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잖아, 대문자 I지만 누군가에게 질문 세례를 당해보고 싶은
새로운 분위기, 환경을 마주하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대화가 끊기면 억지로 텐션을 끌어올리고, 추진력이 떨어지면 심폐소생하듯 분위기를 띄우려고 애쓴다. 그리고 이내, 적성에 안맞아 깊은 현타를 느낀다. 맞다. 나는 에너지를 끌어다 쓰고, 집에와서 현타를 느끼는 "사회화된 I"다.
E 성향 사람들의 가장 큰 편견 중 하나는, I 성향의 사람들이 모두 말도 못하고 부끄러움이 많다는게 아닐까. 잠시 I의 대변인이 되어보자면, 우린 생각보다 말도 잘하고 텐션도 잘 올린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스스로를 하얗게 불태운다는 것.
대학 시절, 스펙을 쌓기 위해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보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많았다. 학회와 동아리 활동을 위해 파릇한 대학생의 탈을 쓰기도, 먹고 살기 위해 발랄한 20대 아르바이트 생의 탈을 쓰기도 했다. 잠시간 사회화된 탈을 쓰는건 괜찮았다. 하지만 문제는 "새로운 누군가"를 안내하고 교육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극복하고, 멋나게 해야 할 일을 알려주는 선배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묘하게 뚝딱거리고, 어색함을 깨려 억지텐션을 올리는 "누가봐도 I"인 나였다. 억지로 올린 텐션으로 어찌저찌 하루를 보내고 난 뒤엔, 항상 진이 빠져서 기절하곤했다. I에게 사회 적응은, 정말 어렵고도 먼 길이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경험을 거친 나는 사회생활도 견뎌낼 수 있을까?
"야, 진짜 하루만 산골짜기에서 아무말도 안하고 살고싶다" 누가봐도 대문자 E인 친구가 푸념하듯 말한게 불현듯 생각났다. 아무리 사람을 좋아하고, 사교적인 성격이어도 사람은 인간관계에 지친다. E 성향도 그런데, 내가 힘든건 어찌보면 당연한걸지도 모른다.
10년 넘게 사회생활을 하며, 나는 자연스레 위기와 어색함을 넘기는 능글맞음을 체득했다. 많은 사람과 대화해야 하는 순간에도 대화를 이어가고, 때론 먼저 말을 걸기도 한다. 나는 여전히 누가봐도 I인 사람이지만, 이젠 "살아 남기 위한" 방법을 본능적으로 찾아가고 있는것 같기도 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오며 나는 많이 변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회화 된 척 하는 방법을 배웠다. 20대 남자 특유의 적당한 허세를 섞어가며, 적당히 무리에 어룰리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드디어, 나는 지독히 길게 느껴진 취준 생활을 마무리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어느정도 사회화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수 년간 직장인의 라이프에 길들여진 선배를 대하는건 여전히 어려웠다. 점심 메뉴 제안부터 열심히 일하는 선배들을 뒤로하고 퇴근하는 순간까지, 모든 순간이 고민의 연속이었다. 어설픈 행동에 혼나기도 하고, 진심 어린 조언을 듣기도 하며 서서히 "사회생활"이란게 무엇인지 배웠다.
그리고 내가 느낀건, 사회생활은 "억지"가 아닌 "순응"이란 것이었다.
어린시절의 나는 항상 신문이나 잡지 인터뷰를 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부끄럽지만 요즘은 유퀴즈 같은 프로그램에 나가서 자랑스레 내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꿈꿔보기도 한다. 어찌보면, 우리는 E와 I라는 구분으로 스스로를 가둬둔게 아닐까? E도, I도, 우리는 모두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고싶은 본능적 욕구가 있다. 괜히 스스로를 규정짓기보단, 좀 더 나 자신이 바라는 방향에 귀 기울여 보는건 어떨까.