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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무능하게 된 이유

건강한 독립과 자립

by 산토끼

아주 소중한 아기가 있다. 그 아기는 제 위에 있던 남자형제 다음으로 태어난 건강한 사내아이이다. 어머니는 이 아기를 낳아서 평범하게 길렀다. 이 아이가 4~5살 되던 무렵,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그의 손윗 형이 그만 불의의 사고로 일찍 하늘로 가버린 것이다. 큰 아들에 대한 기대가 컸던 어머니는 매우 큰 슬픔에 빠졌다. 목을 놓아 큰 아들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아무리 크게 불러도 이미 생사를 달리한 큰 아들은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 후로 어머니는 큰 아들에게 보내던 정성과 사랑을 그 다음 아들인 이 아이에게 쏟아부었다. 큰 아들의 몫에다가 본래 자신의 몫까지 더한 과한 정성과 사랑을 받은 작은 아들은 새로운 큰 아들이 되어 성인이 되었다.


그의 허리춤에는 큰 흉터가 있다. 나는 언젠가 그에게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어릴 적에 한방치료 중 하나로 뜸을 지지다가 난 것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 병치레가 심해서 그의 어머니는 겨울철이면 그를 이불로 꽁꽁싸서 아궁이에 불을 지펴 뜨끈뜨끈한 방에 넣어두었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한방 뜸까지 해둔 것이다. 그의 가정형편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꽤 고급처방이었다.


그는 그의 형제들 중에서 집의 지원을 받아 유일하게 고등교육까지 받은 대상자였다. 그의 우수한 학업성적에 비해 가정형편이 뒷받침 되지 않아, 만족할 수준의 학교로 진학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그는 지역의 최우수 명문고 출신이었는데, 그가 최종적으로 마친 고등교육기관의 졸업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바람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질풍노도 같던 20대를 보내고 난 후, 그의 심정을 헤아려볼 수 있었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의 괴리감은 정말 괴로운 것이다.


그 동안은 부모의 지극한 보살핌 속에서 현실은 모르고 공부만 한 사람이라면, 본인이 현실 속에 던져졌을 때 적지 않은 충격을 받는다. 아마 그의 경우가 그러했으리라 짐작한다.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그 습관은, 본인이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도 쉬이 변하지 않았다. 어딘가 꿈 속에서 사는 것 같았고, 아내가 현실을 숱하게 이야기를 해주어도 소 귀에 경 읽기였다. 한편으로는, 그가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어린 자식에게 주었다. 당신이 이만할 때는 부모님이 인생의 조언이나 방향을 제시해주시지는 않았다며 당신의 말을 잘 새겨들으라고 했다. 그러나 그 조언 역시, 지금 현실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생각하는 과거의 것 내지는 이상적인 어떠한 것을 생각하는 것이라 자식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당신이 자식에게 주고자 하는 사랑만은 크게 느껴졌다.


부모의 과도한 사랑과 집착으로 자식을 너무 감싸두면, 자식이 나중에 자라서 조금 많이 현실성이 떨어지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다.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자식은 부모를 극복하고 성장해야 하는 존재이다. 육아를 마치 애완동물 키우듯이 하다보면, 자식은 점점 멍청해진다. 부모가 없다면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건강한 독립과 자립'이라는 간결한 문구 뒤에는 숱한 갈등과 성취감이 있다.


그의 어머니의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그는 어머니와 단절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제라도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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