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가 아닌 투자를 하는 사람이 늘어나길, 그리고 나 역시도 그러하길
주식을 처음 시작한건 2010년 말 즈음 이었다. 당시 해외에서 있던지라, 새벽에 졸린 눈을 부벼가며 시장이 열면 주식을 사고 팔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엔 그래도 나름의 가치투자를 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뚝심있게 스스로 판단할때 저평가 되었다고 생각한 주식들만 매수했었다.
알뜰살뜰이 모은 용돈으로 만원 이만원 수익이 나면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빨간 +xx%가 잔고에 뜨면, 괜시리 금방 부자가 될 수 있을것 같다는 상상도 했다. 하지만 이 글을 읽을 모든 사람이 알다시피, 시장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플러스가 있으면 마이너스가 있고, 이쯤되면 바닥이 아닐까 하면 더 나락으로 가는게 주식 시장이다.
서론이 길었는데, 내가 주식에 한참 열을 올리던 시절엔 대선 테마주가 정말 뜨거웠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양 극단의 지지자들의 갈등은 극에 달했던것 같다. 뭐 정치적인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성향 자체가 완전히 반대인 두 후보인지라 테마주도 더욱 뜨거웠던것 같다.
아까 말했듯, 나는 가치투자를 하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던 대학생이었다. 그런데 몇날 몇일 당시 상한가 기준치였던 15%를 우습게 뚫는 대선 테마주를 보니, 사람으로서 욕심이 나긴했다. 결국 나는 열심히 모았던 얼마간의 수익금을 대선테마주에 올인했다.
1. 초심자의 행운
모든 투자, 그리고 도박이 그렇지만 "초심자의 행운"이란게 존재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베팅한 금액은 생각 이상으로 수익을 주는 경우가 많다는 말인데, 대선 테마주에 베팅한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밤 10시 즈음, 긴 고민 끝에 당시 나에겐 큰 돈이었던 몇십만원을 베팅했다. 왠걸, 지금 생각하면 매출 규모도, 사업 방향도 말도안되는 패션 회사 하나가 바로 상한가를 쳤다. 열심히 가치투자했던 몇개월의 수익과 거의 비슷한 정도의 수익이, 단 한번의 투자로 나온것이다. 난 말 그대로 "금융뽕"에 취했다.
2. 생각 없는 투자는 화를 부른다
재밌는건, 그 이후 4~5일간 나는 대선테마주로 꽤나 재미를 봤다. 물론 잠시간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땐 왜 이리 촉이 좋았는지 금방금방 손해를 메꾸고 수익을 냈다. 당시 나에겐 꽤 큰 돈이 계좌에 꽂히자, 정치고 나발이고 내가 들어간 주식 관련 후보가 최고라는 생각도 했다.
주식시장이 안열리는 주말은 너무 재미가 없었다. 얼른 월요일이 되고, 밤이 되어서 주식으로 재미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가득했다. 그리고 비극은 이런 가장 행복한 시간에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 당시 나는 크게 세가지 주식을 정해두고, 후보 관련 뉴스를 보며 투자 방향을 정했었다. 시차가 제법 유리하게 작용한 경우였는데, 한국으로 치면 새벽시간부터 나는 부지런히 그날 발간될 신문, 커뮤니티 정보를 보며 어느 곳으로 투자할지 정했다. 그리고 초심자의 행운덕에, 내 감은 대부분 맞아떨어졌었고.
근데 한주가 지나고 다음주부터는 이 모든 루틴이 먹히지 않기 시작했다. 당연히 오를거라 생각했던 A 후보의 주식이 하한가를 쳤고, 다음날도 도무지 오를 기미가 안보였다. 시뻘건 잔고창만 계속 봤던 주식 초보 대학생에겐 현실을 부정하게 되는 수치들이었다. 결국 난 일주일간 벌었던 수익을, 일주일만에 고스란히 반납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더 나락으로 가기전에 전부 손절했다는것. 그리고 이때의 경험을 통해 나는 "공부하고 투자하겠다"라는 신념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3. 게임스탑은 개미들의 승리였다
개인적으로 게임스탑의 떡상에 동참하지도 않았고, 이 주식이 여전히 화제가 되는건 다소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편이다. 하지만 게임스탑은 정치 테마주에 휘둘리는 국내 시장에서 반면교사로 삼을만한 사례라고 본다.
게임스탑은 인터넷 커뮤니티의 개미들이 공매도 세력에 대항한 사례이다. 흔들리는 주가에도, 강성 개미들이 한 마음이 되어 주식을 사모았고 결국 떡상으로 이어졌다. 물론 더 깊게 파고들면 할 이야기가 많겠지만, 시장을 흔드려는 속칭 "세력"에 대항한 개미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내가 투기에 가까운 투자를 했던 2012년, 그리고 최근의 흐름만 보아도 우리 주식시장은 정치 테마주에 매우 휘둘리고 있다. 웃긴건, 이런 테마주들은 정치인들의 정책이나 공약과 연관된게 아닌, "A후보의 대학교 동창이 하는 회사", "B후보의 친한 지인이 임원인 회사"라는 이유로 단숨에 상한가를 치곤 한다.
정책 관련해서 진영을 나누고, 편을 나눠가며 총성없는 전쟁을 펼치는 신문의 사회면과는 너무나도 다른 양상이다. 주식 시장에선 정책과 상관 없이, "그저 누가 대통령이 될것같으니 친한사람 회사에 투자하자"라는 식의 바카라, 빠칭코와 다를바 없는 투기가 성행한다.
주식에 조예가 깊은 분들은 한국 주식시장이 가장 어렵다고 말한다. 가치보단 루머, 아는사람의 추천, 심지어 오픈채팅방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투기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이용해서 돈을 버는게 나쁘다고만 할 순 없다. 하지만 최근 커뮤니티에서 모두가 열을 올리는, 정책적 이슈들에 있어 성숙한 가치관을 가지기위해선 이런 투자 성향부터 우리 모두가 바꿔나가는게 맞지 않을까 싶다.
이상 2012년 대선 테마주에 크게 데였던 개미의 넋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