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연약함의 힘]
여행을 결정한 첫 번째 이유는 ‘욕지도(欲知島)’ 그 이름 때문이었다. '알려고 하거든.‘
자꾸 만나고 바라봐야 한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있듯, 무엇이든 알고자 한다면 그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뜻이리라. 나는 살면서 무엇을 알고 싶고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욕지도를 걸으며 '나'를 알고 싶었다. 두 번째 이유는 욕지도 '모노레일’을 타기 위해서였다. 욕지도의 최고봉은 천왕봉이지만 군 시설이 있어서 정상에는 올라갈 수 없다고 한다. 그 아래 대기봉까지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있어 다행히 힘들지 않게 올라갈 수 있단다. 우리나라 섬 풍경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고 하는 욕지도에서 아름다운 한려수도 절경을 사진으로 담고 싶었다.
새벽 2시 서울에서 400km 넘는 고속도로를 6시간을 달려 삼덕항에 도착했다. 가까스로 10시 배를 탔다. 욕지도 선착장에서 내리면 모노레일 매표소까지 가는 버스가 있지만 나는 트레킹 코스로 결정했다. 2020년 8월의 남해안 날씨는 그야말로 후끈후끈 찜통이었다. 게다가 마스크까지 쓰고 있으니 숨 쉬는 일조차 버거웠다. 초반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이었다. 천천히 섬 풍경을 둘러보며 올라갔다. 욕지도의 명물 고구마밭을 지날 때는 누런 황소가 마중 나와 있었다. 눈도 부리부리하고 듬직하게 잘생긴 황소였다. 귀하다는 고구마꽃도 지천이었다. 멀리서 볼 땐 나팔꽃처럼 보였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별 모양의 보랏빛과 분홍 잎이 나팔꽃보다 더 예뻤다. 고구마꽃의 꽃말이 행운이라고 한다. 발아래 펼쳐질 해안 절경이 기대되었다.
30분 정도 걸어 올라가니 매표소가 나왔다. 모노레일은 정상까지 2km 정도 올라가는데, 매우 가파른 산비탈을 좌우로 굽이치며 올라갔다. 마치 허공에 떠서 나는 가분이었다. 더구나 고도가 높아질수록 달라지는 풍경은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분명 40도에 가까운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맑은 날씨였는데, 올라가면 갈수록 점점 안개가 짙어졌다. 대기봉 전망대에 도착해서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여름 산을 뒤덮은 안개구름이 초록의 풍경과 저 멀리 바다 절경을 모두 앗아가 버렸다. 행운은커녕 설레고 기대했던 모든 계획이 망쳐버렸다. 아무것도 안 보이고 나만이 홀로 정상에 서 있었다.
그 해 새해 첫날, 나는 집을 나왔었다. 갈 곳이 없어 정처 없이 헤맸다. 이유도 원인도 없이 우울증으로 누워만 있는 엄마를 돌보는 5년 동안 나는 지칠 대로 지쳤었다. 직장도 글 쓰는 일도 다 포기할 마음이었다. 술만 마시는 아버지, 새우등처럼 굽어 자리에 누운 아버지의 모습을 보자마자 앞 날이 캄캄했었다.
어찌 되었든 이번 생은 내가 먼저 죽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다. 부모에게 진 빚은 이 정도면 충분히 갚은 거 아닌가. 내가 없으면 언니나 남동생이 알아서 모시고 챙겨 드리겠지. 부모님도 내가 없어지면 어떻게든 건강해지려고 노력하시겠지. 계절마다 내가 사드린 옷들을 챙겨 입으며 그제야 내가 없음을 한탄하시겠지. 그렇게라도 내가 얼마나 마음이 먹먹했고, 슬펐고, 무너졌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오랫동안 전망대 위에서 멍하니 서 있다 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앞이 서서히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짙은 초록의 숲이 보이고 멋들어진 암벽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멀리 아름다운 한려수도 해안풍경은 볼 수 없었지만 단단했던 내 마음의 빗장이 살짝 열렸다. 고요한 분위기로 오래 머물다 보니 저 멀리서 파도 소리도 들려왔다. 바위에 부서지며 외치는 소리가 ‘그동안 인생공부 힘들었지’ ’ 애썼다. 애썼다’ 하면서 나에게 들려주는 것만 같았다. 무기력했던 나의 뇌와 가슴과 온몸의 세포들이 다시 살아서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시원하고 개운했다.
파도가 없는 바다는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 모든 날이 파도다. 안개가 자욱해서 바로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다. 바다가 부서지면서 파도 꽃을 피우는 것처럼 바람 부는 세상에서 흔들리고 부서지면서 자신만의 꽃을 피우는 게 삶이다. 그러니 죽고 싶다면 그 관뚜껑을 미는 마음으로 죽을힘을 다해 다시 살아보라고.
8월 뜨거운 태양이 타올랐던, 안갯속에 웅장하고 고요했던 욕지도에서 인생 공부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