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후회와 상상의 경계
유치원의 영감님
어린 시절, 유치원에서 내 별명은 영감이었다. 잘 울지도 않고, 항상 양반다리하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선생님들이 영감이라고 했단다. 1박2일짜리 캠프를 가서, 엄마가 보고싶다며 울고있는 친구들에겐 "운다고 엄마안온다"며 주제넘는(?) 훈수를 두기도 했다. 잘 기억나는 시절은 아니지만, 이런걸 보면 난 어릴때부터 무언갈 참고 견뎌내는데 최적화된 인간이었던것 같다.
유치원 다닐땐 나름의 슬픔을 삼키고 견뎌내던 영감님은, 성장하며 각종 다양한 고민들을 삼키고 견디는쪽으로 진화해갔다. 난 좀처럼 내 고민을 털어놓는 편이 아니었고, 이건 친구들 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내가 머나먼 타국땅에서 혼자 생활을 했으니, 삼키고 견뎌내는 병은 심해질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잘하고 성공해야한다"라는 마인드가 커질수록, 내 어려움과 고민을 털어놓는데 인색해지기 시작했다.
Clearance만 찾아다니는 하이에나
그러다보니 스스로 엄청나게 제약을 걸었다. 가지고 싶은건 적어도 세번씩 고민하고 사고, 치약 하나를 살때도 가격을 비교하며 샀다. 그러다보니, 생활비가 부족할 땐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기보단 스스로 해결할 방법을 찾아다녔다. 마트에서 떨이로 판매하는 1불짜리 모닝빵과 요거트로 끼니를 떼우며 부족함을 메꿨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엔, 졸업여행 자금을 벌기위해 매일 학교에서 일을했다. 한푼 두푼이 모여서 졸업여행을 싸게 갈 수 있었을땐 무언가를 이뤄낸것처럼 뿌듯했다. 막상 졸업 여행지에 가선 돈이 부족해서, 메인메뉴 대신 에피타이저만 먹고 다닌건 함정이지만. 궁상맞지만, 그냥 게임하듯 하루하루 미션을 달성해나가며 성장해나가는데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꼈던것 같다.
꿈, 그리고 현실
고등학교 졸업즈음, 나는 그토록 원하던 대학 합격 통지편지를 받았다. 나름 노력을 인정받아, 작지만 장학금도 받아냈다. 치열하게 혼자 고민하며 노력했던 결과가 나온듯해서 정말 기뻤다. 한국으로치면 수시 합격이어서, 학교도 놀러가듯 다니며 행복해했다. 꿈과 현실이 잠시 마주한 순간의 장밋빛같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내 현실과 마주했다. 장학금이 있다한들, 미국 사립학교의 학비는 여전히 높았고 기숙사나 생활비 역시 몇배는 들듯 했다. 붕 떠있던 19살의 나는 이내 깊은 고민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매일 한푼두푼 아끼고 모으며 생활해서인진 모르겠지만, 우리 집에서 4년간 이 금액을 서포트하다간 큰일날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민하는 한달동안 6키로정도가 빠졌던것 같다. 그리고 나는, 꿈을 떠나보내기로 결정했다.
그 후 나는 주립대학에 좋은 조건으로 입학했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후 부모님께 지난 고민들을 말씀드렸다. 영감님처럼 굴던 유치원생이, 커서도 혼자 고민하다가 큰 결정을 내렸다는것을 기특해하시면서도 마음아파하셨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의 고마우면서 미안한 마음을 종종 이야기하신다.
오히려 나는 큰 결정을 혼자 매듭짓고 난 후, 고민을 주변과 공유하며 풀어나가기 시작했던것 같다. 대학은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겠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와 공유하고 상담했다면 훨씬 덜 고통스러웠을것이란걸 배웠다. 어린 영감님은 그렇게 조금씩 나이에 맞는 성장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