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포기의 김장
소규모 알뜰살뜰 김장 담그기
결혼을 하고나서 처음으로 내 손으로 김장을 담갔다. 남의 손이 아니라, 내 손으로 무려 김치를 만들었다는 그 기쁨은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까. 빨갛게 잘 버무려진 배추이파리가 김치통에 그득히 담겨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벅차오른다. 나의 첫 김치는 언제였을까. 그건 20대 초반 무렵이었다. 그동안 엄마가 해주는 김치나 사먹는 김치만 먹어보다가 문득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배추 1포기를 사서 싱크대에서 힘들게 절임과 헹굼과정을 겪었었다. 그리고는 한동안은 힘들어서 해보지 못하다가, 결혼하고나서 호기롭게 해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같이 사는 사람이 1명 더 늘어서 김치를 2포기는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막 실천에 옮기려는 그 때, 시댁의 형님이 어떻게 알고 김치 4포기를 하사해주셨다. 그렇게 몇 해는 형님 덕을 참 많이 보았다. 김치찌개도 끓여먹고, 김치전도 해먹고, 싱싱한 배추김치에 흰 쌀밥을 곁들여 그냥 먹기도 했다.
올 해부터는 형님이 사정이 있어서 직접 해야 한다. 배추 6포기와 무우 2포기, 당근 1개, 맵고 매운 밀양고추, 사과 2알, 양파2알, 찹쌀가루 400g, 23년 햇 고춧가루 700g, 마늘, 생강, 그리고 냉장고 속에 자리를 차지하던 오래된 젓갈들도 모두 아낌없이 넣었다. 무겁디 무거운 배추와 무를 어떻게 집으로 가져올 지 고민을 했는데, 마트에서 일정 금액 이상을 구매하면 집 앞까지 배송을 해준다. 아주아주 편리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소소하게 2포기만 사려다가, 배송 시키는 김에 2포기 더 해서 총 4포기를 시켰다. 그러고 나서 조금 있으니 4포기로 1년 나기에는 모자란 것 같아서 2포기 더 추가했다. 우리집에는 김치를 만들 수 있을 만한 큰 대야는 없어서 이불용 큰 비닐을 사용했다. 큰 비닐을 싱크볼에 넣고 그 안에서 소금과 물을 뿌려 배추를 8시간동안 절였다. 그릇으로 배추를 눌러놓았지만, 배추의 가운데 부분은 잘 절여지지 않아서 빳빳했다.
무랑 당근도 채를 쳐서 소금에 2시간동안 절였다. 잘 절여진 채소들은 깨끗이 헹궈서 소쿠리에 받쳐 물기를 뺀다. 사과는 처음 넣어보았는데, 선물로 들어온 사과가 꽤나 많았던 덕분에 가능했다. 김치에 사과라니 정말 사치스러운 생각같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사과는 김치에 천연감미료 역할을 잘 한다고 한다. 고추는 그 악명 높은 밀양 고추이다. 여름에 구매했을 당시에는 엄청난 매운 위력을 뽐냈다. 이제 냉동실에서 오래 묵었으니 좀 매운맛이 줄었길 바라며 김치재료로 추가해본다. 사과, 양파, 고추는 곱게 갈아서 소쿠리에 받쳐 물기를 뺐다. 시원하게 갈린 내용물의 향을 맡아보니, 매운 내와 상큼한 내음이 뒤섞여 오묘한 향을 낸다.
찹쌀가루는 물에 잘 풀어도 자꾸 뭉쳤다. 그래서 찹쌀가루에 물을 섞은 것을 믹서기에 곱게 갈아서 전기밥솥에 넣었다. 뚜껑을 열고 취사 버튼을 눌렀다. 오며 가며 간간히 실리콘 주걱으로 저어주었다. 전기밥솥이라 바닥이 눋지 않은 찹쌀풀을 만들 수 있었다. 전기밥솥의 취소 버튼을 누르고 찹쌀풀이 식도록 두었다. 마늘은 꼭지를 따고 분쇄기로 갈았다. 생강은 껍질이 있어서 물에 담근 후, 숟가락으로 살살 벗겨 깠다. 생강도 분쇄기에 갈았다.
시댁에서 챙겨준 수제 액젓은 너무나 강력한 맛이라, 사용량이 적어 오래 묵었다. 이번 기회에 김치로 환생을 시켜준다. 새우젓도 우리집에서 2여년의 깊은 역사를 자랑한다. 주 용도는 애호박나물 간맞추기 정도라서 이번 기회에 김치로 다시 탄생을 시키고, 냉장고 공간을 확보한다. 이렇게 어렵게 마련한 재료들을 식은 찹쌀풀에 넣고 우리집에서 2번째로 큰 냄비에서 고루고루 섞었다.
절여진 배추에 소를 버무려서 맛을 보았다. 생각보다 조금 싱거워서, 소에 소금을 추가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김치니까 소금을 좀 많이 넣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1kg 정도 추가했다. 맛을 보니 아주아주 짠 소태였다. 김치를 먹고 심혈관이 삼투압으로 솟구쳐 오른다는 느낌 같은 건 살면서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소금김치를 먹고나니 웬지 목이 마르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혈관이 꿈틀거리는 느낌이 났다. 이 김치를 계속 먹다간 신장 손상이 올 것만 같은 매우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남편은 내 김치에 대해서 매우 냉정하게 평가했다. -----'여보, 이건 버려야 할 것 같다.'
오, 그 한 마디는 나의 요리 자존심에 굉장히 강한 스크래치를 냈다. 오, 내가 육아를 하는 틈틈이 마련했던 그 수많은 공정과 재료들을 어떻게 이렇게 쉽게 버리라고 하는거지? 자기가 안 만들어봤기 때문에 이렇게 쉽게 말하는 건가? 저 김치는 이렇게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건가. 왜? 어떻게? 나는 그의 말 한 마디에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계속해서 슬퍼할 내가 아니다. 정보의 바다 너튜브에서 '김장김치 짤...'까지 입력했는데, 알아서 자동으로 '김장김치 짤때'라는 키워드가 검색되었다. 나와 같이 김치실패자가 많구나 하는 마음에 괜한 안도감까지 들었다. 실패자가 많으니 해결책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집단 지성의 힘을 믿어보자.
대다수의 영상들은 짠 김치 살리기의 주된 영웅으로 무를 꼽았다. 무를 석박지처럼 큼직하게 썰어서 김장김치 중간중간에 섞어주면 된다고 했다. 이 때 무는 절이면 안 되고, 생 무우로 해야 한다. 나는 배추로 같이 사서 섞었다. 배추 3포기, 무우 4개를 더 추가했다. 김치와 힘든 사투를 펼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남편이 야채 다듬는 걸 도와주었다.
김장김치와 골고루 섞어주기 위해서 김장김치도 네모낳게 잘랐다. 원래는 포기모양으로 예쁘게 담았었다. 어차피 이렇게 자를 거였는데, 다 부질없는 행동이었구나. 통에서 건져낸 포기 김치를 빨래하듯이 비틀어 짜니 김치국물이 흥건히 나왔다. 고춧가루가 참 비쌌다. 고작 350g 정도인데 12,900원이나 했다. 김치와 함께 올 한해 보내지 못하고 이렇게 하찮게도 김치국물이 되어 버려질 생각을 하니 정말 아까웠다. 이렇게 국물이 많다는 건 미처 절여지지 못한 배추 속부위가 양념 속의 소금으로 절여졌다는 의미이다.
물기를 짜낸 김장김치와 생배추, 생무우를 고루고루 섞었다. 우리집에는 큰 대야는 없으므로 빨래바구니에 김장비닐을 끼우고 집게핀으로 고정시켰다. 그리고 그 안에서 김치를 버무렸다. 양이 상당해서 마치 김치담그기 봉사활동을 온 듯했다. 기존보다 추가되는 양이 많아서 냉장고에 다 들어갈 지 걱정했지만, 모두 무사히 넣었다. 모양을 나박나박하게 해서 김치통에 고루고루 담으니, 포기김치일 때보다 공간효율이 더 좋았다. 다음 날이 되어서 냉장고 속의 김치를 본 남편은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 맛도 좋고, 국물도 많아서 마음에 쏙 든단다. 이런 스타일의 김치가 충남스타일이라고 했다. 남편이 좋아하니까, 앞으로도 김치를 담글 때는 배추를 일부러 덜 절여서 김치에서 국물이 많이 나오게 만들어야 겠다. 내 고향인 경상도에서는 김치를 완전히 절여서 물기가 잘 안 나오게 담근다.
여러 좌충우돌이 있었지만, 무사히 올해 김장을 마련하여 정말 기쁘다. 처음에 마음으로는 2포기로 시작했던 김장이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무려 9포기로 늘어났다. 김장도 새끼치기를 하는 것일까. 살림을 하면 할 수록 손이 커지는 기분이다. 그만큼 경험치도 늘어났으면 좋겠다. 너튜브 레시피 안 찾아보고 뚝딱뚝딱 요리할 수 있는 실력자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