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사고싶었던 중학생 세명의 좌충우돌 동대문 경험기
작년 이맘때즈음, 유튜브 피식대학에서 동대문에서 옷장사하는 형들의 컨텐츠를 만든적이 있다. 이름하여 "05학번 is back". 친절해보이지만 불친절하고, 동네형같지만 조금은 무섭던 그들의 모습을 잘 담아낸 컨텐츠라 수많은 동시대의 사람의 공감을 얻었다. 나 역시 05학번은 아니지만, 그 당시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동대문을 탐방했던 기억이 있기에 몇번이고 돌려보며 추억에 웃었다.
2004년 즈음, 나와 친구 두명은 새학기 첫 소풍을 가기위해 머리를 맞댔다. 당시 경기도에 살고있던 우리는, 큰 맘을 먹고 서울 동대문을 가보기로 결정했다. 친구 한명이 사촌형을 따라 가본적이 있다고했기에, 우린 조금 무서웠지만 아침 9시에 모여 장장 한시간의 먼 길을 떠났다.
기껏해야 지하철역 근처에서 피씨방을 가고, 분식집을 가던게 전부였던 우리에게 서울 한복판은 신세계였다. 나름 수도권에 살고있었지만, 우리는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패션의 성지였던 동대문 두타에 들어섰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옷가게가 시야에 들어오며, 좌충우돌 동대문 탐방기가 시작되었다.
시작은 평탄했다. 한번 와본 친구는 자연스럽게 우리를 남자 옷이 있는 층으로 안내했다. 에스컬레이터가 도착한 층에 도달할때 즈음, 친구는 당부의 말을 한마디 건넸다. "절대 형들이랑 눈 마주치지마"
화려한 색의 옷과 잠시 구경만 하고 가라는 형들의 목소리를 뒤로 한채, 우리는 앞만보고 쭉 걸었다. 옷 구경도 못할거면 왜 동대문까지 온건지 순간 헷갈렸지만, 서울은 무서우니 친구만 믿고 쭉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영혼까지 끌어모은 현금을 탈탈 털린 옷 가게에 도착했다.
"어 동생들, 뭐 찾아? 편하게 말만해!" 다른 가게와 달리 하얀 얼굴의 서글서글해 보이는 주인 형의 말에, 난 왠지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형은 우리의 체형을 분석하며 유행하는 옷들을 하나하나 선보였다. 한참을 새로운 패션의 세계를 탐닉하고 있을 무렵, 형은 문득 우리에게 물었다. "우리 동생들 얼마까지 생각하고 왔어?"
형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진 우리는 너무나도 순순히 지갑 사정을 고백했다. 재정상황을 들은 형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조급하게 움직이며 옷을 조합하기 시작했다. "이건 5만원인데, 친동생같으니까 3만원, 이건 8만원인데, 에라 모르겠다, 5만원만 줘"하면서 말이다.
당시에도 매우 신중한 편이었던 나는 친구들이 계산하고 옷을 받았을때도 고민하고 있었다. 다른 이유보단, 형이 추천해준 바지의 허리춤이 너무 컸다. 고민을 솔직하게 말하자, 형은 "요즘은 다 골반에 걸쳐 입는다"라며 나를 설득했다. 5분 뒤, 내 손에도 커다란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정작 일주일 뒤 소풍때 우리는 산 옷을 엄청 후회했다. 나는 내려가는 바지춤을 잡기 바빴고, 친구는 너무 화려한 티셔츠 색상에 부끄러워했다. 용돈을 긁어모아 형에게 헌납했단 사실이 분하기도했고, 순순하게 꼬임에 넘어간게 부끄럽기도 했던것 같다. 그렇게 우리의 좌충우돌 동대문 탐방기는 추억 너머로 묻혔다.
요즘의 동대문은 그때보단 많이 조용해진것 같다. 내가 나이를 먹어서인지, 가게를 지키는 형들은 왠지 동년배처럼 보이고 나를 상대로 호객행위를 하지도 않는다. 안좋은(?) 추억이 있는 동대문이지만, 지금은 왠지 모르게 그때의 생기넘치는 삥뜯김이 가득하던 동대문이 조금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