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탁류에 맞장뜨는 용기 - 술 문화
에베소서를 읽은 후
우리는 시대 탁류에 역류해야 합니다. 혼탁한 시대 흐름엔 저항하고 맑은 말씀 흐름엔 순종해야 합니다. 탁류는 맑지 않고 혼탁한 물의 흐름입니다. 탁류는 혼란하고 불안정한 상황입니다. 홍수때 한강의 흙탕물처럼, 우리도 목적 없이 대세에 따라 휩쓸립니다. 이 흙탕물 흐름을 시대정신이라 칭하며, 이에 반대하면 독특한 사람으로 오해받습니다. 시대정신이 아니라 신앙정신으로 가야 합니다.
지금 시대는 성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혼란의 시대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정체성을 거부하는 것이 일상화되었습니다.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것을 시대정신이라고 부릅니다. 모두 맞는 것으로 착각하며 흙탕물속에 같이 흘러갑니다. 하나님 창조질서를 무너뜨리는 시도에 저항하는 사람이 적습니다. 본인한테 경제적, 신체적, 정신적 손실을 끼치지 않으니 남의 집 불구경하 듯합니다. 잘못된 시대정신에 맞짱 뜨는 실행력이 필요합니다.
지금 시대정신 중 하나는 술을 마시는 문화입니다. 예전에 비해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술을 권하는 곳은 많습니다. 술 문화는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신앙적 고민을 안겨줍니다. 술 문화는 종종 신앙인들을 자책하고 낙심하게 만듭니다.
술은 기독교인에게 계륵과 같은 존재입니다. 술을 선택하면 죄책감이 따르고, 술을 피하면 소외감을 느낍니다. 이러한 이중적인 압박은 많은 기독교인이 술 문화와 어떻게 상호작용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듭니다.
술 문화에 대한 우리의 대응 방안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술 문화는 개인적 선택을 넘어, 깊은 신앙적 의미를 지닙니다. 결론은 술 마시는 탁류 문화에 거칠게 저항해야 합니다. 술 문화와 싸워야 합니다. 술 마시는 문화에 대적해서 맞짱 뜨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술 문화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술을 마셨다가 끊었다를 반복한 제이야기를 먼저 꺼내고 싶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암벽등반을 하는 한 여성을 보고 감명받아 대학에서 꼭 산악부에 들어가고 싶다고 결심했습니다. 산악부에서는 목숨을 건 암벽과 빙벽 등반을 하는 만큼, 규율이 매우 엄격했습니다. 산악부 생활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특히, 술 문화는 산악부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코펠에 소주를 담아 마시며, 산과 술에 취해 다녔습니다. 술을 잘 마시고 취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그 시절, 술로 인한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술독에 빠진 채로 벌어진 에피소드를 웃으며 회고하는 것이 당시의 미덕으로 여겨졌습니다.
20대에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음에도,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술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분위기를 즐겼습니다. 그러나 술은 종종 제 한계를 시험하고, 그 한계를 넘어서면 실수하기 마련이었습니다. 그 결과, 술로 인한 실수들이 잦았습니다.
믿음이 깊어짐에 따라, 술을 마시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결정은 처음에는 잘 지켜졌습니다. 새로운 회사에 첫 출근해 처음으로 참여한 회식에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7월이었는데 그날의 분위기는 마치 한겨울처럼 썰렁해졌습니다. 제 한마디가 분위기를 완전히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일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회식 자리에서 술을 거부했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는 회사 문화 속에서도, 술을 마시지 않는 선택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회사의 술 문화는 저뿐만 아니라,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동료들은 퇴사를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일본 사람들과 근무 중, 회식 때 술을 마시는 문제는 항상 미묘했습니다. 때로는 예의상 마시기도 하고, 때로는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선택은 술의 '회색지대'에서
저를 머물게 했으며, 저의 정체성조차 헷갈리게 만들었습니다. 동료들 사이에서는 "그 사람은 대체 마시는 사람인가, 마시지 않는 사람인가?"라는 혼란이 있었습니다. 일부는 제가 일반 동료들과는 술을 마시지 않고, 오직 회장님과 있을 때만 마신다는 이상한 소문과 선입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술의 회식지대 상황은 저에게 큰 고민을 안겨주었습니다. 술 문화 내에서 저의 일상과 신앙생활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습니다. 술을 마시게 되면 신앙적으로 자책을 하게 되었습니다. 술을 마실 때마다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더욱 깊어지며, 올바른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공식적인 회식 자리에서는 필요에 따라 조금씩 술을 받아 놓고, 최소한만 마셨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술을 절대 마시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술을 좋아하는 두 명의 동료와 어울리면서 점차 술을 많이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마셨던 경험 덕분에 술이 의외로 잘 들어갔습니다. 이후로는 다시 최소한으로 술을 마시는 방식으로 돌아갔습니다.
회사 문화는 거의 매일 술을 마시는 분위기였고, 임원들은 술자리를 통해 부서 간 협력을 강조했습니다. 술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 진급도 빨리 한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공식적인 자리를 제외하고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떤 깊은 배신을 경험한 후, 저는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그 배신은 저를 극도로 힘들게 만들었고, 양평의 한 곳에서 남동생과 모닥불을 피우며 술을 마셨습니다. 술잔을 기울이며 남동생에게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그 순간은 마음이 다소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술이 깨고 나니 실제로 상황이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남동생과의 거리감은 줄어들었고, 오랫동안 쌓여 있던 감정들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습니다.
현재는 제자, 사역 훈련을 받으며 술을 전혀 마시지 않습니다. 술을 절대로 마시지 않겠다고 선포하며, 술의 회색지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두 달 전, 회사의 최고 임원들과 함께 골프를 친 후에 이어진 회식 자리에서, 저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정중히 말씀드렸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16명 중 유일하게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은 저뿐이었습니다. 운동을 마친 뒤라 모든 이가 술을 크게 마셨습니다.
엊그제 또다시 회사의 고위 인사와 골프를 친 후, 저는 술을 마실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이런 선택이 저를 조직 내에서 소외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가 들었지만, 술을 마시면 제 신앙이 흔들릴 수 있다는 생각에 굳건히 거절했습니다.
골프 자체보다는 회식 자리가 저에게 더 많은 걱정을 안겼습니다. 회식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술을 거절할 수 있도록, 많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반복되면서, 이제는 회식 자리에서 회장님이 자연스럽게 사이다를 주문해 주십니다.
술을 안 마신다고 하면 취하지 말라고 했지 술을 마시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다며 술을 권합니다. 신앙적인 고민에 술을 마시지 않을 결단이 섰다면 과감하게 마시지 않는다고 선포해야 합니다. 아무리 강압적인 회사라 할지라도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하면 권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소외된 자가 되겠다고 선포하는 것은 아닙니다. 술 마시는 방법이 아니더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술을 마시면 몸이 망가지고, 다음 날 업무에 악영향을 미쳐 회사에도 손해를 끼칩니다. 술 마시면 뇌가 취하니, 어떤 식으로든지 사고가 납니다. 사고 날 확률도 높아집니다.
회식 자리와 술로 인한 고민이 많다면, 과감하게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선포하십시요. 이렇게 선포하는 순간부터, 술이나 회식 자리로 인한 고민에서 자유로워집니다. 더불어, 신앙적인 자책감에서도 해방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삶을 더 충실하게 살아나갈 수 있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명확하게 선언하면, 사회적 압박이나 개인적 유혹에도 불구하고 그 결정에 따라 일관되게 행동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이러한 공개적인 선포는 단순히 술을 거절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자신의 신념을 확고히 하는 행위가 됩니다. 술을 거절하면 상대방도 한두 번만 섭섭해하지, 그 이후부터는 아예 술을 권하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면 과거의 이야기를 되풀이하게 되지만, 차를 마시면서는 미래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술대신 차를 선택하십시오. 회식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아도 어색함을 피할 수 있도록, 네이버 뉴스나 다양한 지식을 미리 준비해 대화의 주도권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미래 지향적인 대화를 준비하면 회식 자리에서도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술을 마시면 다음 날은 마치 '죽음'과 같은 고통을 겪게 됩니다. 술이 인간관계를 일시적으로 편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 효과는 잠 깐 뿐입니다. 회사에서는 결국 업무 능력과 매출로 개인을 평가합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최종적인 승리를 가져다줍니다. 본인이 온전한 자로 서 있다면, 술은 아무런 영향력을 주지 않습니다.
저는 술을 마시고 끊는 것을 반복해 왔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 성실함이 궁극적으로 더 큰 성과를 가져온다고 믿습니다. 진실하게 삶을 살아갈 때, 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신앙적으로 결단하면, 회사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해서 직장을 잃지 않습니다. 오히려 회사에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 더 큰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친구, 지인, 가족에게도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선포하세요. 맨 정신으로 살아가기에도 이 세상은 너무나 짧습니다. 취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너무 아깝습니다. 술을 마시는 탁류에 목적 없이 흘러가지 마십시오. 세상의 탁류에 거세게 저항하여 하나님의 정체성을 가진 거룩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거룩한 삶이 더 멋진 인생입니다. 16명이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단 한 사람만이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선포할 때, 그 한 사람이 훨씬 더 위대하다고 믿습니다. 상사들 또한 그 성실한 한 사람을 기억합니다. 술 취하고 다시 깬 후에는 모든 관계는 다시 리셋됩니다. 술이 인간관계 개선할 수 있는 해답이 아닙니다.
술을 마시지 않음으로써 단지 술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단은 삶을 더욱 풍요롭고 가치 있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엡4:22-24]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