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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용한가 -3

그냥 써보는, 직장인 이무용의 이야기

by wordsbyme

아침 일찍, 무용은 SL그룹 연수를 위해 집을 나섰다.
정장 차림에 어제 늦게까지 싸둔 캐리어를 끌고, 무용은 약간의 긴장과 설렘을 안고 버스가 잔뜩 서 있는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는 SL인터네셔널 소속 동기들을 포함해 SL전자, SL상사 등 다른 계열사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익숙한 얼굴들도 보였지만, 대부분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모두 같은 그룹의 신입사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무용은 왠지 모를 동질감과 소속감을 느꼈다.


경기도 한적한 지역에 위치한 그룹 연수원에 도착한 뒤, 무용과 동기들은 예상치 못한 시험을 보게 되었다.
그룹의 비전, 역사, 그리고 기본 윤리에 대한 퀴즈였지만, 무용은 처음 듣는 문제도 많아 답안지를 내며 내심 찝찝했다.


시험이 끝난 뒤, 3주간 함께 생활하며 교육을 받을 반과 룸메이트가 배정되었다. 무용은 같은 SL인터네셔널 소속의 고동윤, 그리고 SL전자 소속의 김환재와 한 방을 쓰게 되었다.


숙소는 침대 세 개가 나란히 놓인 깔끔하고 정돈된 공간이었다. 짐을 풀며 무용은 고동윤과 인사를 나누고, 처음 만난 김환재와 대화를 시작했다.


김환재는 박사 학위를 마치고 연구원으로 입사한, 무용보다 다섯 살 많은 사람이었다.
처음엔 다소 날카로운 인상에 걱정했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쾌활하고 낙천적인 성격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와이프 이야기가 나오면 헤벌쭉 웃는 그의 모습은 천진난만해 보이기까지 했다.


“무용 씨, 큐린 담당이죠? 제가 대학원 다닐 때 많이 먹었는데요.”
환재의 농담 섞인 말에 무용은 웃으며 대답했다.
“에너지 드링크 말고 자양강장제를 드셨다니, 형님 진짜 바쁘셨나 봐요.”

고동윤은 특유의 여유로운 말투와 능글맞음이 특징이었다.
“환재 형님, 이제 말 좀 놓으시고요. 제가 소주 몇 병 가져왔는데, 수업 끝나고 우리 호연지기 좀 다질까요?”
동윤이 가방에서 소주병을 슬쩍 꺼내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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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는 즐거웠다. 무용은 SL인터네셔널 동기들뿐 아니라, 다른 계열사 사람들과 대화하며 다양한 경험을 들을 수 있어 흥미로웠다.

주말에도 수업은 이어졌지만, 마치 수련회에 온 중고등학생처럼 강사들의 눈을 피해 웃고 떠드는 순간들이 즐거웠다.


연수의 마지막 밤, 몰래 가져온 소주 몇 병과 함께 무용, 환재, 동윤은 숙소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안주라고는 편의점에서 산 새우깡 한 봉지가 전부였지만, 셋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난 무용이, 동윤이 너희가 좀 더 재밌게 살았으면 좋겠어.”
환재는 이미 혀가 살짝 풀린 상태로 말했다.

“난 국민학교, 아니 초등학교부터 20년 넘게 학교에만 있었거든. 그런데 이렇게 밖에서 너희랑 다른 사람들 만나 보니, 세상이 진짜 넓더라.”
소주잔을 비우며 환재가 덧붙였다.


“그래도 형님은 박사님이시잖아요. 저희는 학사 나부랭이고요.”
동윤이 환재의 잔을 채우며 농담했다.


“맞아요, 게다가 첫사랑 형수님도 계시고요.”
무용은 새우깡을 우물거리며 거들었다.


“그래, 뭐 지금 우리가 행복한 게 제일 중요하지.”
환재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연수 끝나면 우리 집 놀러 와. 형이 맛있는 거 해줄게.”


셋은 밤이 깊도록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웃음소리가 숙소 밖으로 새어나가던 그 밤은, 무용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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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같던 그룹연수가 끝나고, 무용은 서울로 돌아왔다.

가슴에 반짝이는 SL그룹 배지를 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무용은 괜히 어깨가 으쓱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좋은 기억이 가득했던 연수,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회사생활에 대한 기대감도 커진 무용은 평소보다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아들 잘 다녀왔습니다~"


평소와 달리 TV소리도, 아버지의 목청 큰 전화소리도 안 들리는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보는 무용.


"응 아들, 연수 잘 다녀왔니?" 힘 없는 어머니의 목소리.

"아들, 진짜 미안한데, 너 은행에서 대출 받을 수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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