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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기 Jul 13. 2022

외로움 바이러스

외로움은 질병입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에게 외로움은 온몸에 서서히 퍼지는 독과 같습니다. 사람도 외롭고, 나무도 외롭고, 강아지도 외롭습니다. 숲에 외로운 나무도 안아주면 잎을 더 세차게 흔들어 표정이 달라집니다. 강아지는 끊임없이 달려들며 사랑을 찾습니다. 외로움이란 감정은 인간뿐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에게 찾아오는 질병입니다. 외로워하는 사람들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전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감염만큼 외로움이 위험합니다. 앞으로 외로움 경제가 폭발할 것이고 우정도 돈을 주고 오는 세상이 올 것으로 보입니다. 노리나 허츠 박사 말에 의하면 지속적 고립은 매일 담배를 15 개비 피우는 것만큼 해롭다고 합니다. 우울증, 불안, 자살 충동 같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육체에도 직접 해를 끼칩니다. 남과 연결되고 싶은 종의 본능은 ‘외로운 몸’을 각성 상태로 이끌어서, 혈중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와 맥박, 혈압을 상승시킵니다. 외로운 사람은 운동을 전혀 하지 않거나 비만한 사람보다 심근경색, 뇌졸중에 걸릴 확률이 20% 높습니다. 치매에 걸릴 확률은 60% 이상입니다.


외로움은 전염이 되고 외로울수록 우리는 공격적이 됩니다. 외로울수록 타인을 밀어내는 경향이 강해지고 외로울수록 남들이 우리를 밀어낸다는 느낌도 강해집니다. 코로나 기간에 2년제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디지털 고치가 되어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캠퍼스 생활을 하지 못한 채 졸업을 하게 되어 대학생활 자유함과 낭만을 갖지 못해 상호작용 능력이 눈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외로움을 더욱 갖게 해준 것은 스마트폰과 SNS, 넷플릭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냥 혼자 즐길 거리가 많아 즐기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허무하고 더 깊은 외로움으로 빠져드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은 개인 정체성이 우리가 아닌 나로 설정을 합니다. 스마트폰은 우리가 아닌 나의 세계를 열었습니다. 디지털 고치 안에 있는 세계는 필연적으로 더 외로운 세계로 빠져들어 갑니다.     


기업은 외로움을 완화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열을 올릴 것입니다. 로블록스나 포트나이트 같은 가상 커뮤니티도 게임을 넘어서 음악, 패션, 오락까지 사업 범위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포트나이트에서 열린 트래비스 스캇 공연에 2,700만 명이 모였습니다. 커뮤니티 기술 스타트업 기업들은 유대감 전달을 핵심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경제 시장에서 친구를 돈을 주고 사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정을 돈으로 거래하는 관계에 빠져들수록 타협과 희생 근육을 단련할 기회는 사라집니다. 동네의 카페의  바리스타에게 20초 이상 안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지혜로운 행동입니다. 분리수거를 할 때 일하시는 아파트 경비 아저씨를 보고도 20초 이상 대화거리를 만들어서 대화를 하면 좋습니다. 소상공인과 주위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우리 마을을 지탱하고 있는 마지막 보루입니다. 그분들마저 사라진다면 외로움은 더 폭발을 하게 될 것입니다.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몇 초라도 인사를 나눠야 하고 사는 곳에 뿌리가 깊으면 외로움에 저항을 할 수가 있습니다.     

영국에는 외로움 담당 장관이 있습니다. 외로움 담당 부처는 긍정적이지만, 실제로 장관에게 할당된 예산이 적고 권한도 제한적이라 영향력은 미미하다고 합니다.      


인간은 평생 소속감을 나눌 수 있는 거울 같은 존재가 필요합니다. 그게 친구입니다. 부모는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직장, 돈, 젊음, 성공도 언젠가는 의미를 잃습니다. 화목한 가정도 소중하지만, 불확실성으로 낙차가 큰 인생의 고비마다 기적처럼 나타난 친구가 우리를 끌어줍니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의 중요성이 제대로 보입니다. 손자를 키우거나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보다 친구가 많은 사람이 더 건강하고 행복하다고 합니다. 손자들이 예쁘지만 바빠서 얼굴 보기 힘이 듭니다. 우정을 빼고 나면 삶에 중요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며칠 전 70대의 어느 할머니가 새로운 배우자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40대 후반에 남편을 사별하고 손녀딸들을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손녀딸들이 다 출가를 하고 나니 자주 만날 수 없어 외로움에 우울증까지 왔습니다. 70대 할머니는 같이 밥을 먹고 산책하고 이야기할 배우자를 찾기 위한 몸부림으로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처음에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중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좋은 친구를 많이 갖는 것이 복입니다.     


소규모 모임을 통해 밥을 먹는 모임을 꼭 가져야 합니다. 군데군데 있는 밥 약속은 행복의 징검다리입니다. 만나서 그냥 수다만 떨어도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힘든 일을 하면서 며칠 후 그 사람과 막곱창을 먹기로 했지 라고 기대하면서 지금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행복한 만남의 징검다리를 놓아야 외로움에서 벗어나 행복 지수가 올라갑니다. 왕창 큰 대박 같은 만남이 아니라 사소한 만남을 여러 개 두어서 작은 행복이 여러 번 발생할 때 행복 지수는 더 올라갑니다.      


가끔은 외로움을 넘어 고독으로 넘어가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외롭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말고 술자리를 찾는 것도 자제했으면 좋겠습니다. 외로움을 해소하고자 이것저것 해보아도 결국 마음은 또 공허할 것입니다. 외로움이 가까이 있다면 그 외로움을 넘어서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외로움을 넘어 고독 시간으로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던 자기만의 고독의 시간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고독 속에서 깊은 생각을 하고 성찰 시간을 겪고 나오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고독 시간을 통과하면 한층 더 성장한 모습으로 바뀌어 세상을 더 깊이 바라보고 따뜻하게 바라보는 마음이 생깁니다. 고독 시간에 깊은 성찰을 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혼자 흘린 눈물은 치유 힘이 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과 같습니다. 외로울 때 복잡한 생각들을 모두 씻겨내고 오직 깊은 성찰의 시간으로 들어가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외로울 때에는 정신이 집중이 안 되어  아무것도 못하지만 고독 시간으로 들어가면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치유가 됩니다. 외로울 땐 방황하느라 글을 못 쓰지만 고독하면 글을 쓰게 됩니다. 고독의 시간으로 들어가야 글쓰기가 가능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관계가 끊어지고 단절되어 외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외롭다고 환경 탓만 하지 말고 깊은 고독 시간으로 들어가 고착화된 생각 한계를 뛰어넘는 성찰 시간으로 들어가면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술자리 찾으며 여기저기 방황한 시간보다 더 마음이 따듯해지고 치유가 됩니다.      


어차피 인생은 외로운 것입니다. 외로운 인생을 잘 이겨내려면 고독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깊은 고독 속에서 생각의 바다를 헤엄칠 때 해방과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도 어느 순간을 절대 고독 시간으로 들어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외부와 단절되고 홀로 코딩해야 하는 고독 시간이 필요합니다. 남들이 다 퇴근하고 배는 고파오지만 혼자 남아서 코딩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 한층 더 성장합니다. 고독 과정을 거쳐야지 실력이 10배 늘어서 좋은 연봉을 받고 일찍 일을 마치고 퇴근을 할 수 있습니다. 일에 치이지 않는 정상적인 자기만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도 고독하면 더 잘하게 되고 작가를 꿈꾸는 사람은 글을 쓰게 됩니다. 고독 속에서 생각들이나 글들이 남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게 됩니다. 외로운 것은 처량해 보이지만 고독한 것은 기품이 있습니다. 아주 가끔은 고독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도 유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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