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유목생활을 꿈꾸는 2030
2017년 즈음, 베스트셀러로 불티나게 팔린 "사피엔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라는 책이 있었다. 이 책의 저자인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인류의 기원부터 미래까지 새로운 인문학적 관점을 제시한다. 하라리는 이 책을 통해 인류가 무리를 지어 생활하게 된 가장 큰 계기인 "농업혁명"을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사기극이라고 칭하는 대담함(?)을 보여주며, 단숨에 스타 학자로 발돋움 하기도 했다.
일부 학자들은 사피엔스에 나온 가설과 이론들이 새로울게 없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지만, 인류의 모든 문화가 융성할 수 있었던 원천이 농업혁명이라고 교육받아온 일반인들에겐 제법 새로운 충격이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유목생활을 하며 수렵, 채집으로 삶을 유지하던 인류가, 농업을 발견하고 정착 생활을 시작하며 현재의 문명사회가 탄생했다고 배워왔다. 맞는 말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 대비 우월할 수 있는 이유는, 혼자 있을때보다 여러명 있을 때 지능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정착 생활, 그리고 협동이 필요한 농업 활동을 통해 인류는 이러한 능력을 적극 활용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유발 하라리는 이런 생각을 사피엔스, 즉 인간이 빠진 "함정"이라고 칭한다. 농학이 발전하고, 노동력의 기계화되며 효율이 올라갔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식량기근이란 근본적인 문제와 마주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도 식량이 이렇게 큰 문제 중 하나라면, 농학이란 개념도 없고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었을 초창기 농업은 더더욱 심각했다.
수렵, 채집이 삶의 기반이었던 기간동안, 인류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했다. 먹을 것이 풍족한 기간에만 아기를 가졌고, 원활한 이동이 필수였기에 꼭 필요한 물건들만 남겼다. 문화, 문명은 싹트기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현대적인 관점으로 보면 자유롭고, 여유있는 "디지털 노마드'의 그것과 제법 비슷한 삶이기도 하다. 스마트 기기만으로 필요할때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처럼, 인류는 시간과 흐름에 따라 자신의 삶을 컨트롤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농업혁명, 즉 정착생활이 시작하고나선 상황이 완전이 변했다. 농업혁명을 통해, 인류는 보다 풍족한 식량과 여유시간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사람이 모일수록 필요한 식량의 총량은 늘어났고, 철저하게 보관하고 관리하여 다음 수확까지 버텨야했다. 만약 중간에 식량이 동날 경우, 옆 동네에서 습격해오는 경우도 서서히 발생하기 시작했다. 인류는 더 이상 동물을 사냥해서 먹지 않는 대신, 동물을 사육하여 노동력을 메꿔야 했다.
더 나아가 영양학적 문제도 발생했다. 수렵, 채집 시절에는 과일, 풀, 고기 등 다양한 잡식성(?) 생활이 가능했지만, 농업사회가 시작되며 가장 주된 에너지원은 곡물에서 발생하게 되었다.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탄단지(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밸런스가 깨진것이다. 이는 인류의 면역력을 약화시켰고, 전염병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발생시켰다.
다소 극단적이긴 하지만, 유발 하라리의 주장은 많은 사람들의 근본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강한자만 살아남던 수렵/채집 시절에서 농경사회로 넘어오며, 인간은 자발적으로 "수확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라는 고난을 만들어냈다. 또한 곡식이 무기로 변하며, 동물 사냥 대신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전쟁의 시대가 시작되기도 했다.
모든것이 이동을 위해 최소화되었던 수렵/채집시절과는 반대로, 정착생활이 시작되며 인류는 "사치품"이라는 개념에도 눈을 떴다. 집단 생활 속에서, 강한 자들이 스스로의 권력과 힘을 증명하기위해 "생존과 직접적 관련 없는 희귀한 물건"을 걸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다양한 세공기술과 문화 발전에 기여했지만, 어떤 관점에서 보면 쓸데없는 사치가 시작된 것이기도 하다.
최근 뉴스나 각종 컨텐츠들을 보다보면, 젊은층을 시작으로 다시금 수렵/채집시절의 삶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보이는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회사라는 집단에 속하지만,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며 시간과 공간에 구애를 받지 않기 시작했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던 "회사"라는 집단에서 보다 자유로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평생직장을 찾던 예전과 달리, 빠르게 자산을 확보하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은퇴한 뒤 행복을 찾으려는 "파이어족(Fire Movement)"도 늘어나고 있다. 회사라는 집단 생활에서 빠르게 벗어나(이른 은퇴), 하고싶은 일을 하며 최소한의 비용으로 살겠다는 "탈 사회" 움직임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유발 하라리가 말한 "농업혁명이 가져온 덫"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