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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dsbyme Mar 15. 2022

스토리로 뭉치는 국가,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푸틴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고전하는 이유

"Nations are ultimately built on stories"
(국가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Yuval Harari on The Guardians

국내에서도 "사피엔스(Sapiens)"라는 책으로 유명한 유발 하라리 교수는 영국의 신문사 "더 가디언스(The Guardians)"를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그는 "푸틴이 이미 전쟁에서 진 이유(Why Vladmir Putin already lost this war)"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으로 글을 시작했는데, 내용이 제법 흥미롭고 인사이트가 넘친다.


다른 유수의 경제학자, 정치학자와 달리, 하라리 교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 본질에 주목했다. 그는 "전쟁이 지속될수록,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다음 세대들에게 전달될 이야기들을 쌓아가고 있다"라는 코멘트로 우크라이나가 점점 강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하라리 교수의 코멘트를 보다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The Soviet Union)은 미국과 냉전시대를 이끌었던 초강대국이었다. 이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격히 국제사회에서 힘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공산주의 정권" 덕분이었다.


러시아에서는 아직도 제2차 세계대전을 "애국 전쟁(The Great Patriotic War)"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말도안되는 침공을 막아낸 레닌그라드 전투를 이끌어낸 공산주의와 독재정권을 기억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가 아직도 "블라드미르 푸틴"이라는 독재자의 공산주의 체제의 지속이 가능한 큰 이유 중에 하나다.


우리, 대한민국만 보더라도 일제시대 항일운동의 역사는 여전히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친일파 논쟁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한 숙제이지만, 우리는 항일운동을 펼친 열사와 의사들의 혼을 기억하며 하나로 뭉쳐있다. 프랑스 역시 마찬가지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대대적인 혁명을 했던 역사는, 프랑스인들의 뇌리에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의 김씨일가가 "백두혈통"을 앞세워 독재 체제를 만들어 갈 수 있는것도 스스로를 "일본의 침략에 맞선 장군님"으로 신격화하며 만들어온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쌓아온 공산주의 설화, 그리고 독재의 중심인 푸틴은 이런 국가 스토리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렇기에 그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러시아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반(反)푸틴, 반독재"시위와 비슷하게 여겼는지도 모른다. 하나 확실해 보이는건, 푸틴은 우크라이나 내부에 러시아군은 반길 세력이 존재한다고 확신했던것 같다.


푸틴이 이런 확신을 가지게 된 계기는 꽤 먼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유로마이단 혁명이 바로 그 시발점이라 볼 수 있는데, 이 혁명은 우크라이나 정부의 "친러 정책"을 반대하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유로마이단 혁명은 2014년의 크림위기, 돈바스 전쟁까지 전쟁에 대한 위기감을 고조시킨 사건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른 포스팅을 통해 정리해보겠지만, 이 "반 러시아 혁명"을 통해 푸틴은 우크라이나 내부에 러시아를 기다리는 세력이 있다는 계산을 했던것 같다.


푸틴은 이번 전쟁에 대해 이야기할때 "나치"라는 단어를 굉장히 자주 언급했다. 이는 사실 놀랍지 않은 단어 선택인데, 푸틴은 그간 자신에 맞서는 세력을 대부분 "미국의 개입, 스파이"와 같은 반대 진영의 탓으로 몰아세우며 진압했다. 그는 유로마이단 혁명을 기점으로, 아마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정권을 "나치"에 비유하며 비슷하게 진압할 수 있다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푸틴이 크게 착각한건, 우크라이나 국민 대부분은 젤렌스키가 아닌 푸틴을 "나치"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간과한 푸틴은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상당히 고전하고 있다. 마치 독일의 나치가 레닌그라드에서 겪었던 어려움처럼 말이다.


우크라이나는 매우 선전하고있지만, 전쟁 자체를 이기기엔 힘겨워보인다. 국제 사회가 간접적인 방법으로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지만, 매일같이 주요 도시에 떨어지는 미사일은 감당하기 힘든 아픔이다. 제 3자로서, 그리고 방구석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주제에 이런 말을 하긴 부끄럽지만, 앞서 설명한 이유로 결국 진정한 승자는 우크라이나가 될 것이라고, 그리고 그로 인해 무분별하고 명분 없는 전쟁은 사라질 수 있을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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