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암에서 만난 하나님

by 박동기

가족들과 가을 단풍을 구경하기 위해 금요일 휴가 내고 새벽부터 가족들과 설악산으로 향했다. 남동생 아들인 초등학생 6학년까지 참석을 했으니 꽤 많은 인원이 설악산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에 백담사에 도착하니 단풍이 절정이다. 우리는 산행이 모두 초보이고 큰 수술하신 가족까지 있었기에 그냥 편한 놀자판 산행으로 결정했다. 대가족이 움직였다. 남들이 4시간 거리면 우리는 곱하기 2 해서 8시간 동안 걸었다. 백담계곡을 끊임없이 걷고 또 걸었다. 계곡 물소리는 우렁차게 흐르고 가을의 정취와 맞게 물이 고인 곳은 고즈넉했다.


산 초입 부분은 단풍이 들기 시작하거나 단풍 들 마음의 준비하고 있었다. 백담 계곡을 끊임없이 걸었다. 초등학교 6학년 조카까지 같이 갔으니 속도가 무척 느렸다. 아니다. 초등학교 6학년은 리더가 되었고 나머지 가족들이 지쳐서 아이고 소리 내며 속도가 2배 이상 느리다. 큰 치료를 받은 산행 초보인 가족까지 데려갔으니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다.


대학 산악부 시절에는 키까지 오는 무거운 배낭메고 뛰다시피 산행하다 보니 땅만 보고 걸었다. 설악산을 무수히도 다녀왔는데 지금도 개념도를 보면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 지금 느리게 걸으며 산행하다 보니 주위의 사각지대들의 아름다움들이 보인다. 기암절벽과 단풍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바라보며 감탄을 한다. 느리게 걸으면 더 자세히 보인다. 굳이 뛰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해 떨어질 때까지 저녁 숙소인 봉정암까지 가면 되니 마음의 여유가 있다. 가족들은 처음 설악산 산행을 하는지라 힘드니 바닥만 보고 간다. 느리게 걸으니 주변 경치들이 참 아름다운데 나만 보기가 아깝다. 땅만 보고 가는 가족들에게 가끔 눈을 들어 저길 보라고 계속 이야기했다. 감탄한다.


평일이라 그런지 산길에 우리 일행밖에 없다. 같이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이미 한참 앞서 나갔다. 경치 좋은 곳만 있으면 자리를 펴고 끊임없이 먹어댔다. 간식거리를 참 많이도 준비해오셨다. 산행 기간 내내 배고프지가 않았고 먹을 것으로 가득 차다 보니 배낭은 무거웠다. 냇가에 자리를 펴고 먹는데 경치가 아름답고 물이 참 맑다. 오래 앉아 있으니 서늘해져 추워져 다시 배낭을 멘다.


수렴동 산장을 지나쳐 수렴동 계곡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경치가 좋은 높은 폭포 옆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 먹고 있는데 산새가 우리 일행 주변을 계속 맴돈다. 참새가 아니라 처음 보는 무척 귀한 새이다. 내 손에 멸치, 땅콩, 아몬드를 올려놓는데 산새가 내 손에 아몬드를 집어 먹는다. 산 새는 편식을 한다. 그 새의 다리의 감촉이 너무나도 부드럽다. 새의 다리가 내 손바닥 위에 앉은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산 새가 잠시 후에 친구를 한 마리 더 데려왔다. 13살 조카에게도 경험을 시키기 위해서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아몬드만 가져간다. 그 조카와 나는 동심으로 돌아가서 서로 무척 기뻐한다.


산 새가 아직 순수하다. 산 새가 순수하니 내 손바닥 위에 앉는다. 양쪽엔 기암절벽이 있고 폭포 소리는 끊임없이 들려온다. 산행 내내 폭포 소리를 듣다 보니 물소리가 소음이 되어 버렸다. 나는 조용히 숲의 바람 소리, 새소리를 듣고 싶은데 물소리에 묻혀서 고요함이 사라졌다.


아침 7시경에 백담사를 출발해서 오후 3시경에 봉정암에 도착했다. 봉정암은 설악산 최고봉인 대청봉 바로 밑에 있는 설악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암자이다. 봉정암 남자 숙소에서는 남동생, 나, 조카 셋이서 잠을 잤다. 오후 3시경 봉정암은 불경 소리가 들리고 평일인데도 참 사람이 많다. 찬물에 얼굴과 발을 씻고 조그마한 남자 숙소에서 1시간 동안 눈을 붙였다. 5평 정도 되는 방에 줄이 24개가 그려져 있다. 우리는 갈 때까지 세명만 있어서 그냥 셋이 넓게 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날이 어두워질수록 계속 사람이 몰려들어온다. 정말 24명이 꽉 찼다. 발도 못 펴고 자고 앞의 아저씨 발이 내 턱 밑에 올 정도로 교도소보다 더 밀집된 공간에서 잠을 자야 했다.


오후 5시에 봉정암에서 주는 공양을 먹었다. 미역국에 밥을 말아서 대접하나 들고 각자 편한데 앉아서 밥을 먹는다. 그냥 아무 데나 앉아서 밥을 먹으니 잠시 동안 모두 노숙자가 된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지만 절 밥은 그냥 먹었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을 배신하고 바알신을 섬기지는 않는다. 나는 절에서 하루 묵었고 절에서 주는 밥은 먹었지만 부처상에는 절하지 않았다. 하나님에 대한 중심은 지켰다. 봉정암은 잠자리가 무척 불편해서 그렇지 대청봉 가기 전에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신도가 아니면 잠을 못 자게 한다고 하는데 그 부분은 아쉽다. 예전 겨울 산행에 봉정암은 등산객들로 하나둘씩 넘쳐났다고 한다. 처음에는 발을 펴고 자다가 그다음 앉아서 자다가 사람이 계속 불어서 다리를 쪼그리고 잤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던지 오는 사람은 마음 넓게 모두 받아 준 것이다.


봉정암에서 80세 된 할아버지를 만났다. 손자들과 아이들이 다 말렸는데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봉정암에 왔다고 한다. 죽을 날이 며칠 남지 않다 보니 살아온 인생 별것 아니라고 한다. 왜 그렇게 의미 없는 일들에 죽자 사자 덤비며 살았는지 후회가 된다고 한다. 지나고 보면 다 부질없는 것들인데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는지 후회가 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과연 내가 80이 되어 뒤돌아 보았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았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봉정암에서 나에게 하나님이 주신 뜻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게 되었다. 책을 내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살아야겠다는 시대적 사명을 갖고 살아가고자 한다. 은퇴 후에 책 내용으로 강의하며 사회에 도움주며 살아갈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봉정암에서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며 다시 한번 되새김질하게 되었다.


교도소보다 더 좁은 숙소에서 밤새 코 고는 소리 발을 못 펴고 잠드니 새벽이 빨리 왔으면 했다. 시계를 보면 이제 새벽 1시다. 앞으로 4시간의 고통이 더 남았다. 6학년 조카도 힘든지 새벽에 자꾸 깨서 일어난다.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우리가 있을 때는 초여름 날씨처럼 더웠는데 오늘 설악산에 12cm의 눈이 내렸다. 어제는 늦여름 날씨처럼 더웠는데 어느새 설악산은 겨울이 성큼 와 버렸다.


새벽에 일어나 보디 1시간 30분만 가면 대청봉을 갈 수 있다. 대학 산악부 시절에 수도 없이 다녔던 대청봉이다. 나는 갈 수 있었지만 가지 않았다. 다른 가족들과 보조도 맞춰야 하고 나로 인해 늦게 출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 하나의 이기심으로 인해 가족 전체에 피해를 주면 안되기에 자제 했다. 이것을 경험하면서 진짜 실력은 갈 수 있을 때 가고 멈추고 싶을 때 멈추는 것이 진짜 실력임을 느끼게 된다. 실력과 힘이 있을 때 가고 말고를 조절하다. 돈도 어설프게 많은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을 때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다. 빈털터리인데 겸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봉정암에서 교도소보다 더 적은 방에서 잤고 아침에는 찬물로 살짝 세수만 했다.


새벽 5시 10분에 봉정암에서 주는 공양으로 아침을 먹고 해돋이를 보러 갔다. 날씨가 흐려 해는 구름 뒤로 숨어버려 동해 바다만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가족 중 한 명의 등산화 밑창이 입을 벌리며 너덜거리더니 결국 떨어져 나갔다. 끈으로 묶었지만 묶이지가 않는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그 등산객 중에 우연찮게 한 명이 강력 본드를 가져왔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축복임을 깨닫게 된다. 좋은 도움을 얻는 것도 복이니 주위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


등산화가 온전해지다 보니 우리는 편한 길 대신 험한 길인 오세암을 거쳐 백담사로 내려가기로 했다. 몇 개의 능선을 넘어 오세암에 도착하니 11시 30분이다. 거기서 또 절에서 주는 점심 공양을 먹었다. 오세암 코스가 훨씬 더 단풍이 아름다우며 설악산의 품격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토요일 백담사에는 사람이 무척 많다. 단풍, 사람 구경 실컷 한 여행이었다.

봉정암에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뜻을 깊이 묵상하는 여행이었다. 다들 좋았는지 내년 봄에 또 가자고 한다. 몸을 만들어서 그때는 꼭 대청봉까지 올라가자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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