. 그것이 ‘인간 행동’의 모델로는 유익했을지 몰라도, ‘인간성’ 모델로는 궁극적으로 틀렸습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상호 의존성은 존재하지만, 우리 인간은 상호 의존성을 최상의 방식으로 관리할 수 있는 특별한 동물입니다.


이유는 ‘동류 선호’ 때문입니다. 모든 상호작용에는 일정한 소통 상대가 필요하고, 대부분의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찾습니다. 이러한 ‘유유상종’ 패턴은 초연결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같은 부류와 어울리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온 오프 상관없이 비슷한 형태의 소셜 네트워크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외로움에 지친 어느 젊은 남녀의 마음까지 아는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나쁜 연결은 끊어내고 소중한 연결들은 더 풍성하게 만들어내는 초연결의 시대가 진정한 의미의 연결입니다. 인간이 없는 연결은 무의미하고 절대 신과의 연결이 기쁨과 위로를 주듯이 초연결 시대에는 마음이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과 마음이 연결이 될 때 기쁨과 위로가 나타납니다. 진정한 연결은 인간의 연결입니다.


삶이 공허한 이유는 연결이 메말라가기 때문입니다. 제페토 등의 메타 버스도 결국 연결입니다. 가상공간으로 여행을 떠나기 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여행 산업이 대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메타버스 여행은 새로운 여행 패러다임을 구축할 수 있는 대안적 요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메타버스 여행은 기존의 여행이 지녔던 공간과 이동의 한계를 뛰어넘어, 가상현실 세계를 옮기면서 공간과 이동 제약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선 메타버스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면, 메타버스(metaverse)는 가공과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입니다. 이러한 메타버스는 가상과 현실이 융복합된 디지털 세계로 초월 세계를 말합니다. 메타버스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이 되어야 성공합니다.


혼자 사는 인구가 600만 명이 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초연결의 시대가 이런 고립된 가구를 더욱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더욱 연결시켜주는 그런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합니다. 초연결이 어떻게 인간의 마음에 위로를 줄 수지 고민을 해야 합니다.


이별 후에 음악을 들으면 그 가사가 다 내 이야기가 되어서 위로를 받습니다. 초연결은 이처럼 사람에게 위로를 줘야 하고 공허함을 없애야 합니다. 외롭지 않도록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잘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하루에 한 시간씩 숲에서 산책을 합니다. 그 시간이 창조의 시간이고 꿈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어 스트레스를 모두 버리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초연결의 시대라 할지라도 자연과의 연결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숲과의 연결과 자연과의 연결이 몸과 건강을 위해 중요합니다. 숲에서 느끼는 감정과 치유를 초연결된 시스템에서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성공한 시스템입니다. 가상공간에서 숲의 솔향기와 부드러운 흙의 감촉을 느끼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10년도 안 되어, 6G는 기계들이 실시간으로 서로 통신하기 시작하면서 상상하지 못한 수많은 방법으로 IoT를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초연결 세상은 항상 클라우드를 사용할 것입니다. 클라우드는 문제를 해결하고 환경 및 기타 당면 과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온 디맨드 형태로 제공되는 두뇌(brain)가 될 것입니다.


초연결은 바이러스처럼 나쁜 것들을 감염시키기도 하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기도 합니다. 진정한 초연결은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새로운 운동, 혁신, 구매 행동의 변화는 내 주변의 이웃, 동료, 친구 등에 의해 반복적인 강화 메시지를 받았을 때 비로소 각성됩니다. 즉 가치관과 결부되지 않은 단순한 초연결은 빠르게 사방으로 튀는 불꽃 형태로 전파되지만, 도전과 가치 판단이 필요한 복잡한 초연결은 그물 형태로 촘촘하게 연결된 믿을만한 네트워크에서 그 효용이 확인된 이후에 전파가 됩니다.


초연결이 가속화될수록 로컬의 중요도가 더 높아지는 것은 동류 선호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는 것. 바로 동료!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일 때 신뢰성과 정당성을 확립하도록 도와주는 존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초연결이 되었어도 관련 있는 주위 사람 주변부가 중요합니다. 로컬은 곧 초연결 주변부입니다. 이웃, 친구 등 같은 부류의 사람들끼리 무리 지어 있는 장소입니다. 관련성 원리에 따르면 어떤 사건이 사회적 승인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가만큼이나 누가 사회적 승인을 내리는가도 중요합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상품을 고민할 때,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살핍니다.


사회운동에 참여할지 말지, 사람들은 가장 먼저 고개 들어 주변을 봅니다. 그들이 이 변화를 지지하는지, 관심을 갖고 있는지. 변화를 향한 로컬의 지지가 많을수록, 그 변화가 자신과 관련성이 매우 높다고 보는 것입니다.

세상이 초연결로 복잡해질수록 잘 모르는 수천 명의 친구에 둘러싸인 것보다, 결속력이 강한 소수의 친구들과 교류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넓게 퍼져나가는 약한 유대의 초연결 속에 있으면 분명 경제적 이득과 기회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인이 약한 초연결은 너무 많은 것은 사회적 자본의 빈곤을 상징합니다. 사람들은 균형이 필요합니다.

성장과 안정의 밸런스를 보여주는 주요 지표는 초연결에 강한 유대가 많은 것입니다. 동류와 교류가 많은 소셜 네트워크 속에 사는 사람은 더 오래 살고 성공의 감정을 누리며 사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국 우리 삶에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초연결의 수가 아니라 초연결의 패턴입니다.


바야흐로 ‘얼마나 많은 친구와 연결되어 있는가’ 보다 ‘얼마나 강하고 빈번하게 결속되어 있는가’가 중요한 시대입니다. 센터의 ‘센’ 인간보다 ‘가장자리 인간들’의 시대가 왔습니다. 개인의 행복에 포커스 하든, 사회 혁신의 관점으로 보든 다르지 않습니다. 어쨌든 인간은 작은 단위의 군집에서 서로의 격려를 통해 더 나은 규범, 더 나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다정한’ 로컬 애니멀입니다.


대나무는 옆의 동료 대나무와 뿌리가 서로 단단히 연결돼 그물망처럼 흙을 잡고 있어 거센 눈보라에도 쓰러지지 않습니다. 그물망처럼 초연결된 이 사회에 녹색으로 채색된 아름다운 대나무 숲이 탄생하길 기대해 봅니다.


그 중심에 개발자가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여수 항일암 일출과 영취산의 진달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