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퇴근 무렵에 소나기가 퍼붓는다. 와이퍼를 아무리 저어도 앞이 보이지 않는다. 빗줄기가 고드름만 하다. 하늘에서 고드름들이 줄지어 끊임없이 내려온다. 집 근처에 오니 비가 조금씩 내린다. 오랜만에 숲을 찾았다. 빗줄기가 퍼부어서인지 맑은 공기가 폐 속 깊이 들어온다. 비가 내리지만 뛰지 않고 걷다보니 젖은 비를 가득 품고 올라온 흙냄새, 꽃 냄새, 소나무 향기가 더욱 짙어진다.
신발을 벗었다. 양말을 벗었다. 젖은 땅을 느끼기 위해 맨발로 산책을 한다. 촉촉한 흙의 감촉이 느껴진다. 노쇠한 갈색 소나무 잎들을 밝으니 푹신해서 좋다. 발 감촉을 느끼기 위해 걷는 속도를 더 늦췄다. 천천히 발에서 느껴지는 산 소리와 호흡하고 싶어졌다. 나무들이 울음을 흘렸는지 빗물에 젖어있다. 그 나무는 어떤 사연이 있기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촉촉한 소나무를 쓰다듬어 주었다. 소나무를 위로해 주었다.
살다 보면 왜 하필 이런 일들이 나에게 일어날까 하는 것들이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땐 눈물을 흘리고 싶은데 이 세상은 눈물 흘릴 곳도 없다. 숲은 눈물을 흘리기에 좋은 곳이다. 숲에 비가 내린다. 울고 싶을 때 빗물을 맞으면 눈물을 닦지 않아도 된다. 빗물이 눈물을 닦아줘서 비 내리는 날에 울기에 좋다. 비 맞으며 밖을 돌아다니면 미친놈 소리 듣는다. 하지만 숲에서 빗속에서 우는 눈물은 빗물이 닦아주고 숲이 가려줘서 쪽팔리지가 않다. 숲 속에서 눈물을 흘릴 때 나무가 위로해 준다. 빗물이 눈물을 닦아준다. 숲의 나무들이 창피한 모습도 가려줘서 사춘기 시절에 방안에 처박혀 마음을 달래는 느낌이 든다.
숲 사이로 빗물이 떨어지는 하늘을 쳐다본다. 다시 일어날 힘을 얻는다. 이런 고난은 어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거치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다시 발을 내디뎌 본다.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드니 빗물이 눈물을 닦아준다. 눈물이 빗물과 함께 머리 뒤로 흐르기 시작한다. 따로 손수건이 필요 없다. 고개 숙이지 않으리라 마음가짐을 가져본다.
집 앞의 숲은 사람이 많지 않아서 좋다. 비 오는 날은 사람이 거의 없다. 우산은 가져갔지만 그냥 비에 젖는다. 누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시비도 걸지 않는다. 나무들이 너 또 왔니 하고 반길 뿐이다. 정상까지 올라왔다. 공기가 상쾌해서인지 허벅지도 힘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 정상에서 혹시 무지개가 뜨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하늘을 두리번거린다. 오늘은 무지개를 보지 못했다. 작년 이맘때는 무지개를 보았는데 작년 생각이 났다.
숲을 통과해서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 아파트 숲으로 넘어왔다. 맨발 대신 다시 신을 신었다. 내가 사는 곳은 횡단보도 하나 사이로 자연이 사는 숲과 인간이 사는 아파트 숲이 있다. 빗물에 젖어 햇빛에 반짝이는 플라타너스 잎이 고요한 가운데 작은 파장을 준다. 외로움에 지쳐 사랑을 간구하는 듯한 몸부림으로 보인다. 춤을 추는 플라타너스 잎은 항상 밝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1도만 바꾸기로 마음을 먹는다. 1도만 바꿔도 춤추는 플라타너스 잎처럼 밝게 살 수가 있다. 약간은 긍정적인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훈련을 해보려고 한다.
숲의 흔적, 흙을 갖고 있는 발을 씻고 젖은 머리를 샤워를 한 후에 글을 쓰는 훈련으로 들어가 보고자 한다. 그런데 잠이 온다. 오늘은 어떤 하루였는지 잘 살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비 맞아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