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의 약속, 그리고 지금의 우리
20년 넘게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있다. 1년에 한번, 아니 2년에 한번 볼까말까하고, 만나면 서로의 안부보단 부모님 건강을 먼저 묻곤 대화도 별로 없지만 누구보다 편하게 지내는 친구다. 서로 선택한 길도 완전 달라서, 이 친구는 체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강원도에서 나라를 지키고 있다. 성격도, 직업도 다르고 말도 별로 안하지만, 왠지 모르게 20년 넘는 시간동안 우리는 한번 싸우지도 않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친구와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만났다. 생각해보면 이때부터 성향이 달랐다. 친구는 특출난 축구실력 덕에 밖에서 뛰어노는 시간이 많았고, 나는 책읽는걸 좋아해 교실에 있는걸 좋아했다. 근데 학교만 끝나면 우린 찰싹 붙어서 컴퓨터 게임을 하고, 시덥잖은 만화책을 보며 서로 낄낄대며 놀곤 했다.
서로 아파트 단지가 제법 거리가 있었는데도, 우린 주말만 되면 서로 집을 오가며 신나게 놀곤했다. 책 읽기에 심취해있던 나였지만, 이상하게 이 친구만 만나면 밖에서 뛰어노는것도 즐거웠다. 돌이켜보면 커서 취미가 등산과 러닝이 된것도, 친구와 어린시절 뛰논 경험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같이 초등학교를 다니던 4년간, 우리가 같은 반이었던건 1학년때 단 한번이었다. 보통 이 나이땐 반이 바뀔때마다 가장 친한 친구도 바뀌곤 하는데, 우린 한결같이 서로를 제일 친한 친구로 꼽곤 했다. 머리가 커지며 4~5명씩 어울려 다닐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어린 나이에도 뭔가 통하고 공감하는게 많았던걸까.
그러다 내가 전학을 가게 되었다. 아파트 단지 거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어른이 된 지금도 가려면 막막한 거리로 떠나게 된것이다. 과자와 피자를 잔뜩 시켜서, 친한 친구 무리를 불러 이별파티를 할때 친구녀석이 내게 말했다. "나는 계속 이 아파트 살거니까, 너 놀러오고 싶으면 언제든 와!"
가장 친한 친구와의 이별이었지만, 왠지 우리는 울고불고 하진 않았다. 친구가 한 말처럼, 나는 막연하게 그 친구가 계속 그 자리에 있을것이라고 믿었고, 친구도 내가 아파트 단지 넘나들듯 자주 놀러올 것이라고 생각했던것 같다. 물론 나는 몇년 후 유학을 떠났고, 친구네 집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거리가 멀어져서 더 애틋해진건지, 방학만 되면 우리는 지하철로 1시간이 넘는 거리를 왔다갔다하면서 놀곤 했다. 사춘기가 오고, 철이 들면서 횟수는 줄어들었고, 워낙 살갑지 못한 성격탓에 전화나 문자도 딱히 안했지만 만나면 그렇게 시간 가는줄 모르고 컴퓨터 게임을 하고 축구를 하며 놀았던것 같다.
어찌보면 친구가 계속 살고 있을것이란 아파트는, 서로에 대한 우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낯간지러운 생각을 잠시 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이었지만, 어찌보면 지금도 믿을만한 듬직한 친구가 있다는 사실은 괜시리 추운 겨울 마음 속 한켠을 든든하게 해주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