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7 인왕산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하는 삶을 산다. 저녁 시간이 생기며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그중 하나가 등산이다. 서울에는 접근성이 좋고, 2시간 이내에 가볍게 탈 수 있는 산들이 있다.
인왕산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산이다. 입구부터 30분 정도 오르면 정상에 도착해 ‘가성비’가 좋다. 조명이 있어 밤에 탈 수 있는 서울에서 몇 안 되는 산이다.
이날은 기차바위 쪽으로 올랐는데 초입부터 흙길이 이어지고 양옆으로 나무들이 우거져 콘크리트 계단으로 시작되는 범바위 코스와는 사뭇 달랐다. 흙길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넓은 바위가 나타났다. 기차바위부터는 야경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었다.
인왕산에서 보는 서울의 밤은 늘 반짝인다. 빛이 쏟아지는 밤 풍경을 보면 ‘웹툰 미생’을 그린 윤태호 작가가 생각난다. 그는 “1%가 세상을 만든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빌딩에서 새어 나오는 저 많은 불빛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물음에서 미생이 시작됐다”라고 했었다. 인터뷰를 읽고 야경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불이 환히 켜진 건물들과 도로를 비추는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보면 모두가 각자의 등으로 말을 거는 것만 같다. 이 많은 불빛 중에 하찮게 여길 불빛은 없다고 말이다.
산에서 보는 야경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것만이 내가 퇴근하고 산에 가는 이유는 아니다. 혼자 노는 방법을 몰라 긴 저녁 시간이 때때로 지루했다. 시간을 때우려고 시작한 게 산책이었다. 어떤 달은 200km를 걸었다. 걷기의 종착지는 결국 산이었다.
요즘은 주말에 갈 산을 대비해 체력을 키우려고, 혹은 주말에 산을 못 가 평일에 탄다. 일주일에 한 번, 꼬박꼬박 지키는 나만의 ‘루틴’이 있다는 건, 잘 살고 있다는 도장을 스스로 찍어주는 것만 같아 산을 다녀오면 기분이 좋다.
잘 살지 못할 때는 너무 잘 알겠는데, 정작 잘 살고 있는지는 갸우뚱했었다. 습관적으로 내뱉던 ‘잘 살고 있지’는 잘 살고 있다는 의미보다 ‘별일 없다’에 가까웠다. ‘잘 살고 있을까?’ 수많은 물음표에 산은 늘 답을 줬다. 정상을 오르기까지 흘린 땀이, 이 풍경을 보려고 견딘 시간들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만 같았던 잘 살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해 줬다. 그 감각을 까먹지 않고 살다 보면, 내일도, 내년도, 어쩌면 먼 훗날에도 나를 홀대하지 않고 오늘을 감사히 여기며 살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