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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용한가 - 10

그냥 써보는, 직장인 이무용 이야기

by wordsbyme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리뉴얼된 큐린의 활성화 전략을 모색하던 무용.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타이밍을 놓친 제품의 매출은 쉽사리 반등하지 못했다.


"무용 씨, 유통영업팀에서 연락 왔어요."
이미주가 조심스럽게 건넨 말에 무용은 어깨를 움츠렸다.


유통영업팀의 이무성 파트장, 젠틀하면서도 열정적인 말투로 유명한 S마트 담당자가 말했다.
“무용 씨, 이거 어쩌죠. 재고 회전이 안 돼서 큐린이 다음 달 전단 상품에서 빠질 것 같아요.”

“파트장님, 혹시 다음 달 할인 제품으로 넣는 건 어렵겠습니까?”
무용이 조심스레 물었지만, 이무성의 대답은 냉정했다.
“경쟁사 정책이 워낙 강해서요. 노력은 해보겠습니다만 장담은 못 하겠습니다.”


SCM팀에서는 생산 일정을 조정해야 한다며 난색을 표했고,
구매와 자재팀은 부자재 발주를 멈춰야 한다며 연이어 메일을 보냈다.
무용의 전화는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울렸다.


오후 팀 미팅에서 김훈기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무용을 몰아세웠다.
“지금 출시 두 달이 지났는데 초도 생산 물량도 못 팔면 어떡할 건데? 새 채널 확보는 어떻게 되어가?”

종수가 대신 답변하려 했지만, 훈기는 곧장 무용을 지목했다.
“무용, 언제까지 종수 그늘에 숨을 거야? 네가 직접 대답해.”

무용은 연신 “죄송합니다”만 반복하다, 겨우겨우 미팅실을 빠져나왔다.


하루, 이틀, 그리고 일주일 넘게 무용은 전화하고 메일을 썼다.

그러던 중, 이무성 파트장에게 연락이 왔다.

창고형 할인마트 코마켓에서 큐린 18개입 제품을 만들어주면 입점을 고려하겠다는 소식이었다.

매장 특성상, 입점에만 성공하면 골치 아픈 재고 문제가 충분히 해결 가능했다.


박스 포장을 위한 인건비, 원부자재 가격을 파악하고 무용은 빠르게 기획팀에 손익을 요청했다.

그리고 가격과 예상 물량, 납기 일정을 정리해 종수와 논의했다.


이종수는 이제 제법 직장인 티가 나는 무용을 기특했지만, 평소처럼 무뚝뚝하게 말했다.

"이제 밥값은 하네. 팀장님 보고 가자."


수없이 돌린 전화와 종수의 도움 덕에, 리뉴얼된 큐린은 코마켓에 입점했다.

경쟁력 있는 가격 덕분인지, 입고된 후 판매량도 나쁘지 않았다.

무용은 비로소 한숨 돌리고, 오래간만에 정시에 짐을 챙겨 퇴근했다.


"다녀왔습니다." 현관에서 무용이 지친 목소리로 외쳤다.

무미건조하게 울려 퍼지는 TV 속 뉴스 앵커의 목소리.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아버지, 어머니는 교회에 갔단다.


냉장고에 있는 김치 몇 조각을 반찬삼아 밥을 먹는 무용.

아버지가 갑자기 TV를 끄고 말한다.

"무용아, 너 주택 청약 들어둔 거 있다고 했지? 그거 담보로 대출 안 되겠니."


24살, 남들보다 늦게 군대에 갔던 무용은 훈련병 시절 만든 주택 청약에 꾸준히 돈을 납입해 왔다.

쉽지 않겠지만, 언젠간 자신도 번듯한 직장과 집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가지고.

아버지는 그 청약 통장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없겠냐고 묻고 있었다.


반항 한번 없이 자라온 무용이지만, 순간 울컥하는 감정을 참을 수 없었다.

"제 청약 통장을요? 제가 왜요?"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묻는 무용.

“아버지가 필요해서 그렇다. 일만 정리되면 돌려줄게.”
아버지의 격앙된 목소리에 무용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아버지, 도대체 무슨 일이신데요?”
“그걸 네가 알 필요는 없다. 부모 말을 좀 믿어봐라.”


도대체 집이 어떤 사정이길래. 무용은 이유도 알지 못하고, 자신의 꿈을 담보 잡히는 느낌이 싫다.

아버지와 언성을 높이고 얼굴을 붉힌 무용은, 자리를 박차고 집 밖으로 나온다.


자주 걷던 산책길을 정처 없이 걷는 무용. 행복하게 산책하는 가족들을 보며 괜히 억울해진다.

매일 야근하던 스스로를 돌아보며, 도대체 인간 이무용은 무엇을 위해 일하고 아등바등 사는지 묻는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하던 무용은 은행 어플을 연다.


맞다, 아직 무용은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다.

무용은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담보 대출을 위한 내용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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