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4 월악산 신륵사-영봉-덕주사
수빈과 상윤은 ‘오장육부’ 멤버다. 오장육부는 ‘오 대장과 여섯 명의 부원들’이란 뜻으로 작명 센스가 탁월한 수빈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졌다. 종종 시간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서울 둘레길이나 북한산•도봉산은 가봤지만 지방산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신륵사에서 오르는 길,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연둣빛 풀잎과 바람 소리, 새소리에 눈과 귀가 제대로 호강했다. 정상인 영봉에서는 굽이굽이 흐르는 충주호와 청풍호가 펼쳐졌고 하산할 때는 겹겹이 포개진 산줄기와 소나무가 우리를 감쌌다. 이날 나와 수빈이 가장 많이 나눈 대화는 이 풍경을 담기에 우리의 언어가 곤궁하다는 말이었다.
걷다 보니 4시간 정도로 계획했던 산행은 5시간, 6시간으로 늘어났다. 초입 긴 오르막길에서 진을 뺀 상윤은 다리에 힘이 풀렸다. 전날 잠을 자지 못하고 산에 온 수빈은 어느 때보다 피곤해 보였다. 특히 영봉과 중봉을 왕복할 때는 고비였다. 늘 산행에서 말이 많았던 우리는 잠깐이었지만 말을 잃었다. 덕주사에 도착했을 때서야 처음 계획한 10km 이내가 아닌 15km를 탔다는 걸 알았다. 셋이 함께 탄 가장 긴 산행이었다.
산을 타다 보면 내 몸에 익숙한 거리가 생긴다. 그 거리를 갑자기 늘리는 건 아무리 많은 준비를 했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동안 셋이 같이 탄 산들은 기껏해야 5km 안쪽이었는데 갑자기 세 배가 됐으니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는 게 당연했다. 이날 상윤은 심장 박동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고 했다.
한 걸음도 내딛기 힘든 발걸음을 떼어 열 걸음을 가준 둘 덕분에 이날 계획한 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다. 조금 더 가보자는 제안에 수빈과 상윤은 거절한 적이 없었다. 북한산 비봉을 처음 갔을 때 둘 만이 포기하지 않고 코뿔소바위까지 올랐다.
비봉의 상징인 진흥왕순수비를 오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수직으로 선 바위를 사족 보행해야 해, 내겐 가장 겁나는 바위인데 수빈은 주저하지 않았다. 조심스러운 발걸음에 수빈이 느끼는 긴장이 그대로 전달되는 거 같았지만 그녀는 자기 차례가 되면 망설임 없이 바위를 올랐다. ‘멈추고’ 싶지만 ‘가보자’고 말하고, 지금 갈 수 있는 걸음보다 한 걸음 더 가는 것, 수빈과 상윤은 ‘진짜 강인함’이 무엇인지 그날 보여줬다. 아마 다시 월악산을 간다면 그 어떤 풍경보다 두 친구와 걸었던 시간들이 떠오를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