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로 살아온 30여년의 소회
1. 유튜브 알고리즘이 노래 한곡을 찾아냈다. SG워너비의 김진호가 부른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라는 노래. 어릴때는 특유의 소몰이 창법이 싫어서 즐겨듣지 않던 가순데, 내가 변한만큼 그의 창법도 많이 달라져있었다. 뭔가 어릴때 듣던것보다 힘을 많이 빼고 부드러워진 목소리.
"초록빛 머금은 새싹이었지, 붉은빛 머금은 꽃송이었지,
나를 찾는 벌과 사랑을 했지, 그 추억 그리워 꽃밭에 있지."
노래듣고 감동 잘 안하는편인데, 김진호의 어머니가 나와 부른 이 소절이 참 마음에 와닿았다. 감정적인건 사치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이 노래를 몇번씩 반복해 들으며 지난날들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2. 난 참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외적인것도 그렇지만, 성격적인 부분들이 특히 그렇다. 10살때 즈음이었을까, 지방으로 여행을 가던 중 어머니는 대뜸 나에게 미션을 하나 던져줬다. 휴게소에서 점심시간을 가지는 중학생 형들에게 김밥을 하나 얻어먹고 오란다. 요즘같으면 상상 못할 미션이지만, 난 삐죽거리며 김밥 하나를 얻어먹고 오는데 성공했다.
사실 지금도 미션의 의도는 이해하지 못하고있고, 당사자인 어머니 역시 당신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나한텐 어머니를 놀리는 단골 소재 중 하나였는데, 웃긴건 돌이켜보니 나도 비슷한 행동을 주변에 하고 있었다. 미국 여행 중 영어에 유독 자신없는 형에게 괜시리 영어를 쓰고 오라고 몇번씩 미션을 주고있었다. 괜히 스스로 우리 모자를 변호해보자면, 어머니나 나나 상대방에게 "능글맞음"을 알려주고자 한게 아닐까 싶다.
3. 그런데 언제부터일까. 닮은게 많은만큼 이야기하는것도, 공유하는것도 많던 모자 관계였는데, 어느순간 내가 스스로를 닫아버리기 시작했다. 약해보이는게, 아니 스스로 약하게 느껴지는게 너무나도 싫었다. 혼자 오래 생활해서일까, 나는 스스로가 무너지는걸 견딜 수 없었다. 시험기간 밤을 샐때 온 어머니의 안부문자 하나가 왠지 모르게 마음을 몽글하게 만들면, 그건 잘못된거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여기서 무너지고 울기 시작하면, 그냥 한 없이 파고 들어갈 것 같았다.
그렇게 군대를 가고, 취업을 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살갑지 못한 성격을 고대로 옮겨받다보니, 대화도 그만큼 줄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난 또 다시 집을 나와 자취를 시작했다.
여행을 가는게, 옷 한벌 사는게 어색해진 사람
바삐지내는게, 걱정을 하는게 당연해진 사람
4. 30대, 아니 최근 1~2년 사이에 마음이 많이 너그러워졌다. 그러다보니 한달에 한번꼴로 어머니를 만나 맛있는걸 사드리고 집에 돌아오곤 한다. 그러다 문득 어머니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봤다. 이따금 교회 권사님들과 간 꽃놀이 사진을 해두시곤 하더니만, 요즘은 한동안 카카오 기본프로필 사진이다. 옷 사는것도, 좋아하시는 카라 꽃 하나 사는것도 사치라고 생각하시는 분이니, 프로필 사진 없는것도 영 이해가 안가진 않는다.
마음을 다잡고 채찍질하며 살아갈 수 있는 성격을 물려받은걸 난 좋게 생각한다. 그 덕에 나는 학교도 잘 졸업하고, 취업도 했으며, 지금 브런치에 글도 쓸 수 있으니까. 근데 참 아이러니한건, 나와 똑같은 성격의 어머니를 보면 마음이 좋지 않다. 다음번 만날땐, 우리 어머니도 좋아하는 카라꽃 한다발과 프로필 사진 찍으실 수 있도록 해보아야겠다. 물론 손사레를 치시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