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취 요리 연대기

내 자취생활을 책임져준 그대들에게

by wordsbyme

올해로 자취를 한 지 10년을 채웠다. 다른 것도 많겠지만, 자취생들에게 가장 크리티컬 한 고민은 아마 삼시 세 끼를 어떻게 채울지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우수리 다 떼고 하루 두 끼, 일 년 365일만 계산해도 700끼가 넘는다. 자취를 시작하고 한동안은 어머니 간섭에 못 시켜먹었던 음식들을 맘껏 배달시켜 먹겠지만, 그것도 얼마 못 간다. 배달비까지 한 끼 만원 넘는 돈을 쓰다 보면 어느새 통장잔고라는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특히 나처럼 입이 짧고 혼밥에 큰 취미가 없는(?) 별종들에게는, 1.5인분 정도 되는 배달음식의 메리트는 더더욱 없게 느껴진다.


한참을 자취생의 식생활에 대해 고민하다가, 내 나름의 요리사를 한번 풀어보기로 결정했다.


Chapter 1. 이탈리아에서 온 그녀

미국에서 자취를 처음 시작했을 땐 파스타를 정말 삼시세끼 해 먹었다. 저렴한 베이컨, 계란으로 뭘 해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파스타 면을 사서 이래저래 볶아먹다 보니 이만한 게 없었다. 그때부터 줄기차게 이 조합, 저 조합으로 파스타를 만들어댔다.


그렇게 한 4-5년 동안 내 주식은 파스타였다. 처음엔 토마토, 크림소스를 사서 먹다가, 어느 순간 까르보나라를 만들고 토마토소스를 직접 만들기까지 했다. 그리고 자취생 파스타 요리 사계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한 어느 날, 난 파스타와 이별했다.

Chapter 2. 한국과 일본 혼혈

그리고 난 한참을 방황했다. 친구들이 많이 먹는 콘프레이크나 맥 앤 치즈에 정을 붙여보려 했지만, 파스타와 보낸 시간이 길어서일까, 쉽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한인마트에서 미니 밥솥을 만났다. 그리고 운명처럼, 난 간장계란밥과 재회했다. 한국 어머니들의 작품인지, 일본의 버터 간장계란밥에서 온건진 모르지만 그냥 운명 같았다.


어릴 때부터 익숙한 메뉴였는데, 파스타만 주야장천 먹다 먹어서 그런지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다양하게 새로운 조합들로 계란밥을 만들어먹었던 것 같다.

Chapter 3. 인도에서 온 신비로운 그녀

그리고 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동안은 본가에서 출퇴근했고, 그러다 보니 굳이 스스로 요리할 이유가 사라졌다. 어느새 계란밥도, 파스타도 과거의 추억이 되었다.


그러다 다시 자취를 시작하고, 나는 장을 보러 갔다 만난 카레가루에 홀렸다. 10분 내외로 간단히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이국적인 마법의 가루, 조금만 더 노력해서 감자와 당근만 넣어도 두배는 더 푸짐해지는 요리. 나는 금세 카레에 빠졌다.

나는 여전히 카레에 빠져있다. 근 2년은 꾸준히 만들어 먹고 있는데, 재료 조합에 따라 새로운 마법의 가루가 썩 맘에 든다.


배달 음식에 지친, 그리고 다가오는 새해 뭔가 새로운 다짐을 해보고 싶은 자취생들이 있다면 나는 카레 해 먹기를 추천해보고 싶다.


무언가를 직접 해먹다보면 생각보다 일상이 꽉꽉 들어차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요리를 여러가지 버젼으로 해먹다보면 내가 고든램지가 된듯한 느낌이 들기도하고. 새해니까 한번 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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