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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소리 Apr 25. 2022

ep.06 산덕후의 사진첩

2022.04.16 북한산 진달래 능선

격리가 해제되고 2주 만에 제대로 산을 탔다. 그 사이 북한산에는 봄이 왔다. 이미 떨어진 줄 알았던 벚꽃이 만개했고 연분홍 매화는 꽃망울을 터뜨렸다. 백련사 계곡에서 물놀이하는 아이들과 그 주위를 빙 둘러앉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여유로워 보였다. 들머리부터 마음이 들떴다.


이날은 백련사에서 출발해 진달래 능선을 지나 구천폭포로 하산했다. ‘진달래 능선’이라는 이름답게 산길을 따라 양옆으로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펴있었다. 군락지라 불릴 정도로 진달래가 가득하진 않았지만 바위 사이로, 나무 사이로 듬성듬성 피어난 진달래는 또 다른 풍경을 자아냈다.


북한산 ‘진달래 능선-구천폭포’ 코스에 만발한 꽃.

구천폭포로는 처음 내려와 봤다. 깎아질 듯한 절벽과 기암괴석에 나무가 자란 모습이 꼭 오대산 소금강 코스 같았다. 오랜만에 바위에 앉아 쉬고 계곡물에 손도 담갔다. 산도, 계곡도 온통 봄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사진첩을 보니 산과 꽃 사진뿐이다. 셀카는 물론이고 맛집이나 카페에서도 사진을 잘 안 찍지만 산에서는 자꾸 휴대폰 카메라를 켜게 된다. 북한산 비봉에 처음 올랐을 때 꼭대기인 진흥왕 순수비에 도착하기 전에 휴대폰이 꺼질까 봐 얼마나 애를 끓었는지 모른다.


친구는 그런 나를 보고 ‘우리 아빠 사진첩과 다를 바가 없다’고 했었다. 구글에서 관심사로 추정한 연령대를 확인해 보면 분명 40-50대일 거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중년 소리 좀 들으면 어떠랴. 산을 못 가는 평일 문득 사진첩을 보면 흐뭇하다. 매년 봄이면 피는 꽃이라도, 자주 오르는 봉우리라도 내겐 다 다르고 모두 특별하다. 그날 빛이 쨍했다던지, 유독 힘들었던지는 나만 아니까. ‘그날의 나’는 그날에만 존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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