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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기 Jul 06. 2022

머리 컷트 참사

옆 머리카락이 사라졌다. 직장은 춘천이고 주말엔 서울에 있다 보니 춘천과 서울 경계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 정체성이 흔들릴 때가 있다. 다양한 형태의 현대판 '유목민'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나도 한 몫하고 있다. 에베레스트산에서 베이스캠프없이 여기 저기에서 비박하는 느낌이다. 춘천에 새로운 미용실을 개척해서 주로 춘천에서 커트를 한다. 몇 달 전 커트를 할 때 옆 머리카락이 사라졌다. 박서준 사진을 보여줄 수도 없고 손흥민 사진을 보여줄 수도 없다. 원장님과 나는 신뢰관계가 있기에 믿고 눈을 감았다. 머리가 길었는지 이발기 소리가 좀 오래 들렸다. 꽤 오랜 시간 후 눈을 들었다. 옆머리가 시원해진 느낌인데 안경을 쓰지 않아 거울 속 모습이 뿌옇게 보인다.  앞 정면, 그러니까 각도가 1도가 틀어짐이 없이 정면에서 보았을 때는 머리가 훌륭했다. 이때까지 참사가 벌어진줄 몰랐다.


가족 모임이 있어 양평으로 갔다. 그때부터 머리에 관해 주변인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보는 사람도 생각해야지 정면으로 보는 너만 좋으면 좋냐는 것이다. 옆머리를 낭떠러지처럼 급격하게 쳐버리니 낯섦의 극치다. 45도로 보았을 때 모습이 최악이다. 남이 찍어준 사진을 직접 보았다. 어휴 옆머리가 다 날아갔네.

이런 줄도 모르고 머리카락 잘라서 시원하다고 활보하고 다녔으니 사람들이 왜 쳐다보는지를 알게 되었다. 점심시간에 식판을 들고 이상하게 머리를 자른 녀석을 보면 같은 미용실을 이용한 것이 분명하다. 저 녀석도 같은 아파트에 사는데 분명히 그 미용실을 이용했을 것이고 본인만 이상한지 모르고 다니고 있다.


회사에서도 잘 말을 걸지 않는 상사분이 머리가 독특하다고 말을 걸어온다. 머리가 새로운 관계의 물꼬를 튼 것이다. 머리가 자라기까지 보름을 기다렸다. 그냥 내 멋을 갖고 그냥 잘 살았다. 머리를 정리하러 강남 도곡동 미용실에 예약을 하고 갔다. 미용실에 들어갈 때부터 왠지 신뢰감이 들었다. 여자 선생님이 커트를 해주셨는데 그나마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커트나 파마를 한 후에 1달 반 정도가 되어야 어색함이 사라진다. 1달 반 정도 나름 괜찮다가 다시 파마를 하고 어색함을 절반을 시간을 보내는 무한 반복이다. 머리가 사람 이미지를 좌지우지하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된다. 지금은 머리 상태가 마음에 드는데 이 머리가 또 얼마라 갈지 모르겠다. 미용실에 가는 날들이 두려워진다.


이번에는 그 원장님께 사진을 들고 갈 생각이다. 이런 형태를 원하오니 비슷하게 커트를 간곡히 부탁 드옵니다. 그 원장 선생님은 항상 최선을 다해주신다. 다만,  원하는 스타일을 정확하게 내가 선언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커트 참사를 겪은 후 마음 고생하지 말고 사진을 들고 가서 이렇게 해주세요 라고 말씀을 드려야 겠다.


그나마 머리카락을 풍성하게 소생을 시켜주심에 감사를 드린다. 그 미용실을 다니면서 다른 것은 몰라도 머리카락이 생명을 다시 얻었다. 머리카락이 다시 부활을 한 것이다. 예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한 것 처럼 말이다. 머리 형태보다도 숱이 많으니 내심 그것 하나만으로 만족한다.


의사소통은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Define을 정확히 이야기하면 상대방도 알아들어 걸림돌 없이 잘 흘러간다. 머리 커트하는 것조차 내 생각을 정확하게 선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미용실을 한번 건너뛰었는데 혹시 그 원장 선생님이 기다리고는 않을지 괜한 걱정을 해본다. 머리를 다시 소생시켜준 그 미용실에 갈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방금전에도 카톡으로 막내누님이 너 머리어떻게 해라라고 한다. 나는 지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데'  다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다시 글을 쓰는 작업으로 들어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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