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살, Life is C between B and D

어제의 나, 내일의 나도, 결국은 나다

by wordsbyme

1. 왜 그랬는진 아직도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입학 전 난 책상 밑에 들어가서 책을 읽는걸 좋아했다. 전생에 고양이었던걸까, 그냥 내 몸보다 살짝 큰 공간에서 한참 좋아하던 삼국지나 위인전을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곤 했다. 지금이야 6평짜리 오피스텔도 좁다고 느끼는데, 그땐 그냥 나만의 공간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던것 같다.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는 책상 밑 조그마한 공간에서, 나는 몇시간이고 책을 읽으며 행복해했다.


하지만 언제고 좁고 아늑한 공간에 머무를 순 없었다. 책상 밖 세상에는 너무나도 신기하고 재밌는 일들이 많았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사람들과 어울리는것도 나쁘지 않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도 즐거웠다. 한참을 웅크려서 책 너머 세상 보기를 즐거워했던 나는, 그렇게 더 넓은 세상을 향한 꿈을 키웠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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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책상 밖으로 나와 나는 텔레비젼과 친구가 되었다. 텔레비젼 속에서 나는 책 한권을 다 읽어야 알 수 있을법한 내용을 훨씬 짧은 시간에 알 수 있었다. 학교에 다녀오면 하루종일 텔레비젼 앞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푸른 잔디밭에 앉아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공부하는 미국 대학생들을 보았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막연하게 미국, 아니 외국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던것 같다. 한국에서 잘해도 좋지만, 뭔가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성장하고싶다는 마음. 어찌보면 이때 나는 인생의 첫번째 꿈을 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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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질풍노도의 10대가 되고나선 이 첫번째 꿈이 그럴듯하게 변했다. 막연하게 미국에 가고싶다가 아닌, 국제시민이 되고싶다라는 사춘기스러운 단어로 포장되었다. 그러다가 갑작스레, 미국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 했던가, 나는 미래를 바꿀만한 선택을 아무 망설임 없이 해버렸다. 그렇게 나는 홀로 미국땅에 도착했다.


생각해보면 신기했다. 책상 밑에서 책 읽기를 좋아하던 어린이가, 가족 하나 없이 미국 땅에서 공부를 한다니. 꿈같고 신기한 일이었지만, 이때부터 본격적인 내 자아가 형성되었던것 같다. 물건 하나 사는것부터, 학교 스케쥴 관리까지 모두 혼자해야하니 걱정도 고민도 많아졌다. 영화 어벤져스의 닥터스트레인지처럼, 나는 수만가지의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고민하고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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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랍스터는 노화를 일으키는 세포가 없어, 이론적으론 영생이 가능한 생명체라고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랍스터들은 인간의 식욕, 그리고 갑각류의 특성인 "탈피" 때문에 사망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하고 무거워지는 껍질을 벗겨내다가 지쳐서 그대로 죽는 것이다.


어찌보면 10대, 그리고 20대의 내가 그랬던것 같다. 다행히 랍스터와 달리 나는 탈피가 생존을 위한 본능이 아닌 내 선택이었지만, 혼자 성장하기 위해 끙끙대며 고민하고 발버둥친 긴 시간이었다. 실수도 많았고, 후회할만한 행동들도 많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이 선택 덕에 나는 내 모든걸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탈피를 마친 랍스터처럼, 나는 어제보다 단단하다. 그렇기에 불확실한 내일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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