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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살, 대학교 5학년생으로 산다는 건

안녕하세요.

by 산토끼

32살에 호기롭게 대학교 3학년으로 편입을 했다. 다니고 있던 회사가 있었지만, 나는 그곳에서 나의 한계를 발견했다. 회사에서 하는 일은 사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사실 회사를 다니면 다닐 수록 내가 지금껏 이루어놓은 것들이 하나씩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될까? 라는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져보았을 때, 답은 "아니오"였다. 그래서 나는 신중하게 다음 단계에 내가 발을 디딜 곳을 물색했다. 공부를 더 해야했다. 오직 대학을 나온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대학을 나온 사람들에게만 시험응시자격이 주어지는, 특정한 학과 출신들에게만 시험을 볼 자격이 주어지는 쪽으로 목표를 세웠다.


몇 가지 후보군이 있었지만, 지금 내가 속한 학과에 지원했고 운 좋게 합격했다. 예전에 대학을 다니던 시절 성실히 학습에 임했던 것이 지금에서라도 효과를 보는 듯하여 기뻤다.


20살이 넘으면 사실 그 이후로는 노화이다. 그래서 대학교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다닐 때 나는 가끔 내 나이를 잊는다. 그러다 문득, 혼자 있을 때가 되면, 마트에서 더이상 신분증 없어도 술을 살 때면, 누군가 거침없이 나를 향해 '아줌마'라고 부를 때, 나는 내가 34살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리고 내 스스로, 어떤 일에도 동요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내 마음상태를 알았을 때, 나는 내가 예전보다 단단해졌음을 느낀다.


소녀시절인 10대에는 작은 것에도 나는 참 잘 타올랐다. 별 거 아닌 반찬에도 투정을 부리고 작은 먼지하나에도 짜증을 내었다. 교복치마의 주름, 어제와는 조금 미묘하게 달라진 친구들 사이의 기류, 그런 일들을 참으로 민감하게 인지했고 받아들였다. 그 시절 적었던 글들은 대학시절에 다시 읽어보니 너무 어렸고, 유치해서 남들이 볼까 두려워서 불태워버렸다.


그 후로도, 나는 가끔 나의 기록들을 정리해서 처분했다. 찢어서 조금씩 없애나갔다. 불완전한 시절의 나를 지금 현재의 나는 용납할 수 없었다. 누군가가 볼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시절의 정제되지 않은 자신을 그대로 나타내어보니, 내 자신부터 다시 들여다보기가 힘들었다.


34살의 대학교 5학년이라는 말을 사람들에게 할 기회가 있다. 사람들은 나에게 '대단하다'고 한다. 어떤 점이 대단하다는 건지, 짐작해보자면, 직장에서 얻을 수 있는 잠재적 수익을 포기하고 불투명한 미래에 도전하는 당신의 태도에 놀라움을 표한다. 라는 것 정도인 것 같다.


공자는 학이시습지 불이열호와?라고 하였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느냐. 배움은 20대의 대학생 시절이 끝나면 끝이 아니다. 나는 30대로서 앞으로 혹여 자식을 낳게 된다면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아는게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모르는 것이 더욱더 많을 것이다. 단지 지금의 내가 배우는 곳의 무대가 대학일 뿐이다. 우리는 삶을 이어갈수록 계속하여 배움을 거듭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발전해나갈 것이다.


배움은 계속 되어야 하며, 누구나 자신방의 방과 책상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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