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 저희 반에서 작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새생명축제가 열린 날, 한 학생이 자기 반 친구들을 엄청 많이 데리고 교회로 왔습니다. 이날은 고등부에서도 새로운 친구들을 위해 특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행사의 드레스코드는 흑백이었습니다. 저는 흰색 옷을 입고 참석했습니다.
교사의 기도회가 끝난 후, 자리에 돌아가 보니 낯선 아이가 우리 반의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새로운 친구였습니다. 매우 잘생겼습니다. 반가웠습니다. 다른 학생은 친구 두 명을 초청했습니다. 오랫동안 참석하지 않았던 친구도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꾸준히 참석하던 학생들은 여전히 예배 자리를 지켜 주어 감사했습니다.
저희 반의 의자는 거의 차 버렸습니다. 잠시후 한 학생이 자신의 반에서 6명의 친구들을 초청하여 데리고 왔습니다. 자기 반의 25%에 해당하는 인원입니다. 친구들이 몇 시에 모일지 의논해서 같이 왔다고 합니다. 앉을 자리가 모자라, 긴급하게 추가 자리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새 생명 축제에 저희 반에만 9명의 새로운 학생들이 초대 받아 참석했습니다. 큰 기적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동안 눈물이 흘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들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학기 초, 저희 반 인원이 20명이 되길 기도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친구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거의 응답하셨을 때, 감동의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친구들을 초대하기 위해 애썼던 아이들의 노력에도 눈물이 났습니다. 교회로 사람을 초대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말 바쁜 학생들입니다. 주일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그럼에도 학생들이 복음을 듣고, 전하기 위해 스스로 움직인 것에 대해 깊이 감사했습니다.
점심을 먹으면서 한 동료에게 교회에 같이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그 직원은 대화 주제를 얼른 바꿨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때때로 '예수쟁이'라는 비판을 받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결코 누추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누추한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 또한 믿음으로 인해 누추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더 거룩해집니다. 새 생명 축제에 많은 학생들이 참석했을 때의 기쁨은, 잠시나마 세상의 힘듬을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교사로서, 이러한 순간들이 저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여호와를 알면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다"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우리 마음에서 흐르는 기쁨의 강물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말미암음입니다. 세상의 어떤 기쁨보다도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은 차원이 다릅니다.
예배 시간 내내 눈물이 났습니다. 이렇게 청소년들은 예수님을 갈망합니다. 어떤 이정표를 찾고자 합니다. 삶의 북극성을 찾고 싶은 욕구가 청소년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 붙잡으려해도 안개처럼 다 사라지고 허무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붙잡으면 최종 승리합니다. 믿는 과정에서도 현재 시제로, 지금 살아가는 이 시점에 기쁨이 강물처럼 흐릅니다. 마음에 기쁨 강물이 흐르게하는 것은 예수님뿐입니다. 마르지 않는 기쁨입니다. 예수를 믿을 때 기쁨의 강물이 춤춥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죄인이기에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셨습니다. 사랑하셨기에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희생시켜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셨고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죽을 몸에서 영원히 살 수있게 되었습니다.
예배 시간 내내 눈물이 났습니다. 우리는 결코 누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누추한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이 많은 전도를 해와서 누추함이 아닌 영광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삶속에서 우리의 수치를 걷어내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수치당하지 않게 해주십니다.
[욜2:26-27]
26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27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가장 삶의 원동력입니다. 삶에 대한 갈증을 해소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예수님을 알아 최고로 기쁨을 얻는 청소년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새로운 아이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궁금했을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전해들은 학생들이 계속 예배의 자리에 나오기를 기도합니다.
성적이 나빠서 수치스러울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수치에서 건져내주십니다. 사람들이 다 떠나 외로이 홀로 있을 때도 하나님은 우리의 수치를 제거해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배만 드리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요. 우리는 하나님 품을 떠나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정글같은 세상속, 광야같은 세상, 황무지같은 길에서도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교회안에 눈물흘리며 주님을 만나기도 하지만, 세상에서도 내 삶을 비추는 주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눈물흘리는 학교에서, 수치를 당한 바로 그 곳에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팍팍한 무릎을 일으켜 세워 걸어야 합니다. 주님은 다시 걸어갈 힘을 주십니다. 나아갈 길을 안내해주십니다.
청소년들이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당하더라도 하니님은 싸매주시고 닦아주시고 다시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청소년이 예수님을 향한 마음이 뜨거운 용광로처럼 열정적이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은 우리 청소년들의 앞길에 빛이 되어 주십니다. 길이 되어주십니다. 말씀따라가다보면 주님의 인도하시는 그 길이 맞습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면 누수없는, 방황없는 청소년기를 보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까운 것이 시간입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청소년은 흔들리지 않아 시간 낭비하지 않습니다. 나침반이 흔들리며 결국 북쪽을 가르키는 것처럼, 결국 하나님께 영점 조정하며 올바르게 살아갑니다.
청소년기에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축복입니다. 좋은 믿음의 친구를 만나는 것은 삶의 버팀목이 됩니다. 자기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친구를 만날 때 , 그 사림은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예배하며 나갈 때 그 학생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주님이 찾는 그 한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아니라고 할 때 말씀이 옳다고 외치는, 말씀대로 살아가는 그 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을 알면 기쁨의 강물이 흐릅니다.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쁨 강물의 거센 물결, 힘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 청소년, 단 한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 단 한사람, 그 청소년으로 말미암아 청소년기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킵니다. 세상을 바꾸는 청소년이 될 것입니다.
눈물이 납니다. 전도한 학생도 귀하고, 오랜만에 나온 학생들도 귀합니다. 꾸준이 출석하는 학생도 귀합니다. 친구따라 교회에 새로온 학생들도 너무 귀합니다. 선생은 볼품없는데 휼륭한 반 학생들을 통해 제가 더 복을 받아 눈물이 납니다.
예수님이 좋아 전도한 학생들을 보는 것이 예수님이 기쁨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최종 승리합니다 예수쟁이라고 놀림을 받더라고 최종승리합니다. 흔드리리 말고 주님이 인도하신 길을 묵묵히 가게되면 믿음이 장성한 분량까지 자란 예수님의 제자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나보다 남을 더 섬기는 휼륭한 성인으로 다 자랄 것입니다. 저 학생들이 얼마나 더 성장할지 기대하는 모습으로 미래의 성장한 모습을 꿈 꿔 봅니다.
부족한 선생님의 수치를 다 기리워준, 내 눈에 눈물나게 만들어준 우리 반 학생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다음주에 또 텅빌지도 모르지만 20명까지 반이 꽉찬 부흥을 꿈꾸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