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와의 첫 만남 - 이스탄불(1)
20대를 시작하며 한 가지 목표를 세웠다.
"불혹 전에 50개국을 돌겠다!"
하지만, 10년이 지났음에도 학업과 취업, 일에 치여 아직 20개국 밖에 가지 못했다. '남은 10년이란 시간 안에 30개국을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며 나의 첫 해외 배낭여행을 회상해보았다.
어렸을 때 몇 번 부모님 따라 해외여행을 갔었지만, 혼자 해외 배낭여행을 처음 시작한 건 군대 전역 직후였다.
나 홀로 첫 배낭여행지는 '터키'였다. 유럽을 가고자 하였으나, 당시 돈이 모자랐고 적당한 곳을 찾아보았다. 많은 역사 유적지와 먹거리, 볼거리가 가득한 곳이었던 '터키'를 선택했다.
지금 와서 터키를 회상하면 모든 게 섞인 곳이었다. 아시아와 유럽이 섞였고, 이슬람 국가지만 대표적 교회 유적지가 모인 곳이었다. 요한과 사도 빌립의 무덤이 있고, 성모 마리아의 집터뿐만 아니라 많은 교회 유적지가 남아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여전히 아날로그의 감성이 가득한 곳이었다. 거리마다 물담배와 담배냄새가 배어있지만, 푸근하고 순수했던 사람들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특히, 이스탄불은 너무 좋은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6년이 지났지만, 다시 그곳에 돌아간다면 거리 골목골목의 작은 슈퍼마켓까지 찾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눈에 선하다. 나의 터키의 여행과 끝은 이스탄불이었고, 이러한 기억을 더듬어 다시 그 시간으로 빠져본다.
2014년 1월 한국은 추운 겨울이었다. 40L 배낭을 들쳐 메고 자신감과 설렘만 가득하던 나는 한 달간의 터키일주를 시작하고 있었다.
두바이를 경유하고 오랜 시간 비행 끝에 도착한 터키의 첫 향기는 아직도 눈에 선하다.
길거리마다 마주치는 다양한 색의 피부와 눈동자, 차이의 달큰한 향, 바다의 짠내, 담배 냄새.
뭔가 모르게 마구 섞여있는 느낌이었다.
들뜬 마음과 한켠에 긴장을 곤두세우며 '술탄아흐맷'행 트램을 탔다.
당시만 해도, 터키에 한국사람들이 많이 방문하진 않을 때였기에, 트램 안의 터키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트램을 타고 술탄아흐멧 역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니, 큰 광장과 그 뒤에 펼쳐진 광경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최고의 순간 중 하나이다.
블루모스크 위로 새때가 날아들며, 석양과 맞물려 이국적인 모습을 넘어 다른 행성에 온 느낌을 들게 하였다. 그 자리에 서서 가방을 바닥에 떨군 체 10분을 멍하니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다.
비잔틴 미술의 최고의 걸작이라는 아야소피아 성당이 블루모스크 옆에 당당히 솟아 있었다. 로마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이 지어지기 전엔 세계 최대 규모의 성당이었으니, 그 위풍당당한 모습은 글로써 표현이 되지 않는다.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어 갈 즈음 첫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하였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였고, 접근성이 좋았다. 그리고 게스트 하우스 1층의 테라스가 기가 막혔다. 마치 어느 동화에서 모험가들이 모일 거 같은 이름의 게스트 하우스였다.
(이튿날 저녁엔 테라스에서 9명의 한국인 남녀노소가 친구가 되어 터키의 대표 맥주인 Efes와 Tuborg를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하였다. 그때의 인연들이 6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연락하고 만나기도 한다.)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로 들어가니 4~50대로 보이는 마치 산적 같은 모습의 한국 아저씨 두 분이 있었다. 그들은 터키 여행의 거의 막바지랬다. 설레는 여행의 첫날인 나와 마지막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그들과의 통함이었을까, 우리는 함께 거리로 나가 처음과 마지막을 동행하기로 했다.
우리가 처음 방문한 곳은 '그랜드 바자르'다. 이스탄불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에서 제일 큰 실내 시장이다. 엄청난 인파가 몰려있었고 축구복, 장신구, 터키쉬 딜라이트 등을 팔고 있었다. 눈이 돌아갈 만큼 다양했고 끝이 없었다. 곳곳에서 호객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멀어지곤 했다.
지나갈 때마다 호객하는 터키 청년들이 나를 보며 외쳤다.
"헤이! 브라더! 컴 히어!"
나는 대답했다.
"아임 낫 유어 브라더!"
한참 구경하고 어느 식당으로 들어갔다.
터키에서의 첫 끼였기에 기대감이 컸다. 자신 있게 호객하던 여종업원의 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터키에 왔으니 케밥은 먹어봐야지!' 하며 당당히 제일 상단의 'BEST!'라고 써진 케밥을 선택했다.
주문했던 메뉴가 나오고 당황했다. 한국에서 봐왔던 케밥이 아니었다. 풀떼기와 한 줌의 밥과 양고기가 올려졌고 그 위로는 피데가 덮여있었다.
'아니, 이게 끝이야?' 적은 양에 적잖이 당황했다. 한국인의 배를 채워주려면 적어도 두 그릇은 먹어야 할 거 같았다. 아쉬웠던 저녁을 뒤로하고 우리는 트램을 따라 걸어 다녔다.
어두워지니 거리에 노란 불빛들이 들어차며 이국적 분위기를 연출했다. 불켜진 테라스 밑에서 물담배를 피고 차이를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가본적도 없는 파리의 한 거리를 떠올리게 하였다. 중간중간에 보이는 사원들과 사람들의 외향 때문에 이곳이 터키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저녁의 아쉬운 마음을 술로 달래기로 했다. 편의점에서 고추장아찌와 이름 모를 과자, 그리고 맥주 여러 캔을 샀다. 아저씨들은 특별히 준비한 위스키 한 병을 꺼냈다. 도미토리 중앙 바닥에 앉아서 술을 마시며 깊은 얘기를 했다. 사실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그 날 이후로 기억이 안 난다.
우리가 방문했던 게스트 하우스의 조식 특식은 한국인을 위해 라면을 끓여준댔다. 술을 적당히 마시고 아침 7시에 라면을 먹기위해 설레는 잠에 빠졌다.
좋은 인연을 만나 낯선 곳의 두려움을 날려버렸던 터키의 첫날이 이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