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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dsbyme Apr 07. 2022

세상은 넓고, 넓다 진짜 너무

어디까지 나가면 이 우물은 끝날까?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있다. 세상 넓은 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주로 쓰는 속담인데, 돌이켜보면 내 삶을 포괄하는 여섯 글자가 아닐까 싶다.


Stage 1. 모전자전, 영재병과 설렁설렁병


한때 각종 플랫폼을 휩쓸었던 "지디병(지드래곤 특유의 스웩을 따라하는 병)"처럼, 우리네 어머니들에겐 "영재병"이 돌곤 한다. "영재병"은 보통 아이가 한글을 막 깨우친 시점에 찾아오곤 하는데, 이 당시 어머니들은 "혹시 우리아이가 천재는 아니더라도 영재는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는데, 생각보다 한글을 빨리 떼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나를보며 "영재병 말기"에 걸리셨다고 한다. 그만큼 나는 책을 좋아하고, 또래보단 말을 조금은 잘했었다. 그 덕인지 중학교때까진 제법 상위권 성적에서 노는 아이였다.


영재병 말기에 걸린 어머니의 피가 있어서일까, 나 역시도 꽤 깊은 병에 걸려있었다. 일명 "설렁설렁 병"이었는데, 중학교 시절 나름 놀건 다 놀면서 볼만한(?) 성적을 낸 탓이 컸다. 그 당시 나는 맘만 먹으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확신에 빠져있었다. 그러다가 나름의 우여곡절을 겪은 후, 나는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Stage 2.아메리칸 드림, 우물 밖 개구리 순한맛


낯설었다. 나름 친구많고 사교성있게 잘 지내왔던 나인데, 너무나도 다른 외모의 친구들과 다른 언어 속에서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때부터, 나는 우물 밖으로 나가야한다는 절박함을 온 몸으로 체감하고 지금의 독한(?) 모습이 형성되기 시작한것 같다.


설렁설렁 병을 극심히 앓았던 병력이 있는지라, 학교에서는 "동양에서 온 수학천재" 코스프레를 나름 열심히 했다. 하지만 집에만 오면 영어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평생 관심도 없던 미국 드라마를 몇번씩 돌려보고, 따라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겨우 친구들과 말이 통하기 시작하니, 어릴때부터 축구, 농구, 악기와 친하게 지내온 친구들과의 갭이 느껴졌다. 그 갭을 메꾸기 위해, 밤만 되면 혼자 농구공을 던지고 달리기를 해댔다.


이런 노력 덕일까, 우물 밖에서 말라죽기 직전이었던 개구리는 많은 친구들과 함께 대학 진학에 성공했다. 또 다른 우물이 존재하는지도 모른채 말이다.


Stage 3. 세상은 넓고 똑똑한 사람은 많다.


전교생 300명 남짓한 고등학교에서 거둔 성공해 취했있던 나는, 제법 규모가 큰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진정한 전쟁과 같은 캠퍼스 라이프를 마주하게 되었다.


같은 고등학교에서 온 친구는 전무했고, 욕심 잔뜩부려 수강신청한 시간표에는 거의 매주 퀴즈와 시험이 반복되었다. 이래저래 경제적으로나, 학업적으로나 챙길게 많아지니 충분히 쟁취할 수 있을것 같던 욕심은 과욕이 되었고, 나는 타지 삶에 지쳐가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대학이란 우물을 벗어나고 나니,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마주해야할 병역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만 지나면 자동으로 상승하는 신분에 취해 잠시 망각하고 있었지만, 나는 전역과 함께 취업이라는 또 다른 거대한 우물을 마주해야 했다.


Stage 4. 난 여전히 우물 속 개구리지만, 그게 나쁘진 않다


어찌저찌 나는 번듯한 기업에 취업을 했다. 우여곡절도 많았고, 혼자 깡소주를 불며 "세상이 나한테 해준게 뭐야!"를 외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취준이라는 길고 긴 터널을 끝냈음에 즐거웠다.


돌이켜보면 첫 직장에서 난 나름 잘해왔던것 같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이뤄낸 성과들에 기뻐하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이런 결과에는 그간 내가 어떻게든 탈출해온 우물들의 덕이 컸다고 생각했다. 발버둥치며, 우물을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면 이런 평가는 없었을거라고 믿었으니까.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모든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나는 다시 "이직"이라는 점프를 통해 새로운 우물로 들어왔다. 나름 그간의 우물들을 거치며 성장한 개구리라 느꼈는데, 전혀 다른 분야에서의 나는 여전히 자그마한 개구리라는걸 느끼고 있다. 근데 예전과 달리, 그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


이제는 스스로 알고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 걸어들어온 더 큰 이 우물을 넘어선다면, 나는 더 넓고 푸른 잔디밭을 볼거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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