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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기 Feb 03. 2024

풀밭엔 풀씨가 떨어지고, 세상엔 말씀 씨가 떨어집니다.

풀밭에 풀 씨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세상엔 말씀 씨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가을 햇살이 좋으니 점심 먹은 후 꼭 산책을 갑니다. 다니고 있는 회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계절 흐름을 시시때때로 알 수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산이 단풍으로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은행나무는 질긴 삶의 흔적인 노오란 잎들을  도로 위에 토해냅니다.


산과 거리에 나무들은 수족 같은 나뭇잎들과 처절한 이별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나무는 헤어지기 싫어하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애잔한 마음이 듭니다. 나무는 긴 겨울 동안 혹독한 고독 시간으로 들어갑니다. 추운 겨울에 무서운 고독을 깊은 침묵으로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나무는 항상 이맘때쯤에 떠나보내기 훈련을 합니다. 몇 달 동안 같이 살아왔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나무는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다 떠나보냅니다. 나무는 이맘때쯤 너무나도 냉정합니다. 너무 차갑습니다. 내년을 준비하며 긴 고독 속으로 들어갑니다.


봄에 만났다가 가을에 헤어지는 삶을 무한 반복하고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이나 교수님들이 신입생이 오고 다시 학기말이 되면 헤어지는 것을 반복하는 것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풀밭엔 씨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풀씨가 얼마나 많은지 검은색으로 가득 찼습니다. 내년에 얼마나 풀이 많이 날지 상상이 갑니다. 잡초 생명력은 대단합니다. 바람 타고 날아가 돌밭 사이나 보도블록 틈새에서 살아납니다.


지금 내 모습이 잡초 같은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저기 흩날려 날아다니며 씨를 뿌리고 있는 단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상록수처럼 아직 거목은 아직 되지 못했습니다.  아직은 잡초처럼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조그마한 흙이 있으면 뿌리를 내리고 다시 죽고 다시 삽니다.


나무는 내년 새로운 나뭇잎을 기대하며 고독을 견딥니다. 풀씨는 내년에 잡초처럼 풀이 나는 것을 꿈꾸며 사방으로 씨를 날려댑니다. 모두 떠나보내지만 조그마한 희망은 있습니다. 희망이 있기에 그들은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닙니다. 잠시 움츠려있을 뿐입니다.


끝나도 끝이 아닌 것처럼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것처럼 나무와 풀씨는 살아있습니다. 추운 겨울을 버티고 헐거워진 흙 속에서 다시 생명의 싹을 틔워 새 희망을 노래합니다.


추운 겨울이라도, 움츠려 있더라도, 누추하더라도, 죽은 게 죽은 것이 아닙니다. 땅이 헐거워졌을 때 다시 찬란하게 꽃을 피우고. 나뭇잎이 태어나고 잡초는 다시 태어납니다.


지금은 잡초처럼 살고 싶고, 사방에 말씀 씨를 뿌렸고, 그 씨가 온 세상에 자랐으면 합니다. 복음 전파라는 목표를 달리고 있고, 예수님의 제자라는 씨를 세상에 뿌릴 준비 과정에 있습니다.

 스카이다이빙하기 위해 비행기 난간대 위해 선 기분이며 이제 뛰어내리면 됩니다. 낙하산이 펴지면 살고 안 펴지면 죽는 것입니다. 떨리는 심정으로 예수님의 제자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꽃씨가 세상에 날아가 보도블록 위에 민들레처럼 노란 꽃을 피웁니다. 길 가는 사람은 민들레를 대견해하며 미소짓습니다. 저는 민들레가 대견스러워  사진 찍습니다. 저도 길 가는 사람을 잠시 멈춰 세워 잔잔한 미소를 주는 예수님 제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신앙의 퇴고와 출간이라는 목표를 힘을 다해 뛰어 보려 합니다. 끝이없는 여정이지만 그 여정의 길로 뛰어듭니다. 지금 추운 겨울에 있더라도 반드시 봄은 다시 오고 새싹은 핍니다. 농부를 힘들게 하는 잡초도 자라납니다. 잡초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이 질기고 긴 삶의 여정을 말씀으로 견뎌내고 싶습니다.


우리가 말씀의 씨를 뿌리는 것의 최종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실제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삶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말씀의 씨가 거대한 변화의 거목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관찰, 해석, 적용을 통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아는 것을 넘어 삶에 구체적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적용은 무척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요즘 저는 이웃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작은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반드시 문을 잡아 줍니다. 거리가 멀더라도 오랫동안 문을 잡아주는 친절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작은 실천을 하니 뒤에 오는 사람이 무척 고마워합니다. 한 순간이라도 따스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오고 있는데 문이 닫히는 썰렁함은 없앨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아주 작은 실천입니다. 이렇게 작은 실천이라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삶 속에서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말씀의 씨를 뿌렸으면 반드시 씨가 자라 성장, 변화, 예수님의 제자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 모습으로 성장해 나가길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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