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드는 칼도 안 쓰면 녹이 슨다
녹슬은 칼은 마치 나의 오래된 글솜씨와 같았다. 아주 오래된 집의 창고 속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인 길쭉한 상자가 있다. 그 속에는 예전에 아주 예리해서 닿는 것은 무엇이든 잘라내는 길고 얇은 형태의 장검이 들어있다. 검은 손잡이에서 유래한 그 칼의 표면은 늘 제 주인의 손에 닦였으므로, 언제나 거울처럼 물건이 잘 비쳐보였다. 주인은 그 칼을 퍽 아끼는 편이라 언제든 곁에 두었고, 때로는 사용하기도 했으며, 쉴 때는 닦기를 버릇처럼 하였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그 칼은 제 능력을 잘 뽐내며 지내왔다.
그러다가 주인은 아이를 얻게 되었고, 그 아이를 키우느라 예전보다 칼을 가까이 할 시간이 적어졌다. 하지만 언젠가고 다시끔 칼을 꺼내어보겠다는 생각은 마음 속 한켠에 늘 자리하고 있었다. 아이가 뒤집기를 하면 좀 나아지겠지, 일어서면 좀 나아지겠지, 걸으면 좀 나아지겠지, 말을 하면 좀 더 나아지겠지. 하루 하루 커가는 아이의 성장은 주인의 큰 기쁨이었다. 한편으로는 개인적인 시간은 줄어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육아에는 후회란 없다.
그러다 문득 오랜만에 너무 간절히 보고 싶어서 칼이 들어 있는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동안 잘 있었는지, 그간 무탈했는지, 등 비록 사물이지만 오랫 나의 벗에게 묻고 싶은 말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주인의 바람과는 달리 칼은 예전의 빛나던 광택은 뿌옇게 흐려졌으며, 군데 군데 세월의 흐름에 따른 녹 비슷한 것이 슬어있었다.
아!
다시금 닦아보면 좀 나아지려나, 새롭게 제련의 과정을 거치면 예전의 칼이 아닌 것이 될까봐 겁이 났다. 그럼에도 우선은 상자에서 꺼내어 슥슥 문질러 닦는 것만을 반복하고 있다. 한동안 찾아가지 않은 길에는 풀이 나서 길을 가리듯이, 주인에게 있어서는 칼이 그러했다. 새롭게 시작한 삶이 있기에 예전만큼 시간을 함께 하기는 어렵겠지만,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어 돌보아보기로 한다.
갑자기 녹슬어 버린 칼을 다시 찾아보게 된 건, 더 늦어지기 전에 기록을 해두기 위해서다. 어떤 일들은 세상 많은 이들이 적어두는 탓에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되지만, 일부의 일들은 오로지 나만이 아는 것이라 내가 아니라면 아무도 알 수 없는 기록들도 있다. 나는 그 은밀한 작업들을 아주 내버려두지는 않기로 했다. 어떻게 적어서 내 글을 읽는 이들이 비난을 하거나 하면 어쩌나의 두려움으로 글을 쓰지 않는다면, 사라지는 기억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하기가 어렵다. 대신에 가능한 담담하게, 들뜬 흥분의 감정은 흙탕물에서 흙을 가라앉히듯이 시간을 둔 뒤에 적어보려 노력해야겠다.
<나의 규칙>
1. 최소 A4 한 페이지는 채워보자.
2. 매일 쓰자.
나름대로의 궁여지책으로 규칙도 만들어보았다. 너무 복잡한 규칙을 만들면 지키기 어려울 것 같아서, 잘 굴러가지 않는 머리를 나름대로 굴려서 만들었다. 규칙은 지키는 것이 미덕이라는데, 만들기에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 잘 실천해 나갈 수 있도록 행동을 하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