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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소리 Jun 22. 2022

ep.09 처음이 어렵다

2022.06.11-12 한라산 영실코스•백록담

거의 반년 만에 한라산에 왔다. 누구나 ‘처음’에 의미를 두듯이 한라산도 내게 ‘첫 산’이라 의미 있는 산이다. 산을 좋아하기 전후로 내 삶은 달라졌다고 생각할 만큼 산에 진심인지라 한라산은 내게 더 값진 산이다.


이날은 이상하리 만큼 발걸음이 가벼웠다. 전날 영실코스를 다녀와 피곤한 상태였지만 막상 걷기 시작하니 괜찮았다. 오르막길에서 내 속도를 유지할 수 있었고, 긴 하산 길에도 크게 지치지 않았다. 예전에는 생각만큼 줄지 않는 거리에 답답해하며 주차장이 언제 나타날지만 생각했는데 이날은 걷다 보니 산이 끝나 있었다. 친구는 그런 나를 보고 자주 와서, 길이 눈에 익어서 발걸음에 자신감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

한라산 중턱과 백록담.

한라산이 처음부터 편안하진 않았다. 한라산을 처음 탄 다음날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럼에도 처음 완주한 기억으로 두 번, 세 번 가다 보니 길이 익숙해졌다. 언제부터 오르막길이 시작되는지, 언제 돌길이 끝나고 평탄한 길이 나올지, 어디서 쉬어야 할지 알게 됐다. 내가 가야 할 길들이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가 되자 한라산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처음 가는 산은 늘 낯설고 어렵다. 아무리 블로그를 열심히 보고 공부하더라도, 아무리 운동을 해 체력을 키웠더라도, 낯선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겁냈던 것보다 길이 평탄해서 놀랍고, 예상했던 것보다 힘들어서 당황스럽다. 다만 어느 경우라도 변하지 않는 진리는 ‘일단 한 번이라도 간다면, 두 번째는 처음보다 쉽다’는 것이다.


‘처음은 어렵다’는 말이 요즘은 무척이나 희망적으로 들린다. 평생 해보지 않은 것들, 어쩌면 피할 수 있는 것들을 마주하며 마음 같지 않은 일들이 투성이다. 내게 일어나는 일들이 이해되지 않고 버거울 때마다, 처음이라서 그렇다고, 다음은 덜 힘들 거라고, 그러니 당장 지금 벌어진 일이 아닌 모든 일을 겪고 난 후를 상상해보자고 애써 다독인다. 요령 피우지 말고, 산에서처럼, 내 앞에 놓인 길들을 걸어가면 된다. 이 자갈밭이 편해질 훗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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